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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08-03-05 조회수946 추천수19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08년 3월 5일 사순 제4주간 수요일
 
 
 
 I do not seek my own will
but the will of the one who sent me.
(Jn.5.30)
 
 
제1독서 이사야 49,8-15
복음 요한 5,17-30
 
 
어느 날, 부엌의 싱크대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는 엄마를 딸이 유심히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딸은 엄마의 옆머리에 흰 머리 몇 가닥을 발견하고는 엄마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엄마! 왜 흰 머리가 나는 거야?”

이에 엄마가 이렇게 답합니다.

“그건 네가 뭔가를 잘못해서 엄마를 울리거나 슬프게 하거나 할 때마다, 머리카락이 한 개씩 하얗게 변한단다.”

이 말에 딸은 스스로를 반성하는지 울먹울먹합니다. 엄마는 잘 대답했다고 생각했지요. 이렇게 울먹울먹하는 것을 보니, 이제는 딸이 자기 말도 잘 듣고 더 이상 말썽도 부리지도 않을 것 같았습니다. 만약 말을 잘 안 듣고 말썽을 부리면, “엄마, 또 머리카락이 하얗게 될 거야.”라는 말만 하면 되니까요.

그런데 딸은 울먹이면서 원망 가득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합니다.

“엄마는 할머니를 얼마나 속상하게 했으면 머리카락 전부가 새하얗게 된 거야?”

자기가 한 말로 인해서 스스로 낭패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처음에 스스로 말을 잘 했다고 생각했지만, 그 말은 결코 잘 한 말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인간의 말이란 부족함 그 자체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끊임없이 잘못된 말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자신을 드러내고, 남들보다 더 윗자리에 서기 위한 마음가짐이 바로 이렇게 잘못된 말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가 됩니다.

이에 반해서 예수님께서는 언제나 진리의 말씀만을 하십니다. 그래서 당신의 신원에 대해서 말씀해주시고, 우리의 구원을 위한 말씀을 해주십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러한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내 아버지께서 여태 일하고 계시니 나도 일하는 것이다.”라는 진리의 말씀에 대해, 유다인들은 예수님을 죽이려는 마음만을 간직하지요. 물론 이유는 있습니다. 안식일 법을 어겼다는 것, 그리고 당신 자신을 하느님과 대등하게 만드셨다는 이유입니다. 그러나 더 큰 이유는 자신들의 뜻대로 행동하지 않는다는 것, 즉 하느님의 뜻보다 자기들의 뜻을 따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시지요.

“내 심판은 올바르다. 내가 내 뜻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나는 과연 누구의 뜻에 맞추어서 판단하고 행동하는지요? 혹시 주님의 뜻보다도 내 뜻을 더 강조하고,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천년 전의 이스라엘 사람들처럼 다른 사람을 단죄하는 큰 죄를 범하는 것은 아닐까요?

부족하고 제한적인 내 뜻은 이제 접어야 할 때입니다. 그보다는 주님의 뜻을 세상에 드러내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때입니다. 그래야 주님을 통하여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아침기도를 봉헌하고 오늘의 성경말씀을 읽고 묵상합시다.




여자는 남자에게 꼭 필요한 존재이다(맹한승, ‘37가지 행복 열쇠’ 중에서)
 

천지창조의 과정에서 여섯째 날에 창조된 남자는 원래 양성이었다. 남자의 몸에서 여성 호르몬이 분비되는 것이 바로 그 때문이다. 그런데 남자는 왜 여자에게 이끌리는 것일까? 그 이유는 하느님이 남자의 갈비뼈로 여자를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남자는 무의식중에 제 몸의 일부를 찾고 싶어하고 그래서 여자를 그리워하는 것이다.

인간의 창조 과정에는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는 하느님의 깊은 뜻이 하나 더 숨겨져 있다. 하느님은 왜 남자의 머리가 아니라 갈비뼈로 여자를 만든 것일까? 하느님은 여자에 의해 남자가 지배되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하느님이 남자의 다리를 취해 여자를 만들지 않은 것 역시 같은 이유에서다. 하느님은 여자가 남자의 노예가 되는 것도 원하지 않은 것이다.

하느님이 남자의 갈비뼈를 취해 여자를 창조한 것은 여자를 항상 남자의 마음 곁에 두고 싶었기 때문이다.

인간에게는 어떤 이유로든 다른 사람을 구속할 권리가 없다. 하지만 가끔 우리는 ‘사랑’을 핑계로 서로를 옭아매고 구속하려 든다. 그러면서 마치 그것이 사랑의 본질이라도 되는 듯이 자기를 합리화시킨다. 사실 이런 생각은 대체로 남자들에게 많이 나타난다.

진정으로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그의 존재 의미를 사랑하라. 진정으로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그의 자유인임을 사랑하라. 진정으로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그의 허물까지도 사랑하라.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두 사람의 관계를 공감하고 나누는 것이다. 사랑은 하나지만 그 속에는 분명히 둘이 공존하고 있음을 명심하라.

사랑하는 사람과 온전히 하나가 될 수 있는 깊은 사랑을 하라. 그렇다고 자신을 잃어버리는 어리석음을 범하면 안 되겠지만…….
 
 
 
Amen, amen, I say to you, whoever hears my word
and believes in the one who sent me
has eternal life and will not come to condemnation,
but has passed from death to life.
(Jn.5.24)
 

Beloved 

 
 
 
Forever And For Always - Shania Twain
 
 
 
조명연 마태오신부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 http://www.bbadaki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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