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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마음으로 존경하는 사제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08-03-12 조회수646 추천수9 반대(0) 신고
 
 
 
 
 

마음으로 존경하는 사제 ... 윤경재

  - 경향잡지 3월호 '신자에게,사제에게' 게재 글


1. 제가 마음으로 존경하는 사제 몇 분이 계십니다. 먼저 황철수 주교님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주교님께서 안식년 한 달 동안 부산에서 택시 기사를 하셨답니다. 첫 출근한 날 몸뻬바지 차림을 한 노년의 여 사장이 “배우는 마음으로 하시라.”는 충고를 귀담아 들으며 운전을 시작합니다.


첫 날부터 초보티를 감추지 못해 실수를 연발 합니다. 경험의 때가 묻지 않은 초보는 신앙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세례 받으면 당장 예수님과의 친교 속에서 평화롭게 살 것 같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 이유가 ‘예수님의 때’가 묻어나도록 묵묵히 십자가의 의미를 견뎌내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하루를 돌아봅니다. “나는 오늘 많은 사람들을 만났으나 그들의 삶과 모습까지는 만나지 못했다. 돈을 벌려고 작정하니까 승객들이 돈으로 보인 것 같다.” “세상과 사람들을 애정 어린 눈으로 보지 않으면 어느 누구에서도 삶의 향기를 맡을 수 없구나.” 기억에 오래 남는 사람들은 대개 친절하고 때 묻지 않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지식이 높지도 부자도 아니지만 행복하고 선한 모습이 더 오래 기억되었습니다.


택시운전도 치열해서 한 명이라도 더 태우려면 한 치 양보 없이 차를 몰아야 했습니다. 뼈저리게 느낀 것은 ‘1초라도 뒤지면 손해’라는 냉엄한 현실이었습니다. 경쟁에 밀리지 않으려면 내 위주로 생각하고, 내 위주로 차선을 잡아야 했습니다. 결국 이런 모든 것이 평화를 잃게 만드는 원인이었습니다.


“믿음을 갖고 살면 세상 어떤 독으로부터도 해를 입지 않는다.(마르 16, 18)”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나 자신을 포함해 우리 모두는 믿음이 약하기에 세상 독에 너무 쉽게 해를 입는다. 미움의 독, 허영의 독, 자만심의 독 등등 모두 자신의 길만 고집하기 때문에 마음의 평화를 잃는다. 또 그 때문에 고독해진다고 쓰십니다.


길 가던 수녀님을 보고 느낀 감상을 이렇게 씁니다. “세상 사람들은 온갖 탈 것을 이용해 정신없이 달린다. 그러다 어느 순간 멈춰서면 자신이 서 있는 곳이 어딘지, 또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게 현대인들의 삶이다. 묵묵히 걸어 다리를 건너는 수녀님의 모습이 현대인들의 삶과 대조적이라 인상적이었다.”


2. ‘하늘로부터 키 재기’라는 묵상집을 내신 민성기 요셉 신부님도 제 마음 속에 깊이 남아 있습니다. 민 신부님께서 선종하신지 벌써 삼년여가 되었지만 아직도 인터넷 사이트에는 그분을 추모하는 발길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마흔 일곱의 나이로 아깝게 하늘나라에 가셨지만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주십니다. 많은 교우들이 ‘하늘 우편함’이라는 난을 통해 그분과 영적 교류를 하고 있습니다. 겸손과 사랑을 배우고 있습니다.


“나는 수도자입니다. 사제입니다. 내가 이 땅에 존재하는 이유가 바로 수도자로서, 사제로서의 역할 때문입니다. 그러나 나는 나의 신원에 위기의식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어정쩡한 삶을 사는 ‘바보스런 직업인’으로서의 나의 꼬락서니를 찾아냅니다.”


“나는 알아들었습니다. 내가 길들여진 채 세상이라는 시·공간에 매이거나 안주하지 말고 끊임없이 새롭게 변화, 탈바꿈하라는 메시지로 알아들었습니다. 사람답게 살지 못하는 애착으로 점철된 불모의 땅, 죽음의 땅이 아니라, 참으로 사람답게 살아가는 이탈의 삶을 사는, 살아있는 땅, 생명의 땅이 될 것이라는 메시지가 마음 저 깊은 곳으로부터 어떤 영의 소리가 되어 울려나왔습니다. 그러자 지금까지 고민하던 위기의식이 저편으로 사라져 가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렇게 나는 두려움으로부터 해방되었습니다.”


3. 알코올 사목센터 지도 신부이신 ‘ㅎ’신부님도 소개합니다. 제가 잠시 다녔던 본당의 주임이셨고, 그 본당을 건축하시는데 정말 애쓰셨습니다.


‘ㅎ’신부님의 솔직한 묵상글을 읽으면서 하느님의 깊은 섭리를 느꼈습니다. 인간의 약점마저도 옳게 쓰시는 주님의 손길을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진정 회개할 때,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 그분의 계획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룬다.(로마 8,28)” 는 말씀을 깨달았습니다.


“한 때는 알코올 중독으로 흐트러진 삶 속에 회의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이런 나를 부르시어 알코올 중독자 사목을 담당하게 하신 하느님의 뜻의 오묘하심에 그저 ‘주님! 여기 있습니다.’하며 털썩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는 자신을 돌아봅니다.”


“10년이 넘도록 알코올 중독으로 고통 중에 있었던 나였습니다. 이제 칠흑 같은 암흑에서 벗어나, 고통이 컸기에 고통에서 벗어난 기쁨이 또한 얼마나 큰 것인가를 느끼며, 하느님께서 다시 주신 나의 삶을 알코올 중독으로 고통 받고 있는 사랑하는 형제, 자매들을 위해 모두를 바치자고 굳게 다짐합니다.”


4. 논어에 “有德者 必有言(유덕자 필유언)”이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덕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말씀을 가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말씀은 단순히 입으로 내는 소리가 아닙니다. 그 사람에게서 풍겨 나오는 인품, 언행 등등 모든 것을 나타냅니다. 굳이 말로하지 않아도 드러나는 보석입니다.


위에 소개한 사제님들 모두 그런 ‘말씀’을 지니고 계신 분들입니다. 예수님께서 ‘로고스’ 곧 말씀이셨듯이 그분들도 그 말씀을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을 닮으려고 사제가 되신 그 길을 올바로 걸으셨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당신들 모습 속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실천하려고 노력하신 분들이셨습니다. 낮은 자리에 내려가 이웃을 만나려 했습니다. 자기의 약점을 솔직히 드러내어 주님께서 올바로 쓰시도록 내어드렸습니다. 그러기에 스스로 말씀이 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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