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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중국으로 시집간 아들 /최강 스테파노신부
작성자오미숙 쪽지 캡슐 작성일2011-06-28 조회수440 추천수8 반대(0) 신고
 
 
중국으로 시집간 아들

살림을 하다 보니 이래저래 신경 쓰이는 것이 한 둘이 아닙니다. 청소나 빨래는 프로 주부 못지않게 해낼 자신이 있는데, 매 끼니를 해결하는 일은 참으로 고된 일입니다. 평상시 주변 사람들에게서 음식 솜씨가 제법 좋다는 말도 자주 들었고, 또 제 스스로도 주방에 들어가 음식 만드는 것을 재밌어 하는 편이었기에 이렇게 음식 문제로 어려움을 겪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소풍 가서 한두 끼 해 먹는 것하고 매일매일 끼니를 해결하는 일하고는 차원이 다른 이야기라는 것도 새삼 깨닫는 중입니다.

음식 때문에 어려운 일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매 끼니를 해결할 메뉴를 고르는 일입니다. 아침은 빵 한 조각과 커피 한 잔으로 해결한다지만 점심과 저녁을 매번 무얼 해 먹을까 고민하고 결정하는 일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닙니다. 바구니를 들고 시장을 몇 바퀴 돌아봐도 제 눈에 들어오는 식 재료는 만날 똑같습니다. 쇠고기 한 덩어리, 대파, 그리고 계란을 사고 나면 더 살 만한 게 없어서 막막해집니다. 얼마 전 요리를 다 해 놓고 냄새 때문에 도저히 먹지 못하고 버린 뒤로, 돼지고기로는 눈길이 잘 가지 않습니다. 또 그 밖에 중국 사람들이 바글거리는 코너의 식 재료들은 아직 제게 익숙한 것들이 아니라서 선뜻 사지를 못합니다. 이렇게 빤한 식 재료들로 준비할 수 있는 메뉴 중에 최고는 장조림입니다. 밥을 물에 말아서 장조림 반찬과 먹으면 차려서 설거지까지 마치는 데 오 분밖에 안 걸립니다.

두 번째로 음식 때문에 어려운 일은, 먹고 남은 음식을 해결하는 일입니다. 혼자 사는 살림이라서 음식을 할 때마다 일부러 조금씩 준비를 한다고 하는데도 한 번에 다 먹지 못하고 남기는 음식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러면 음식을 보관할 살림 도구도 빤한 상황에서 한없이 냉장고에 쌓아둘 수도 없고 결국 일주일에 한 번쯤은 생전 듣지도 보지도 못한 짬뽕 한 그릇을 먹게 됩니다. 이런저런 남은 음식들을 불린 쌀과 함께 냄비에 쏟아 붓고 한참을 끓이면 가끔씩 TV에서나 봤던, 전쟁 통에 먹던 ‘꿀꿀이죽’과 같은 짬뽕 한 그릇이 되는데 그 맛이 썩 먹을 만합니다. 지극히 창조적인 ‘최강식 짬뽕’을 대할 때마다 제 머릿속에는 어머니가 떠오릅니다.

제가 어렸을 적에 명절이 지나고 나면 어머니께서는 호박전이며 나물 그리고 생선구이와 같은 명절 음식들을 섞어서 찌개를 끓여 주시곤 하셨는데 저는 그 음식을 몹시도 싫어했습니다. 어머니의 그 명절식 잡탕 요리가 나올 때면 저는 그 음식에 젓가락 한 번 대지 않음은 물론, 아예 그 식탁에서 손을 털고 일어나서 제 방으로 건너와 버렸습니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는 “너는 참 까다롭기도 하다. 맛있기만 하구먼.” 하시면서 밥을 먹지 않고 일어나는 저를 안타까운 시선으로 쳐다보셨습니다. 그러고는 새로운 밥상을 차려서 제 방까지 날라 오시곤 하셨는데, 심술이 꽉 차 있던 저는 그 새롭게 차려 오신 밥상도 못 본 체하고 안 먹기 일쑤였습니다. 지나고 생각해 보니 저도 참 못된 놈입니다.

그렇게도 다른 음식끼리 섞이는 맛을 싫어하는 제가 비록 혼자이기는 하지만 직접 살림을 꾸려 나가는 요즘에는 별 수 없이 남은 음식을 모아서 ‘최강식 짬뽕’ 요리를 해 먹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영락없이 남은 음식을 버려야만 합니다. 하지만 음식을 버리는 일은 굶주림에 죽어 가는 어린 생명들을 생각하면 너무도 큰 죄악을 저지르는 일이라서, 차마 그럴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옛날 어르신들이 하시던 말씀이 틀린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분들이 말씀하시기를 ‘속 못 차리는 딸들은 시집가서 자기 하고 똑같이 속 못 차리는 딸을 낳아서 키워 봐야 친정어머니 마음을 헤아릴 줄 알게 된다’고 하셨는데, 제가 영락없이 그 꼴입니다.

