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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하느님의 사람’ 성 요셉 - 2008.3.15 토요일 한국 교회의 수호자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배필 성 요셉 대축일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08-03-15 조회수535 추천수4 반대(0) 신고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08.3.15 토요일 한국 교회의 수호자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배필 성 요셉 대축일
                                                
사무하7,4-5ㄴ.12-14ㄱ 로마4,13.16-18.22 마태1,16.18-21.24ㄱ

                                                    
 
 
 
‘하느님의 사람’ 성 요셉
 


고향이 사라져가는 시대라 하지만,
고향은 사라져갈 지 몰라도
고향을 찾는 귀소본능(歸巢本能)조차 사라질 수는 없습니다.
 
많은 이들이 끊임없이 고향을 찾는 마음으로 여기 수도원을 찾습니다.

오늘은 요셉 성인을 주보성인으로 모신 저희 성 베네딕도회 요셉수도원이
스물 한 번째 맞이하는 주보 축일이기도 합니다.
 
요셉수도원을 배경한 불암산이 마치 요셉 성인의 넉넉한 품을 연상케 합니다.
10년 전에 써놓고 자주 읽어보는 ‘산처럼’이란 애송시입니다.

“언제나 그 자리에 머물러
  가슴 활짝 열고
  모두를 반가이 맞이하는
  아버지 산 앞에 서면
  저절로 경건 겸허해져
  모자를 벗는다.

  있음 자체만으로
  넉넉하고 편안한
  산의 품으로 살 수는 없을까
  바라보고 지켜보는 
  사랑만으로
  늘 행복할 수는 없을까?”

산의 품 같은 하느님의 사람, 요셉 성인입니다.
 
믿는 이들에겐 너무나 정답고 친숙한 이름 요셉 성인이라,
성인의 이름을 딴 세례명이 그리도 많은가 봅니다.
 
아버지와 남편의 권위와 힘이 날로 쇠퇴해 가는 시절에
아버지의 모범이자 남편의 모범이시고 신앙인의 모범이신
하느님의 사람 성 요셉의 면모를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성 요셉은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세상이 어지럽고 혼란할수록 필요한 기도입니다.

영혼의 호흡과 같은 기도요,
말 그대로 ‘살기위하여’ 기도합니다.
 
숨 쉬듯이, 밥 먹듯이 기도해야 삽니다.
살아있다고 다 살아있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하지 않아 영혼이 죽어 가면 육신이 살아있다 해도 살아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과의 대화가 기도입니다.
이 대화의 단절로 고립 자폐되어
삶의 의미를 잃고 무기력하게, 외롭고 쓸쓸하게 지내는 이들 얼마나 많은지요?
이래서 날로 늘어가는 우울증, 정신질환자들에 숱한 병자들입니다.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된 사람입니다.
아무리 하느님 잊고 바쁘게 살아도
마음 속 깊이 하느님 찾는 본능은 누구나 있는 법입니다.
 
빵만으로 사는 게 아니라 하느님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기도해야 영혼도 살고 육신도 삽니다.
내면 깊이 잠재해 있는 하느님 찾는 마음을
기도로 활짝 꽃 피어내야 삶의 탄력도 감각도 살아나 기쁘게 삽니다.
 
아브라함, 다윗은 물론 성 요셉도 모두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하느님과 늘 대화했던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직접 하느님의 축복 말씀을 들은 아브라함이요,
나단 예언자를 통해 하느님의 축복의 약속말씀을 들은 다윗입니다.
 
늘 하느님과 가까이 살았던 기도의 사람들임을 깨닫습니다.
오늘 요셉도 밤샘 기도 중에 주님의 천사의 말을 들었습니다.
 


둘째, 성 요셉은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기도와 함께 가는 믿음입니다.
기도와 더불어 하느님께 깊이 뿌리내려가는 믿음입니다.
믿음의 뿌리입니다.
 
과연 여러분의 믿음의 뿌리는 어느 상태에 있습니까?

거목의 나무들을 보면 그 보이지 않는 뿌리를 짐작할 수 있듯이
삶의 모습을 통해 짐작되는 믿음의 뿌리들입니다.
 
하루아침에 내리는 나무뿌리가 아니듯
몇 번의 기도로 깊어지는 믿음의 뿌리가 아닙니다.
 
