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행복
작성자조병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3-08-14 조회수258 추천수1 반대(0) 신고

하느님은 카톨릭신자들이 왜 행복한지를 알려주었습니다

바로 카톨릭신자들이 하느님의 자녀들이라는 진실과 사실 때문에 행복하다는 것을 말입니다

때론 감이 안잡히기도 합니다

하느님을 잘 모르는데 하느님의 자녀들이라는 더할 수 없는 진리를 잘 알기는 어렵습니다 

그렇게 체감되지 않는 진실은 삶이라는 모든 사실과 현상 속에 그대로 녹아듭니다

사람들 모두에게는 부모라는 존재들이 있습니다

모든 것은 정도의 차이일 뿐, 됨됨이와 성격의 차이일 뿐, 그렇게 부모와 함께 살며, 때론 부모 없이, 때론 부모가 없는 것이 나을 정도로 부모 같지 않은 부모와 함께 지내며 그 영향과 반향 속에서 나라는 사람이 성장하고 자라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함께 살며 자신을, 자신의 인간성을 이룹니다

함께 사는 모든 것들은 일정 정도 행복과 불행을 가르는 잣대가 되기도 하고, 가눔자가 되기도 하며, 측량줄이 되기도 하고 기둥과 대들보가 되기도 하고 축대와 주춧돌이 되기도 하고 마당과 정원이 되기도 하며, 안방과 거실이 되기도 하며 그 행복과 불행의 진상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모든 이들에게 함께 사는 것들은 결코 아무 것도 아닌 게 아니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함께 사는 모든 것들 속에 사람이 자신을 이루는 성격을 볼 때 모든 이는 각자가 그렇게 제 자리에서 서로가 그런 존재들이 되고 그런 공동선의 양화나 악화, 그런 공동체의 최선이나 최악이 될 수도 있다는 것도 세상에 언제나 있는 사실들입니다

그러면 하느님이 아버지라는 진실과 그런 부모를 둔 하느님의 자녀들이라는 진실을 깊이, 곰곰이 새기고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하느님이라는 분, 그 존재가 나와 깊은 관계가 있는 분이고 거의 서로가 동일시될 수 있는 근거와 실제를 지닌 관계성이 있다는 진실은 진정 그 진실만큼 모든 게 사실일 겁니다

이를 안다는 게, 이를 알고 산다는 게 사람에게는, 세상 속에서는 어렵습니다  

함께 하는 모든 것들은 사람의 지성과 오감으로 충분히 감지되고 이해되는 것들입니다

자신과 함께 하려는 것들로 그 선택이 어렵지 않고 어쨌든 자신의 의식과 감정, 마음과 정서 여하에 따라 옆에 둘 수도, 거리를 두고도 함께 할 수 있습니다

모든 이들은 자신이 처한 삶의 전제와 조건 속에서 그런 것들을 자신의 삶 속에 채워 나갑니다

그게 세상 속에서는 모든 이들의 삶의 모습으로 눈에 보이는 사실과 현상들입니다

모두가 대체로 공존과 공생의 합리와 적법한 양태와 상태를 띠고 함께 하는 것들입니다 

그 뿌리와 저변은 무엇보다 함께 살려면 지니고 갖추어야 할 인간성과 이에 어우러지고, 이를 아우르는 원리와 섭리입니다

하느님은 모든 것을 만들고 살도록 하시는 분이니 모든 이는 하느님을 알게 된 순간부터 그 모든 것을 볼 수 있을 겁니다 

그렇게 보게 되면 많은 것들이 달라질 겁니다

뿌리가 달라지지 않으면 달라질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는 세상을 늘 보며 살지라도 말입니다

모든 것에 우선해서 카톨릭신자들은 하느님의 자녀들로 선택된 이들입니다

그 삶은 각자 하기 나름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세상엔 효자도 있고 불효자도 있으니 말입니다

세상을 사는 사람들은 그런 이들의 무엇을 보고 그렇게 이름지을 수 있을 정도로 그 성격을 판단하고 이해하겠습니까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 겁니다