어머니가 계시는 고국을 떠나 이곳 중국으로 시집와서 직접 살림을 차려 놓고 살아 보니 고향에 계신 어머니의 밥상이 그립습니다. 이런저런 음식을 다 모아서 짬뽕을 끓여 놓고 딱 그 밥상머리에 앉으면 제가 그렇게도 싫어했던 어머니의 명절식 잡탕 요리가 그리워집니다. 지금이라면 어머니의 정성을 봐서라도 맛있게 먹을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때는 왜 그리 못되게 굴었을까요. 중국으로 시집와서 이래저래 참 철들어 가는 느낌입니다.

 이미 오랜 세월이 흘러갔지만 철없던 시절의 잘못에 대해 어머니께 용서도 청할 겸, 중국으로 시집온 아들이 이렇게 철들어 간다는 것도 알려 드릴 겸 오랜만에 전화를 드렸습니다.

“어머니! 살림하다 보니까 옛날에 어머니께서 왜 자꾸 여러 가지 다른 음식을 섞어서 찌개를 끓여 주셨는지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네요. 어머니께 그리도 못되게 굴었던 이 못난 아들을 용서해 주세요.”

“호호호! 이제 시작이시라네. 혼자지만 그래도 직접 살림이라고 꾸려 가다 보면 앞으로도 이 어미에게 용서 청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닐 텐데, 우리 신부님 꽤나 바쁘시겠네. 용서는 언제라도 해 드릴 테니 앞으로 또 살림하다가 깨닫는 점이 생기거든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게 잘 새겨 두시오. 부엌살림하는 일이 그리 녹록지는 않을 거요. 언젠가 꼭 한 번 시켜 보고 싶었는데 하느님께서 내 마음을 어찌 이리 쏙 알아 주셨을까! 호호호!”

 남들이 하는 일이 제 마음에 들기에는 너무나 부족함이 많아 보입니다. 하지만 그 말을 뒤집어 보면 제가 하는 일도 다른 이들의 성에 차기에는 역시 부족함이 많다는 말이 됩니다. 정확히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보지 않고 섣불리 상대방이 하는 일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많은 말로 떠들며 판단하는 것은 대단히 가벼운 행동입니다.

세상과 사람을 바라보는 마음의 눈을 아직 깊고 넓게 키우지 못한 어린아이들은 자기 입맛대로만 해 달라고 울며불며 어리광을 부립니다. 아직 눈을 뜨지 못한 그들이 부모의 마음을 헤아리는 일은 불가능합니다. 그런 어린아이들이 나이가 들어서 시집, 장가를 가고 아이를 낳아 기르다 보면 그제야 부모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알게 됩니다. 자기가 어릴 적 했던 유치한 행동을 똑같이 하는 아이들을 보고 키우면서 철이 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나이가 들어서도 여전히 어린아이 적의 유치한 행동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세상 전체가 자기 입맛대로만 돌아가야만 한다고 우기는 어른들이 너무나 많다는 데 있습니다.

어른이 되었다는 것은 세상일 하나하나에 일희일비一喜一悲 하지 않고 좀 더 오랜 시간을 묵묵하게 지켜볼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제 눈앞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주의 깊은 시선으로 바라보면서도 마음은 자신의 지난 시간과 인연을 돌아다 보며 스스로를 갈고닦는 일에 더욱 정진하는 사람들이 진정으로 힘이 있는 어른입니다. 그런 어른들만이 인생의 후배들에게 무엇인가 값진 교훈들을 몸으로 보여 줄 수 있습니다.

인생과 인격의 깊이가 느껴지는 사람을 만나는 일은 언제나 행복합니다. 누구나 자신을 만나는 사람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 행복을 위해 우리가 타인을 개조시킬 수는 없는 일입니다. 타인을 행복하게 만드는 일도 자기 안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결국 모든 일은 자기 마음의 변화로부터 시작되고 완성됩니다.

중국으로 시집와서 혼자 살림하며 살아가다 보니 고향에 계신 어머니 마음도 조금씩 헤아려지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 마음도 더 깊이 깨달아 가는 것 같아서 참 행복합니다. 이 행복을 잘 나누며 살고 싶습니다.

 

최강신부 《실패하니까 사람이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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