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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용서 받지 못한 죄, 용서하지 못한 죄/ 이 우근 *
작성자최익곤 쪽지 캡슐 작성일2008-03-18 조회수608 추천수7 반대(0) 신고

 

 


“나는 죽어 가는 사람의 마지막 소원조차 들어주지 못했다!”

가족과 친척 89명이 나치수용소에서 모두 학살당한 뒤 홀로 극적으로 살아남은 유태인 시몬 비젠탈(Simon Wiesenthal)이 그의 책 <해바라기, The Sunflower>에서 토로한 고백입니다. 비젠탈은 제2차 세계대전 후 50년 동안의 끈질긴 추적으로 약 1,100명의 나치 전범(戰犯)들을 법정에 끌어다 세운 ‘나치 사냥꾼’이자 이스라엘의 영웅이었습니다.

나치 패망을 바로 눈앞에 둔 어느 날, 수용소에 갇힌 비젠탈은 중상(重傷)을 입은 어느 나치 친위대원의 병상(病床) 앞으로 불려갑니다. 얼굴 전체를 흰 붕대로 감싼 친위대원은 죽기 직전의 상태였습니다. 거친 숨을 몰아쉬던 그는 비젠탈의 손을 덥석 붙잡으며 무고(無辜)한 유태인들을 학살한 자신의 범죄를 고백하고 참회합니다. “제발 마음 편히 죽을 수 있도록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당황한 비젠탈은 한동안 망설이던 끝에 결국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한 채 친위대원의 손을 뿌리치고 그 자리를 떠납니다. 죽어 가는 사람에게 차마 매정하게 대하기는 어려웠지만, 그렇다고 나치의 흉악무도한 범죄를 용서할 수는 결코 없는 일이었습니다. 참회와 용서 사이에서 방황한 이 특이한 경험은 전후(戰後)의 비젠탈에게 깊은 갈등으로 남게 됩니다.

이스라엘 비밀정보국 모사드(Mossad)가 살인마 아돌프 아이히만을 아르헨티나에서 체포했을 때 비젠탈은 이렇게 호소했습니다. “용서하자. 그러나 잊지는 말자.”
유태인들은 격분했습니다.

“나치의 희생자들 중 어느 누구도 비젠탈에게 나치를 용서할 수 있는 권한을 위임한 적이 없다. 나치가 참회한다고 해도 용서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희생자들에 대한 배신행위요 또 다른 불의(不義)의 폭력일 뿐이다…”
참회는 가능해도 용서는 정녕 불가능한 것인가?

 


폴란드의 아우슈비츠에서는 매년 1월 26일 ‘죽음의 행진’이 펼쳐집니다.
수용소의 가스실로 끌려가던 유태인들의 발걸음을 재현(再現)하는 추모행사입니다.
유태인들은 죽음의 행진을 하면서 이렇게 기도한다고 합니다.
“자비로우신 야훼여, 유태의 어린이들을 학살한 자들에게 자비를 베풀지 마소서.
저들이 참회하더라도 결코 용서하지 마소서…”

그런데,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온갖 고생 끝에 겨우 살아 나온 어느 유태인 여성에게 누군가 물었습니다. “독일인들에게 복수하고 싶지 않습니까?”라고.
그러자 그 유태인 여성은 엷게 웃음 지으며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복수심으로 내 삶을 파멸시키고 싶지 않습니다. 그렇게 파멸해 버리기엔 내 인생은 너무나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이랍니다.”

흑인 갱 두목이자 사형수인 투키 윌리엄스(S. Tookie Williams)는 감옥 안에서 불우 청소년들을 위한 저술과 인터넷사이트 운영 등 활발한 선도활동을 벌여온 ‘감옥 속의 비폭력운동가’로, 다섯 차례나 노벨평화상 후보에 오른 인물입니다.

숱한 사면 청원에도 불구하고 아놀드 슈워제네거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과연 터미네이터답게(?) 사형집행을 명령합니다. 갱 두목은 용서 ‘받지’ 못한 채 독극물 주사로 처형되었고, 미국 사회도 성실한 비폭력운동가 한 명을 끝내 용서‘하지’ 못했습니다.