그 인간성들에서 나오는 삶, 생활과 행실은 그 인간성을 저변으로 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누군가는 부모를 그렇게 모시고 섬겨야 할 존재로 여기지만 누군가들은 있으나 마나,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 그 삶 속에 살아있는 존재들과 그 성격과 존재성은 개의치 않고 무언가 선의의 관심과 이해도 필요없는, 덕을 다해 함께할 무엇도 아닌, 그런 관계성을 무의미하고 무가치한 것으로 보기도 합니다 

그런 인간성의 뿌리가 왜 다른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함께 사는 것들에게 좋은 것이 무엇인지는 살아 본 이들만이 압니다

그것은 가르쳐 줄 수도, 그 방향을 가리켜 줄 수도 없는 인간성의 문제이고 인간성은 어디까지나 하느님만이 모든 것을 압니다 

보는 눈이 달라지지 않는 한, 무엇을 볼 줄 아는 눈이 없는 한 세상 속에서 모든 이들은 살아가는 대로 보고 느낍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은총과 진리로부터 눈이 뜨인 이들은 하느님처럼 보게 될 것입니다

하느님의 자녀들이라는 진실은 의식 속에서 인식하려고 노력해야 될 일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진실이라는 것을 참으로 알지 않는 한 그 갭과 그로 인한 갈등과 문제는 언제나 사람들의 몫입니다 

그것은 좋은 부모가 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 평생을 산 사람들처럼 불행할 수도 있는 일입니다 

모든 이들이 로직컬하게 여기는 진리는 결코 그 셈법과 계산의 총합이 아닙니다

그리고 변증법의 정반합만이 필요한 인과의 사슬도 아닙니다

진리가 그런 것이라면 사람들은 신을 거의 완벽한 인공지능으로 이해해야 할 겁니다

그런 거대한 AI가 신이라면 인간성은 어떤 작가들과 감독들이 생각하는 그 조악한 부산물에 지나지 않을 겁니다

사람들이 느끼고 이해하는 것이 그렇게 로지컬한 센스망이다 하는 것이 그런 창작자들의 눈이니 말입니다

허무할 겁니다 진실이 고작 그 정도 AI의 수준과 정도를 못 넘어서는 현상일 뿐이라면 말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는 것이 하느님의 진리입니다

카톨릭신자들이 하느님의 자녀들이라는 진실이 하느님의 진리이니 말입니다

카톨릭신자들도 때론 세상사람들처럼 살며 그들보다 더하게 살고 굴기도 합니다

그런 사실들은 그들이 아직도 자신들의 신원과 정체와 이를 바탕으로한  관계성을 잘 모르고 살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이는 안타깝기 그지없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아쉬움이 끝없이 밀려드는 일입니다 

보다 좋게, 착하게, 아름답게 살 수 있는 길을 모른다면 말입니다 

세상 속에서 모든 이들이 다들 그렇듯이 그들만큼 가지고, 그들만큼 더하며, 그들만큼 채우고, 그들만큼 다하고 산다는 게 진정 삶의 전부도 아닐 겁니다 

하느님의 자녀들로서의 행복은 분명히 있습니다 

그 영원한 랭복은 하느님과 함께 있는 하느님의 자녀들의 모든 것입니다

그런 Heaven은 결코 아무나 살 수 없습니다

하느님과 함께 있는 하느님의 자녀들에게만 가능한 모든 것입니다

스스로들의 삶을 하느님과 거리가 있는 현실성과 자신들이 더할 수 없는 현재의 한계성에  놓아 두고 사는 사람들은 더는 앞으로 나아가려고 허지 않는 사람들과 같습니다

집 앞이서도 그 문을 두드리고 열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 집이 눈 앞에 보이는 데도 더는 나아가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과 같습니다

이는 비판도, 비난도 아닌 안타까움입니다

그렇게 당신의 자녀들을 바라보는 하느님의 안타까움입니다

모든 은총을 다 주어서도, 모든 사랑과 자비를 다해서도 안 되는 일이란 영원히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