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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 2008.3.12 사순 제5주간 수요일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08-03-12 조회수501 추천수4 반대(0) 신고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08.3.12 사순 제5주간 수요일                                        
다니3,14-20.91-92.95 요한8,31-42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지금은 70대 나이의,
60-70년대의 인기 가수 최 희준 씨는
‘당신에게 노래는 무엇이냐?’는 기자의 물음에 다음 같이 대답합니다.

“말만 들어도 사춘기 때처럼 여전히 가슴이 뛴다.”

무지개만 봐도 가슴이 뛴다는 워드워츠 시인의 말도 생각이 납니다.
 
무엇인가에 가슴 뛰지 않는다면 살아있는 것이 아닙니다.
진리와 자유란 말만 들어도 뛰는 가슴에 투신하며
영원한 청춘을 살았던 열정의 사람들 인류 역사상 얼마나 많았었는지요.

진리와 자유는 하느님의 다른 이름입니다.
하느님은 진리와 자유의 뿌리입니다.
 
하느님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벅차 눈물이 난다는 어느 분의 고백도 생각납니다.
 
오늘 아침 마음 설레게 한 성경 몇 구절을 인용합니다.

“저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주님, 저의 힘이시여.”

“주님은 내 등불을 밝혀 주시고, 당신은 내 어둠을 비추시나이다.”

“생명의 샘이 진정 당신께 있고, 우리는 당신 빛으로 빛을 보옵나이다.”

“주여, 당신 자비가 하늘까지 이르고, 진실하심이 구름까지 닿나이다.”

오늘 아침 성무일도 시편 구절들입니다.
 
생명과 빛,
자비와 진실의 하느님이 우리를 감동으로 한없이 마음 설레게 합니다.
 
다음 히브리서의 말씀도 큰 위로와 힘이 되었습니다.

“하느님을 피난처로 삼은 우리는 큰 용기를 얻어
  우리 앞에 놓인 희망을 굳게 붙잡을 수 있습니다.
  이 희망은 닻과 같아서 우리의 영혼을 안전하고 든든하게 보호해주며
  하늘 성전의 지성소에 까지 들어가게 해줍니다.”

희망의 닻과 같은 하느님이요,
매일의 이 거룩한 성체성사입니다.

누구나 희구하고 추구하는 자유입니다.
자유로워서 사람입니다.
 
자유로울 때 행복합니다.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된 인간의 특권이 자유입니다.

과연 여러분은 자유롭습니까?

환경이 아름답고 공간이 넓다고 자유로운 게 아닙니다.
몇 평의 공간에서도 자유로운 사람이 있는가 하면
드넓은 공간에서도 자유롭지 못한 사람이 있습니다.
 
또 맘대로 할 수 있다고 하여 자유가 아닙니다.
목표 없는 방종의 자유에는 허무의 어둠만 가득할 뿐입니다.
 
선물이자 짐 같은 자유입니다.
감당할 수 없는 자유에 시간과 정력을 탕진하는 사람은 또 얼마나 많습니까?

활짝 열린 충만으로 빛나는 자유가 진정한 자유입니다.
 
쟁취할 수 있는 자유가 아니라 선물로 주어지는 자유입니다.
하느님 없이는 참된 자유도 없습니다.
 
얼마 전 써놓은
‘나보다 큰 창(窓)을 지닌 사람 있을까? 라는 시를 나누고 싶습니다.

                         
나보다  큰 창(窓)을 지닌 사람 있을까? 
                         
임 그리울 때마다                            
                          
답답할 때 마다                            
                          
눈 들어                           
                         
바라보는 하늘 창(窓)                          
                        
 
참 크기도 하다                            

                          
내 보기에                             
                          
대부분    
                        
사람들 하나하나가                             
                          
집이, 사회가, 나라가, 세상이                             
                          
하늘 창(窓) 없는                              
                          
무덤 같아 보인다.                             
                          
감옥 같아 보인다.                             

                          
대부분 사람들                            
                          
무덤 속에서                              
                          
감옥 안에서                             
                          
살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나보다                             
                          
큰 창(窓)을 지닌 사람 있을까?                            
                          
임 그리울 때마다                             
                          
답답할 때 마다                             
                          
눈 들어                             
                          
하느님을 뵙듯                             
                          
하늘 창(窓)을 바라본다.                             
                          
참 크기도 한 하늘 창(窓)이다.

 
 
세상을 바라볼 때 마다 자주 느끼는 진실입니다.

무덤 속의, 감옥 안의 사람들,
모두 참된 자유를 상실한 사람들을 상징합니다.

하늘 창이, 하느님이, 없는 곳 모두가 무덤이요 감옥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은 고맙게도 참 자유의 비결을 가르쳐 주십니다.

“너희가 내 말 안에 머무르면 참으로 나의 제자가 된다.
  그러면 너희가 진리를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는 정녕 자유롭게 될 것이다.”

참 자유에 이르는 길, 이 말씀뿐입니다.
 
주님 말씀 안에 머무름으로
진리의 말씀이 피가 되고 살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몸과 마음에 젖어 들게 하는 겁니다.
매일 은혜로운 성체성사를 통해
진리의 말씀과 사랑의 성체를 모심으로
주님과 하나 되어 진리를 깨닫고
참 자유에 이르게 되는 우리들입니다.
 
주님과의 인격적 관계가 깊어지면서
진리와 자유, 생명과 사랑으로 충만한 삶입니다.
 
진정한 자유는 이것 하나뿐이요
이 밖의 자유는 모두가 허무의 어둠만 가득 안겨주는 거짓 자유입니다.

대부분의 수도영성대가들은
수도생활을 ‘더 큰 내적 자유를 추구하는 생활’이라 정의합니다.
 
하느님 추구의 삶은 바로 자유 추구의 삶임을 깨닫습니다.

과연 여러분은 자유롭습니까?

주님의 말씀공부와 말씀 실천을 통해 주님과의 관계를 깊이 하십시오.

이래야 주님의 제자가 되어 진리를 깨닫게 되고 더불어 자유로워집니다.
 
말씀의 육화를 통해 주님과의 관계가 깊어지면서
진리를 깨달아 갈수록 드넓어지는 내적공간에 내적 자유입니다.

오늘 1독서의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 세 청년들,
최악의 환경 속에서도 참 자유를 누리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타오른 불가마가 상징하는바
생존경쟁 치열한 사회도 될 수 있고,
죄악이 범람하는 공동체도 될 수 있고,
분노나 질투, 불안이나 두려움, 걱정이나 근심 가득한
우리의 내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바로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도
주님이 함께 계실 때 내적 자유를 누리고,
몸과 마음 하나 다치지 않습니다.

“우리가 묶어서 불 속으로 던진 사람은 세 명이 아니냐?
  그런데 내가 보기에는 네 사람이 결박이 풀렸을 뿐만 아니라,
  다친 곳 하나 없이 불 속을 거닐고 있다.
  그리고 넷째 사람의 모습은 신의 아들 같구나.”

신의 아들이 상징하는바 하느님의 현존이자 하느님의 자유입니다.
하느님의 현존 안에, 자유 안에 삶인 데
감히 누가 다치게 할 수 있겠습니까?
 
사실 저는 타오르는 불가마 같은 생존경쟁 치열한 세상에서, 공동체에서,
몸과 마음 하나 다치지 않고
믿음으로 살아가는 위의 세 청년과 같은 형제자매들을 종종 만나곤 합니다.
 
오늘도 이 거룩한 미사시간,
주님은 당신 말씀과 성체의 은총으로
진리를 깨닫게 하시고 자유롭게 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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