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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내가 아버지를 사랑하는것 세상이 알아야 한다 (요한14, 31)
작성자장이수 쪽지 캡슐 작성일2008-03-05 조회수469 추천수3 반대(0) 신고

 

오래 전의 일이다.

언젠가 책방에서 책을 빌려다 보려고 이것 저것 살피며 보다가 문득 책장 사이에 있는 큰 메모지 한장을 발견했는데 그 안에 씌여진 글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내용은 이러했다.

[ 성자께서는 십자가에서 성부께 버림을 받았다. (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마르코복음서 ) 그리고 성자께서는 십자가에서 '어머니'이신 성모 마리아를 주셨다. 사람들은 모름지기 성모님을 모시며 성자와 함께 새롭게 살아야 하는 것임을 깊이 깨달아야 한다 ]

그날, 또 '마리아'라는 '회지'를 유심히 읽어 보았는데 그곳에서 모 신부님의 글에서 '성자는 성부께 버림을 받았다'는 글귀가 눈에 띄인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 참으로 '성자는 성부께 버림을 받았다'는 말들을 주위에서 많이 하고 있었다. 특히, '레지오'와 관련한 '마리아 신심'에서 터져 나오는 해석들이다.

책갈피 속에서 아무에게 전하기 위해 적어 놓았던 그 사람의 글이 자꾸 가슴을 짓누른다. 그가 '나주 사람'이든, 혹은 열성적인 '레지오 단원'이든, 신부님들 조차 그와 같은 동일한 마음을 지닌듯이 하다. 성부께서는 왜 가려지시고 성모는 점점 높아지고 있는가 ?  ... 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

그러던 중에 또달리 '가톨릭 대사전'에서 다음과 같은 글을 우연히 보게 된다.

[ 성부께서는 성자의 수난에 대하여 동정을 표하셨다는 것이 그리스도의 수난에 대한 성부의 태도요,  그 가르침이 그리스도 교회의 교리가 되었다 ]

흔히 여기 게시판에서 벌어지는 일이지만, 이 게시판에서 '마리아 신심'을 전하는 이들은 거의가 과장되고 그릇된 신심을 전한다. 내가 알고 있는 아주 열심하는 '레지오 단원' 한사람은 '가톨릭교회교리서'를 먼저 중요시 한다.

'교리'는 신앙이기 때문에 '레지오 교본' 보다는 먼저 '가톨릭교리'를 우선한다고 말한다. 과장하는 신심자들은 교리를 소홀히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그 자신도 알고 있고 그런 사람들이 '레지오'의 전부는 아니다고 한다. 오히려 과장하는 그들로 인해 '레지오'는 상처를 받기도 한다고 일러 주었다.

'성자께서는 성부께 버림받았다'는 본 뜻은 성부께서는 비켜나고 성모를 대신 세우기 위한 것이 설령 아니었을지라도열정적인(광적인) 이들은 그렇게 받아들이고 또한 그렇게 전한다.  ( '유혹의 흐름을 이끄는 것은 그 어떤 존재이다' )

어찌되었던 ... "성부께서는 성자의 수난에 대하여 동정을 표하셨다는 것이 그리스도의 수난에 대한 성부의 태도요,  그 가르침이 그리스도 교회의 교리가 되었다"는 굳은 신뢰에서 => 가르치는 말과 글을 쓰는 이들은 (특히, 성직자) 좀 더 침묵하며 교회교리에 귀기울여 조심스럽게 표현했어야 했다. 자신의 영성을 사람들에게 드러내어 보이려고 너무 쉽게 언급( 한국의 샤머니즘 정신세계가 유입되기도 하므로 ) 하는 경우가 마치 유행이나 된 듯하다. 

가톨릭교회교리서에서는 다음과 같이 가르치고 있다.  ( 교리를 부정하려는 이는 가톨릭신자라고 할 수 없다 )

예수님께서는 버림받은 적이 없으시다. 그분께서는 언제나 성부와 일치시키는 속량하시는 사랑으로 하느님께 죄를 짓고 헤매는 우리를 떠맡으심으로써 십자가 위에서 우리를 대신하여 말씀하셨다.

