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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2월 23일 대림 제4주일 - 양승국 신부님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7-12-23 조회수696 추천수10 반대(0) 신고
 

12월 23일 일요일 대림 제4주일 -마태오 1장 18-24절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평생 간직하고픈 성탄카드>


   점심식사 때의 일이었습니다. 사랑하는 한 꼬맹이 친구가 제 팔을 끌고 제 옆자리에 앉으라고 성화입니다. “무슨 부탁이라도 있냐?”고 했더니, 그게 아니랍니다. 안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더니 쑥스러운 듯 식탁 밑으로 제게 건네주었습니다. 성탄카드였습니다.


   “뭘 이런 걸 다!”하면서 즉시 열어보려고 했더니, 여기서는 죽어도 안 된다며 나중에 보라고 야단을 칩니다.


   깜빡 잊어먹고 있다가 저녁 무렵에야 펼쳐보았더니 ‘대단한’ 성탄 카드였습니다. 비록 십 몇 년 전부터 써오던 ‘대림동 공식 성탄 카드’(디자인이 별로여서 버리기도, 그냥두기도 어정쩡한 카드)에다 비뚤비뚤한 글씨로 쓴 카드였지만, 정성 하나만은 대단했습니다.


   근사한 성탄장식 트리를 색연필이며, 사인펜까지 동원해서 정성껏 그렸습니다. 나름대로 노력한 흔적이 역력한 카드였습니다.


   “신부님께. 안녕하세요? 저 **예요. 그동안 저와 재미있게 놀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늘 절 도와주셔서 감사하구요. 신부님 보면 왠지 기분이 좋아져요. 이젠 겨울인데, 감기조심하시구요. 그리고 오래오래 사시구요. 신부님, 성탄 잘 지내시고 ‘삼가 명복’을 빌어요.”


   어떠신지요? 제게 있어 그 카드는 이 세상 그 어떤 값나가는 성탄카드나 성탄 선물보다 소중한 것이었습니다. 평생을 두고 간직하고 싶은 선물이었습니다.


   또 다시 성탄입니다. 사회 전반이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어느새 성탄의 본질을 망각한 소비행태가 성탄의 중심에 스며들어와 있군요.


   또 다시 선물로 다가온 이번 성탄절, 외적, 가시적, 부차적인 것들에 마음이 쏠리기보다 보다 본질적인 의미에 우리의 정신을 두는 경건하고 소박한 성탄절이 되길 바랍니다.


   ‘삐까번쩍’한 고가의 선물의 교환, 거나하게 한판 벌이는 성탄파티, 성탄 본래의 정신이 사라진 경축행사에 아기 예수님은 결코 자리하지 않으십니다.


   마음과 정성을 다해 만든 소박한 성탄카드, 아끼고 아껴서 모은 성금을 어려운 곳에 기부하는 손길, 서로 용서하고 화해하는 참 만남의 자리에 아기 예수님은 반드시 태어나십니다.


   존경하올 최덕기 주교님께서 2004년 12월호 ‘사목’에 쓰신 글이 이번 대림 기간, 늘 제 마음에 깊이 남아있었습니다.


   성탄절이 되면 어느 수녀님께서 들려주신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후덥지근한 여름날 밤 수녀님께서 불을 끄고 잠을 청하고 있을 때였답니다. 천둥번개가 치고 조금 뒤에 딱 하고 무언가 창에 부딪치는 소리가 나더니 푸드덕거리는 소리가 들렸답니다.


   수녀님께서 손전등을 들고 푸드덕거리는 곳을 비쳐보니 새가 피를 흘리고 있었습니다. 수녀님은 상처 입은 새를 치료해주려고 다가갔는데, 오리려 새는 아픈 몸으로 점점 더 구석진 곳으로 도망을 가더라는 것입니다. 몇 번을 시도하다가 수녀님은 자신이 오히려 새의 고통을 가중시키는 것 같아서 포기하고 돌아와서 이렇게 생각하였답니다.


   ‘이 몸이 새라면...’ ‘내가 새였다면 그 새에게 다가가서 그 새를 도와줄 수 있었을텐데...’


   하느님이 사람이 되어 이 세상에 오신 이유를 극명하게 잘 설명하는 일화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인간의 가련한 처지가 너무 안타까워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우리의 모습이 너무나 측은했던 나머지 우리에게 도움을 주시고 위로해주시고자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 오신 그분은 세상을 평정할 투사의 모습, 전지전능한 해결사의 모습이 아니라 우리의  시절과 똑 같은 나약한 한 아기의 모습으로 오신 것입니다.


   그 크신 분, 하느님이 우리에게 오신 이유는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와 고통을 나누기 위해, 슬픔을 나누기 위해, 죽음을 나누기 위해, 영원한 생명을 나누기 위해서입니다.


   “아들아, 지금 네가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구나. 그러나 안심하여라. 나 역시 살이 찢기는 고통을 겨우 겨우 참고 있단다. 아들아, 지금 네가 슬픔에 잠겨 있느냐? 그래도 마음 편히 가지 거라. 내 슬픔은 더 크단다. 이루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할 정도란다. 아들아, 죽음의 길을 가고 있느냐? 그래도 안심하여라. 나 역시 죽음의 고통에 신음하고 있단다. 아들아, 힘을 내거라. 모든 것, 잠시 지나가는 것이란다. 조금만 참으면 영원한 행복이 너를 기다리고 있단다.” 이렇게 우리를 위로하기 위해서 그분께서 인간이 되셨습니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가톨릭성가 93번 / 임하소서 임마누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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