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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예수님 흉내내기 <17회> 조폭과 신부들의 공통점- 박용식 신부님 - 박용식 신부님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8-03-05 조회수1,078 추천수6 반대(0) 신고
 

   조폭과 신부들의 공통점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마태 16,15)


   조직 폭력배와 신부들의 공통점 첫째, 항상 검은 옷을 입고 다닌다. 둘째, 상하 관계가 뚜렷하다. 셋째, 항상 여자들을 대동하고 다닌다. 넷째 다섯째 여섯째도 있을 법하다. 두 번째 공통점으로 상하 관계와 계급이 분명히 구분되어 있는데 조폭들은 윗사람을 '형님'이라고 부르며 깍듯이 모신다. 신부들도 선후배 관계가 뚜렷하여 선배들에게 깍듯한 예를 갖춘다. 신부들은 예수님을 '형님 중의 형님', '대장 중의 대장'으로 모시며 형님이신 예수님을 위해서라면 목숨도 아까워하지 않는다.


   술집 아가씨들은 모든 남자 손님을 다 "오빠"라고 부른단다. 나이가 적건 많건 할아버지뻘이라도 남자면 다 오빠다. 매상 올리고 팁 많이 받으려고 입에 발린 말을 하는 것이다.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는 것이다. 요즘 애들이나 젊은이들은 아는 사람이면 그냥 다 형 누나 언니 오빠라고 부른다. 남이 들으면 진자 친오빠인 것처럼, 친형인 것처럼 부른다.


   친근감을 표현하려는 모양인데 형이 라고 부르려면 형 대접을 해주고 존경하고 형제애를 가지고 사랑하며 지내야 한다. 말은 형이라고 부르면서 전혀 존경도 사랑도 형제애도 없다면 형이란 말은 진심이 아니라 그냥 하는 말이다. 술집 아가씨가 손님에게 오빠라고 아양을 떨다가도 그 손님이 술값을 덜 낸다거나 팁을 안 주거나 마음에 안 들면 금방 개XX 소XX라고 부르는 것처럼 말이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의중을 떠보기 위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라고 물어보신다. 베드로가 모든 사람을 대신해서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마태 16,15-16)라고 대답했다. 예수님을 구세주 그리스도라고 부른 것은 대단한 고백이다. 입에 발린 말도 아니고 그냥 편의상 무심코 한 말도 아니다. 예수님을 진정주님으로, 구세주로, 하느님으로 모신다는 말이다. 주님의 권능과 사랑을 체험하고 진정으로 승복한다는 말이다. 요즘 애들이 쉽게 부르는 누나, 형 같은 말이 아니다. 술집 아가씨가 아무나 오빠라고 부르는 그런 뜻이 아니다.


   부르는 호칭대로 행동하는 사람들이 있다. 깡패들, 조직 폭력배들은 싸움을 해서 지면, 이긴 사람에게 즉시 '형님'이라고 부르며 무릎을 꿇는다. 그리고 다시 싸움에서 이기기 전까지는 형님으로 깍듯이 모신다. 말로만 형님으로 부르는 게 아니라 모든 행동에서 형님이 항상 먼저이고 항상 위에 있다. 동물 세계에서도 비슷하다. 동물들의 한 집단에서 대장의 자리를 차지하려고 수컷들이 피를 흘리며 싸우다가 이긴 놈이 대장이 되면 대장은 항상 윗자리를 차지한다.


   우리 신자들은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른다. 술집 아가씨들에게 예수님이 누구냐고 물으면 주저 없이 "젊은 오빠, 멋쟁이 오빠"라고 부를 것이다. 우리는 예수님을 의심 없이 구세주라고 주님이 라고 부른다. 주님이라는 말은 나의 모든 삶을 주관하는 주인이라는 뜻이고 구세주라는 말은 나를 구원해주시는 분이라는 뜻이다. 우리가 예수님을, 주님을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주님이라고 부르고 주님한테서 은총이나 받으려고 주님이라고 부른다면 주님 대접을 안 해드린다면 어떤 의미로는 깡패나 동물만도 못하다.


   깡패들은 형님이라고 부를 때는 형님 대접을 한다. 동물들은 대장을 진정 대장으로 모신다. 이런 점에서 깡패와 동물한테서 한 수 배워야 한다. 깡패들이 힘 센 사람을 형님이라고 부를 때는 반드시 체험이 있다. 그와 싸워 뼈저린 패배의 체험을 한다. 체험을 했으니 형님이라고 부르지 않을 수 없고 형님으로 모시지 않을 수 없다. 동물도 대장으로 모시기까지는 피 흘리는 체험을 한다. 그러니 대장으로 모시지 않을 수 없다.


   우리도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시고 주님으로 부르기 위해서는 체험을 해야 한다. 주님과의 깊은 만남을 체험해야 한다. 나의 모든 삶이 주님의 섧리 안에 있음을 체험하고, 티끌만도 못한 나를 하느님의 아들로 삼아주신 큰 은혜를 체험하며, 내가 죽음의 심연 같은 고통 중에 있을 때 주님이 따뜻한 품으로 안아주셨음을 체험하고, 지금도 주님이 나를 사랑하고 계심을 체험한다면, 주님을 말로만 부르는 게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 행동으로 옮기면서 힘차게 주님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다.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고 예수님을 주님, 구세주라고 부르면서 우리는 과연 부르는 말처럼 우리 삶 안에서 체험했는지···,  체험한 대로 행동하는지···, 예수님을 구세라고 부르면서 과연 우리는 우리를 구해주셨음을 체험했는지, 앞으로 영원한 구세주가 되실 것을 의심 없이 믿는지···. 구세주라고 부르고 믿는다면 그 구세주라는 말에 합당한 고마움을 표시하며 살고 있는지···, 묵상해 보자.

 

                 - 박용식 신부 수필집 / 예수님 흉내내기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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