"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 이처럼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인들과 연대를 이루게 하시어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친아드님 마저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 모두를 위하여 내어 주셨고" 우리가 "그분 아드님의 죽음으로 그분과 화해하게" 하셨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죄 때문에 당신 아드님을 넘겨주심으로써 당신의 계획이 우리의 어떤 공로보다도 앞서 존재하는 관대한 사랑의 계획이라는 것을 드러내신다.

예수님께서는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마태 18, 14) 오셨다고 분명히 말씀하신다. 이 말은 인류를 구하기 위하여 당신을 내어 주시는 구세주 오직 한 분과 인류 전체를 대비시킨다. "온 세상의 죄를 위한 속죄의 제물이 되신" 예수님의 제사는 성부와 이루는 사랑의 일치를 표현한다.

"내가 아버지를 사랑한다는 것 세상이 알아야 한다" (요한 14, 31)

그리스도의 이 희생제사는 유일하며 이 희생제사는 인류의 결정적인 속량을 완성하는 파스카의 희생제사이며 동시에 인간을 하느님과 화해시키고 일치시키는 새로운 계약의 희생제사이다. 이 희생제사는 성자의 피를 통해서 이루어지며 성부께서 우리를 당신과 화해시키기 위하여 당신 아드님을 내어 주심으로써 성부께서 몸소 주신 선물이다.

속량을 위한 그리스도 고난의 신비에 그 누구보다도 긴밀히 참여한 분 바로 그분의 어머니 마리아이다.

 

가톨릭교회교리서는 또 이렇게 가르치고 있다

그리스도께 돌아서는 회개, 세례를 통한 새로운 탄생, 성령을 받음, 양식으로 받는 그리스도의 몸과 피는 우리를 그리스도 앞에서 "거룩하고 흠없는 자가 되게 하여 당신 앞에 설 수 있게" 하였다.  그러나 새 생명이 인간 본성의 불안정함과 나약함을 없앤 것은 아니며, 전통적으로 사욕으로 부르는 '죄로 기우는 경향'을 없앤 것도 아니었다.

세례 받은 사람에게 사욕이 남아 있는 것은 그리스도인 답게 살기 위한 싸움에서 그리스도의 은총으로 도움을 받아 승리를 얻게 하기 위한 것이다. 이 싸움은 주님께서 끊임없이 부르시는 거룩함과 영원한 생명으로 돌아가는 회개를 위한 싸움이다.

우리 마음은 하느님 사랑의 위대하심을 알게 됨으로써 죄의 두려움과 무게 때문에 떨게 되고, 죄를 지어 하느님을 모욕하고 그분에게서 멀어지는 것을 두려워하게 된다. 인간의 마음은 우리의 죄로 찔리신 그분을 바라봄으로써 회개하게 된다.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흘리신 그분의 피는 온 세상에 회개의 은총을 마련해 주었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전 생애는 성부의 자비(자애)로우신 사랑을 드러내신다 <가톨릭교회교리서>

그럼에도 성부의 무한하신 자비로운 사랑보다 마리아의 자비(사랑)를 더욱 부각시키는 일들('레지오')에 가끔씩 의문을 가진다. '가톨릭교회교리서'는 그 안에 담긴 내용이 성경이며, 교회헌장이며, 성인들의 가르침이며, 성전이고, 교회의 교도권이다.  

교리를 부정한다는 것은 바로 성경과 성전, 성인의 가르침, 교회헌장, 교도권을 의심하고 무시하며 거짓된 계시들에 집착하여 새로운 종교 내지는 종파를 꿈꾸는 것으로 보일 뿐이다. 가톨릭 내에도 이단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은혜의 때에 내가 너에게 응답하고, 구원의 날에 내가 너를 도와주었다.

내가 너를 빚어 내어 백성을 위한 계약으로 삼았으니, 땅을 다시 일으키고 황폐해진 재산을 다시 나누어 주기 위함이며, 갇힌 이들에게는 ‘나와라.’ 하고, 어둠 속에 있는 이들에게는 ‘모습을 드러내어라.’ 하고 말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시온은 “주님께서 나를 버리셨다. 나의 주님께서 나를 잊으셨다” 하고 말하였지.

여인이 제 젖먹이를 잊을 수 있느냐? 제 몸에서 난 아기를 가엾이 여기지 않을 수 있느냐? 설령 여인들은 잊는다 하더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않는다"

<이사야서 49, 8 - 15>

  

"내가 아버지를 사랑한다는 것을 세상이 알아야 한다"

(요한 14,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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