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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오늘은 저에게 외로운 성탄입니다 . . . . [김양회 신부님]
작성자김혜경 쪽지 캡슐 작성일2007-12-24 조회수1,225 추천수15 반대(0) 신고

 




   전남 나주시 노안면 유곡리 산 29번지 현애마을.

   사람들에게 무관심과 두려움의 대상인 나환우들이 모여 사는곳.

   모두들 돼지농장을 하고 있기 때문에 숨쉬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온 동네가 쾨쾨한 냄새가 배어있는 곳.


   올해도 그곳을 찾아가 성탄 밤 미사를 드렸습니다.

   수녀님들이 계시지 않는 곳인데도 어떻게들 준비를 했는지...

   젊은 자매님 한 분이 제의를 준비하고 제대에 촛불을 준비해 주었고

   초등학교 5학년쯤으로 보이는 복사 한 명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누가 보더라도 작은 분위기,

   어떤 사람이 보더라도 가난한 분위기였습니다.


   저는 미사를 드리기 시작했고,

   그들을 향해 미리 준비한 강론을 시작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난하게 태어나셨고

   예수님을 만나려면 가난한 사람들 가운데서 만나야하며

   우리는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 
   고 외쳤습니다.

 

   그러나 강론을 하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어렵게 살아가는 이 사람들에게 내 강론이 과연

   어떤 위로와 도움이 되겠는가?

   가난하고 외롭고 힘들게 살아가는 이 사람들에게

   내가 하고 있는 강론이 과연 기쁜 소식이 될 수 있겠는가...?‘


   제 목소리의 힘이 점점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에게 아무것도 줄 수 없고 아무런 위로도 줄 수 없다는 생각에

   저의 강론은 허공을 향해 외치는 의미 없는 소리밖에 되지 않기에...!


   제단 앞에는 구유를 만들어 놓은 것이 보였습니다.

   썩은 나무토막을 잘라서 세워놓고

   전나무 가지를 꺾어다가 바닥에 깔아놓고는

   그 주위에는 깜박이 한 줄을 늘어놓은 말구유.

   누구 하나 관심 있게 바라보지 않을 작고 초라하기 짝이 없는

   구유였습니다.


   제가 만일 그들과 같은 처지에 놓였다면...

   친구들과 이웃들은 저를 멀리할 것이고,

   친인척들 모두들 저를 외면할 것이며,

   사랑하는 사람까지도 저를 피해야 할 것입니다.


   아니, 차라리 그들이 저를 피하기 전에

   내가 먼저 그들을 멀리했을 것입니다.

   그리고는 하느님을 원망할 것입니다.

   나를 낳아준 부모님을 원망하고 친구들을 원망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느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들에게는 하느님뿐이었습니다.

   제 눈에는 분명히 그렇게 보였습니다.


   미사가 끝나고 모두들 집으로 돌아가면서

   가난한 선물을 하나씩 받아 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노안본당에서 성탄기념으로 보내온 떡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모습이 어찌나 초라한지......,

   .

   .

   마치 실직자들이 굶주린 배를 채우기 위하여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 모습,

   텔레비전에서 보는 바로 그런 착잡한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는 지팡이에 몸을 의지하고 절룩거리며

   집을 향하여 걸어가는 사람들,

   저는 인사를 나누고 그들의 그 뒷모습을

   한동안 아무런 생각 없이 그냥 바라만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저 역시 사제관으로 향했습니다.

   아무도 없는 사제관!

   성탄에는 더욱 기뻐야하고,

   성탄에는 더욱 행복해야 한다는 기대심리 때문에

   성탄이면 오히려 더욱더 외롭고 쓸쓸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처음부터 그런 기대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뭔가 허전하고 적적한 고독감이 밀려들었습니다.


   성탄인데 가족이 없다는 생각,

   성탄인데 함께 음악을 듣고 커피를 마시며

   웃음꽃 피어날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지금 내 곁에 없다는 생각,

   그래서...

   저에게 오늘은 가난한 성탄이랍니다.

   그리고 오늘은 저에게 외로운 성탄이랍니다.


   그러나 알았습니다.

   이론으로만 알았던 사실을 오늘 몸과 마음으로 알았습니다.

   2천 년 전 예수님께서 탄생하실 때

   얼마나 가난하고

   얼마나 초라한 탄생이었는가를 눈으로 보고 알았습니다.


   예수님은 가난한 사람들을 통하여 저에게 다가오신다는 것을,

   예수님은 가난하고 소외당하여 외롭게 살아가는 사람들과

   함께 계신다는 것을 가슴으로 알았습니다.


   그래서 오늘 밤이 저에게는 정말 고마운 밤입니다.

   오늘 밤이 저에게는 거룩한 밤입니다.

   2천 년 전 성탄을 조금이나마

   몸으로 체험하게 된 오늘밤이 저에게는

   정말

   은혜로운

   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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