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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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07-12-27 조회수908 추천수17 반대(0) 신고
 
2007년 12월 27일 성 요한 사도 복음사가 축일
 

 

They both ran,

but the other disciple ran faster than Peter
and arrived at the tomb first;

(Jn.20.4)

 
제1독서요한 1서 1,1-4
복음 요한 20,2-8
 
오늘의 독서와 복음 듣기

 
 
 
한 맹인이 지팡이를 짚으며 조심스럽게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웬 개 한 마리가 겁도 없이 다리 한 쪽을 들더니 그 맹인의 바지에 오줌을 싸는 것이 아니겠어요? 하지만 맹인은 뜻밖에도 화를 내지 않고 저 멀리 달아난 개를 향해 과자를 꺼내더니 주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때 마침 한 신부님이 지나가다가 그 광경을 보고서는 감동어린 목소리로 말합니다.

“왼뺨을 맞거든 오른뺨도 마저 내밀라는 성경 말씀을 실천하는 그 모습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저 같으면 머리를 한 대 쥐어박았을 텐데, 과자를 주다니요?”

그러자 맹인이 말했습니다.

“흠... 과자를 줘야 그놈의 대가리가 어디 있는지 알게 아니오?”

신부님이 보기에는 사랑의 실천을 하는 한 장면이라고 생각했던 것이지요.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가 못했습니다. 즉, 머리를 한 대 쥐어박기 위해서 개를 유인하는 한 모습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역시 이러한 모습을 취할 때가 많지 않았을까요? 다른 사람들에게는 올바른 모습을 취하면서도, 혼자 있을 때에는 이기적이고 욕심 가득한 모습으로 변하는 것. 말로는 사랑의 실천을 다짐하겠다고 약속하면서도, 나만을 위한 사랑의 실천으로 머무는 경우가 너무나 많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를 떠올려보십시오. 자기만을 알고 자기만의 이익을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일까요? 아닙니다. 자기가 아닌 다른 이웃을 위해서 최선의 노력을 다해 일하는 사람, 또한 이타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정작 나는 그렇게 살지 않고 있습니다. 남에게는 이타적인 사랑을 원하면서, 자기는 이기적인 사랑을 추구합니다.

오늘 축일을 보내는 사도 요한을 우리는 사랑의 사도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단순히 사랑에 관한 글을 많이 써서 사랑의 사도라고 말할까요? 물론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분 삶의 모습에서 예수님을 얼마나 사랑했는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우선 3년간 예수님을 쫓아다니면서 한순간도 빼놓지 않으려고 노력했지요. 최후의 만찬 때에도, 십자가 죽음의 순간에서도 예수님 곁에서 시선을 맞추고 있었습니다. 또한 예수님이 묻히셨던 무덤에 갔으며, 부활하신 주님을 제일 먼저 알아봅니다. 이 모든 행동이 바로 사랑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지요.

나의 주님께 대한 사랑을 반성하게 됩니다. 사도 요한이 사랑의 사도라고 불리는 것은 예수님을 너무나 사랑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인데, 나는 과연 얼마나 주님을 사랑한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요? 혹시 입으로만 사랑한다고 말하고, 실제로는 자기만을 사랑하는 이기적은 사랑만 실천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이타적인 사랑을 실천하도록 합시다.



최선을 다하는 삶(나폴레옹 힐, ‘성공을 위한 365일 명상’ 중에서)

우리는 승자냐 패자냐로 성공을 결정하고, 승리의 이면에는 반드시 패배가 있다고 믿는 살벌한 경쟁사회에 살고 있다. 그래서 어떠한 사람이 승리하면 다른 누군가가 패배해야 꼭 논리가 성립될 것만 같다. 그러나 사실 정말 의미 있는 경쟁은 자신과의 경쟁이다.

당신의 기준이 당신이 될 수 있는 최고의 것에 기반을 두고 있다면 당신은 결코 패배할 수 없다. 따라서 때때로 자신의 성과를 객관적으로 검토하는 시간을 가져라. 만일 기준에 미달되었다면 그 상황에 대해 평가하면서 자신에게 "다른 방법을 썼거나 내가 더 노력했더라면 이와 다른 결과가 나왔을까?"라고 물어보아라.

이때 대답이 "아니다" 이고, 자기 스스로 최선을 다했다고 만족한다면 과거에 연연하면서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 그리고 그 경험을 통해 배울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배우고 다음 행동으로 넘어가라.

당신이 한결같이 최선을 다한다면 일시적인 실패들은 아무 문제도 되지 않는다.
 
 
 
 Then the other disciple also went in,
the one who had arrived at the tomb first,
and he saw and believed.
(Jn.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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