조국의 독립운동을 벌이다가 18년 동안 중국 감옥에 갇혀있었던 한 티베트 승려에게 달라이라마가 물었습니다.
“감옥 안에서 무엇이 가장 큰 걱정이었습니까?”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걱정은 단 한 가지, 중국인들에 대한 용서의 마음을 잃게 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승려는 감옥 안에서 이미 자유를 누리고 있었습니다.
가해자 중국인들을 향해 열린 그 넉넉한 용서의 마음으로.

백인정권 하에서 27년 동안 감옥에 갇혔던 남아공의 넬슨 만델라 대통령은 백인들에게 보복정책을 쓰지 않고 ‘진실과 화해 위원회(Truth and Reconciliation Committee)’를 만들어 만행(蠻行)에 대한 참회와 관용의 기회를 허락했습니다.

내 생각으로는, 노벨평화상을 받은 만델라보다 그에게 상을 준 노벨상위원회가 더 큰 영광을 안았습니다. 위인(偉人) 만델라에게 평화의 상을 줄 수 있는 영광을. 
 


불세출(不世出)의 작가 토스토예프스키는 국사범(國事犯)에 연루되어 사형을 선고받고 처형을 기다리던 중, 극적으로 특사(特赦)를 받아 시베리아에 유형(流刑)되었던 경험이 있습니다. 이 위대한 철인작가(哲人作家)는 자신의 생생한 체험에서 솟아오른 깨달음을 소설 <백치>에서 이렇게 밝히고 있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죽였다고 그 사람을 또 죽인다고? 그럴 수는 없다. 사형은 영혼에 대한 모독이다.”

예수님의 기도문에는 용서의 간구보다 용서의 의무가 먼저 나옵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사람을 용서해준 것 같이,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마태복음 6:12). 즉, 남을 용서 ‘하지’ 않으면 자신도 용서 ‘받지’ 못합니다.

중관(中觀)의 깨달음으로 대승불교(大乘佛敎)의 토대를 닦은 나가르쥬나(龍樹)는
“극악무도한 자일수록 특별한 자비를 베풀어주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동해보복(同害報復)의 탈리오 법칙(Lex Talionis)에 철저한 이슬람도
“피해자가 대가(代價, Diya)를 받고 가해자를 용서하면, 가해자를 처벌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칩니다(꾸란 4:92).

복수(復讐)의 정의 속에는 사랑이 없고, 헤픈 용서에는 사랑은 있어도 정의가 없습니다.
정의 없는 사랑은 진실을 왜곡하고, 사랑 없는 정의는 진실의 가치를 절하(切下)합니다.
정의와 사랑은 서로를 만나지 않는 한, 어느 것도 아직 진실은 아닙니다.

참회가 가해자의 양심이라면, 용서는 피해자의 양심입니다.
참회는 범죄의 돌이킴, 용서는 복수심의 돌이킴입니다. 신학자 에밀 브루너(Emil Brunner)는 “돌이킨 양심(The Repented Conscience)은 정의와 사랑이 하나로 만나는 자리”라고 지적했습니다. 정의와 사랑이 하나로 만나는 자리, 곧 진실의 자리입니다.

복수심에 불타는 정신은 서늘하고, 복수를 끝낸 영혼은 허탈합니다.
복수는 가해자가 진 빚을 탕감해버릴 뿐, 피해자의 어두운 영혼을 위로하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용서는 가해자에게 빚을 두 번 떠 안깁니다.
피해자에게 상처를 입힌 빚 하나, 피해자로부터 용서를 받은 빚 또 하나…
그만큼 피해자의 영혼도 풍성해질 것입니다.

‘용서받지 못한 죄’의 슬픔은 깊고 무겁습니다.
죽어가면서 용서를 애원했으나 끝내 버림받은 나치 친위대원처럼.

‘용서하지 못한 죄’의 슬픔은 그보다 더 깊고 마음의 짐도 더 무거울지 모릅니다.
친위대원의 손을 끝내 뿌리치고 만 비젠탈의 그 갈등하는 영혼처럼.
참회하며 내미는 사형수의 손…
뿌리칠 것인가,
가슴에 끌어안을 것인가?


- 이우근  / 서울행정법원장 / 출처:
www.shareplaz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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