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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늘 성모님과 함께 주님을 바라보는 삶" - 9.15,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0-09-16 조회수442 추천수6 반대(0) 신고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10.9.15 수요일 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

히브5,7-9 요한19,25-27

 

 

 

 

 

"늘 성모님과 함께 주님을 바라보는 삶"

 

 

 

자식은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 합니다.

오늘 예수님의 십자가 밑에 있는 성모님의 심정이 그러했을 것입니다.

예기치 못한 불의의 죽음으로 자식을 떠나보낸 세상 어머니들,

그대로 또 하나의 성모님으로

누구보다도 성모 마리아의 고통에 공감할 것이며

이런 성모님께 큰 위로와 힘을 받을 것입니다.

 

예수님 곁에 늘 함께 있었던 성모님이셨습니다.

축일의 배치도 이를 입증합니다.

‘예수성심대축일(금)’에 이어

‘티 없이 깨끗하신 성모 성심 기념일(토)’이며,

어제 아드님의 ‘성 십자가 현양 축일’에 이어

오늘의 ‘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입니다.

특히 오늘의 복음 장면은

이등변 삼각형의 구조를 이루면서 교회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이등변 삼각형의 꼭지 점 자리에 십자가의 주님이 계시고,

십자가 밑 양 꼭지 점 한 자리에는

우리 믿는 모든 이들의 어머니이신 성모 마리아가 계시고,

맞은 편 꼭지 점 자리에는 우리 모두를 상징하는

주님께서 사랑하셨던 제자가 있습니다.

이 이등변 삼각형의 거룩한 영역 안에는

헛것의 악마들이 끼어들 여지도 없습니다.

 

어머니와 사랑 받던 제자의 눈길은

모두 십자가의 예수님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바로 교회의 중심이신 십자가의 주님을 상징합니다.

하여 성전 중심의 제대 뒷면 벽의 중앙에 자리 잡고 있는

예수님의 십자가입니다.

죄 빼놓고는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삶의 밑바닥에서 산전수전 온갖 고통을 다 겪으신 주님이셨습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이를 진솔하게 다음처럼 묘사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계실 때,

  당신을 죽음에서 구하실 수 있는 분께 큰 소리로 부르짖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와 탄원을 올리셨고,

  하느님께서는 그 경외심 때문에 들어주셨습니다.”

 

얼마나 친근감 느껴지는 예수님의 모습입니까?

예수님께 기도는 호흡과 같고 밥과 같았습니다.

이런 기도가 있었기에 온갖 고통을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삶이 고통스럽고 힘들수록 열렬한 기도만이 살 길이요,

절대로 기도의 끈을 놓지 말고 끊임없이 기도해야 합니다.

하느님은 어떤 모습으로든

당신의 적절한 때에 적절한 방법으로 응답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드님이시지만, 고난을 겪음으로써 순종을 배우셨습니다.”

 

이 말씀도 참 고맙습니다.

우리 인생은 바로 ‘순종을 배워가는 학교’입니다.

삶은 순종입니다.

이런저런 삶에서 오는 시련과 고난들

모두 기꺼이 받아들여 순종의 계기로 삼을 때

놀랍게도 이들은 모두 축복으로 변할 것이며

헛것들의 유혹이 스며들 여지도 없을 것입니다.

바로 여기까지의 장면은

필립비서의 그리스도의 비움(케노시스) 찬가 전반부를 연상케 합니다.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하느님과 같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이렇게 여느 사람처럼 나타나 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십자가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얼마나 아름답고 깊은 찬가입니까?

바로 우리가 늘 바라보는 십자가의 달리신 주님의 모습입니다.

세상에 이보다 더 아름답고 참다운 분은 없습니다.

예수님처럼 순종으로 자신을 부단히 낮추고 비울 때

온전한 참 사람이요 주님과의 일치입니다.

 

“그리고 완전하게 되신 뒤에는,

  당신께 순종하는 모든 이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습니다.”

 

우리의 모든 시련과 고난을 모두 주님께 순종의 계기로 삼을 때

우리 또한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신 주님과의 일치도 깊어질 것입니다.

바로 이 부분은 필립비서 비움 찬가 후반부와 연결됩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드높이 올리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 난 이름을 그분께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의 이름 앞에

  하늘과 땅 위와 땅 아래에 있는 자들이 다 무릎을 꿇고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이라고 모두 고백하며

  하느님 아버지께 영광을 드리게 하셨습니다.”

 

성모님과 주님의 애제자는 물론 우리가 바라보는 십자가의 주님은

바로 이런 분이십니다.

슬픔을 환희의 기쁨으로 바꾸는 비움 찬가요 히브리서 말씀입니다.

십자가의 주님을 바라볼 때

꼭 이 두 성경 말씀을 연관시켜 묵상하면 참 풍부할 것입니다.

 

십자가의 주님께서 성모님께 말씀하십니다.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이어 애제자에게 말씀하십니다.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애제자뿐 아니라 믿는 우리 모두가 성모님의 자녀들이 되었고,

성모 마리아는 우리 모두의 어머니가 되었습니다.

진정 믿음이 좋은 어머니들,

세상 떠난 자식들 자기 가슴에 묻지 않고

십자가의 그리스도의 품 안에 묻고

주님의 십자가 곁에 자주 머물 것입니다.

이래야 슬픔의 치유요 살 힘을 얻습니다.

이 상황에 기막히게 잘 맞는두 개의 기도가 생각납니다.

 

서방 가톨릭 신자들이 애송하는 성모송과

동방교회 신자들이 주로 애송하는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기도입니다.

직접 애제자의 자리에서 십자가의 주님을 바라보며

직접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를 바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아드님, 주 예수 그리스도님, 죄인인 저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또 옆에 계신 성모님께 전구하며

성모님의 도움을 청하며 성모송을 바치는 것입니다.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여, 기뻐하소서.

  주께서 함께 계시니 여인 중에 복되시며 태중의 아들 또한 복되시도다.

  천주의 성모 마리아여

  이제와 저희 죽을 때에 저희 죄인을 위해 빌으소서.”

 

이렇게 양쪽에서 주님을 끊임없이 기도로 협공(?)하면

주님은 이들의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고는 못 배길 것입니다.

참 아름다운 교회의 기도입니다.

어느 쪽의 기도이든 항구히 바칠 때

악마의 헛것들은 감히 범접하지 못할 것입니다.

사실 ‘예수, 마리아, 요셉의 이름을 부르는 기도’ 나

‘십자 성호경’은 헛것들인 악마의 퇴치에 아주 좋다는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하느님은 성모님과 함께 십자가의 주님을 바라보며

정성껏 미사를 봉헌하는 우리 모두 에게 한량없는 축복을 내려 주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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