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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418) 우리는 울었지만 너는 웃었다 / 이해동 신부님
작성자유정자 쪽지 캡슐 작성일2008-03-10 조회수811 추천수11 반대(0) 신고
 
 
 
 
 
 
3월 둘째주 사순 제5주일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 ? " (요한 11,1-45)
 
 
 
                    우리는 울었지만 너는 웃었다
 
 
                                                                   글 : 이해동( 살레시오 수도회 신부)
 
 
영화가 생긴지 얼마 안된 시대에 멍청이 마을의 두 멍청이가 만났다.
 
"야, 난 어제 처음으로 영화라는 것을 보았단다."
 
"응와! 좋았겠다! 무슨 영화를 보았는데?"
 
"응, 서부영화라는 것인데......  사람들이 말 타고 총싸움하고.....
 얼마나 재미있었는지 몰라."
 
"나도 내일은 그  영화를 꼭 보아야겠구나!"
 
"아니, 그렇게 안될 걸. 그 영화에 나온 사람들이 서로 총싸움해가지고 거의
 다 죽어버렸거든! 맨 나중엔 주인공까지 총 맞고 죽으면서 영화가 끝났어!"
 
"아, 그랬어? 그러면 안되겠구나!"
 
이 이야기를 영화가 있는 시대의 사람들은 이해할 수 있지만, 영화가 전혀 없었던
시대의 사람들은 전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나자로가 잠들어 있으니 이제 내가 가서 깨워야겠다." 고 말씀하신다.
 
그러나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난다는 것을 상상조차 하지 못한 제자들은
죽은 사람을 살리겠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죽은 나자로가 아닌
잠든 나자로에 대한 말씀으로 이해했다.
 
그래서
 
"주님, 나자로가 잠이 들었다면 곧 일어나지 않겠습니까?"
 
하며 멍청이 마을의 멍청이처럼 엉뚱한 대답을 한다.
 
평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아있을 뿐이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을 것이다!" 
 
하시면서 삶 안에는 죽음이 포함되어 있지만
그 죽음이 죽음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부활이란 신비가 숨어 있어,
삶이 죽음을 통해 더 크고 더 풍부한 영원한 생명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가르쳐주셨다.
 
하지만 제자들은 그때까지도 그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다.
 
 
 
우리는 삶을 이해한 만큼만 산다.
비행기를 타고서도 인생을 자동차로 이해하는 사람은 땅에 얽매여 살 것이고
반대로 자동차를 타고서도 인생을 비행기로 이해하는 사람은
자동차에 날개를 달아
하늘을 날며 자유로운 비행을 즐길 것이다.
 
우리 인생도 수의에 싸서 무덤에 묻고 영원히 죽음에 가두어 두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나자로처럼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무덤에서 꺼내어 수의를 풀고 살아 움직일 수 있다.
 
아라비아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가끔 해주는 말이 있다.
 
"얘야, 네가 이 세상에 태어날 때
 사람들은 너를 보고 웃었지만 너는 울었단다.
 네가 죽을 때
 사람들은 너를 보고 울지만 너는 웃으면서 하느님 앞에 가게 될 거야!"
 
우리도 우리 자신과 아이들에게 이런 말을 자주 해주어서 세상에서의 삶뿐만 아니라
하느님 안에서의 영원한 생명을 얻도록 해주면 좋겠다.
 
우리 삶 안에 부활의 신비가 살아 숨쉬고 있음을 일깨우며 살자.
 
 
 
                    ㅡ 가톨릭 다이제스트 중에서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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