평생 꾸준히 죽을 때 까지 기도해야 하고 믿음의 뿌리 내려야 합니다.

하느님은 믿음을 보십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느님을 기쁘게 해드릴 수 없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자기의 약함에 초점을 두지 않고
하느님의 전능에 초점을 둡니다.

자기의 죄에 절망하지 않고 하느님의 은총과 자비에 희망을 겁니다.
희망이 없어도 희망하며 하느님의 약속 말씀을 믿은 아브라함이었습니다.
 
죽은 이들을 다시 살리시고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도록 불러내시는 하느님을 철석같이 믿은
아브라함이었습니다.
 
하여 아브라함은 하느님을 믿는 우리 모두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순전히 고립 단절된 혼자의 믿음은 없습니다.
교회 공동체와 전통에 뿌리 두고 있는 믿음입니다.
 
교회 믿음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성인성녀들의 믿음의 있고
성모 마리아와 성 요셉의 믿음이 있고,
숱한 예언자들과 다윗 그리고 마지막 믿음의 뿌리 아브라함에 닿습니다.
 
바로 이 교회 공동체와 전통에 뿌리를 내리고
믿음을 흡수하는 참 좋은 시간이 이 은혜로운 미사시간입니다.

믿음은 막연하거나 추상적이지도 않습니다.
 
침묵과 인내, 배려와 겸손으로 표현되는 믿음의 덕입니다.
다음 복음의 묘사 한 구절에서 환히 드러나고 있는
요셉의 성덕인 침묵과 인내, 배려와 겸손의 덕입니다.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고
  또 마리아의 일을 세상에 드러내고 싶지 않았으므로,
  남모르게 파혼하기로 작정하였다.”

진정 믿음 좋은 사람들은
침묵과 인내의 사람들이자 배려와 겸손의 사람임을 깨닫습니다.
 


셋째, 성 요셉은 순종의 사람이었습니다.

우리 삶의 여정은 순종의 여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순종의 실천에서 믿음의 진정성이 입증됩니다.
기도와 믿음, 순종이 밀접한 관계에 있음을 봅니다.
 
기도와 믿음의 열매가 순종의 삶입니다.
가을의 잘 익은 열매들이 잘 떨어지듯이 성숙한 사람들의 순종도 이와 같습니다.
 
순종을 보아 성숙의 정도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하여 일상의 크고 작은 순종을 잘한 이들,
마지막 순종의 죽음도 거룩하고 아름답게 맞이할 수 있습니다.
 
순종의 사람들은 요리조리 변명이나 핑계로 피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직면하여 믿음과 지혜로 돌파해 나갑니다.
 
이것저것 요구하며 불평이나 불만하지 않고
찬미와 감사하는 마음으로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받아들입니다.
 
바로 오늘 복음의 다음 한 대목에서 환히 빛나는 요셉의 순종의 덕입니다.
 
“잠에서 깨어난 요셉은 주님의 천사가 명령한 대로 하였다.”

아마 하느님도 요셉의 순종이 참 고마웠을 것입니다.
평생,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며 살았던,
말 그대로 하느님의 사람, 요셉 성인이셨습니다.
 
요셉 성인의 넉넉한 사랑의 품이 있어,
든든한 믿음의 울타리 있어 가능했던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이었습니다.

요셉수도원의 수사님들과 요셉수도원을 사랑하여
갖가지 모습으로 도와주시는 은인들은 참 행복합니다.
 
양 편에 두 수호성인,
성 요셉과 성 베네딕도의 보호아래
주님의 길을 따라 하느님께 나아가기 때문입니다.
 
두 성인 모두가 기도의 사람, 믿음의 사람, 순종의 사람이었습니다.
 
결론하여 명실 공히 하느님의 사람이셨습니다.
 
좋으신 주님은 은총의 사순시기,
성 주간 전 마지막 토요일,
성 요셉 오아시스 대축일 미사를 통해
우리 모두에게 위로와 평화와 축복을 풍성히 내려 주십니다.
 
하여 우리 모두
기도와 믿음, 순종의 하느님의 사람들로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주님께 감사하라. 그 좋으신 분을, 영원도 하시어라. 그 사랑이여.”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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