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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07-12-23 조회수655 추천수7 반대(0) 신고
 
2007년 12월 23일 대림 제4주일 가해
 
 
 
 

Behold, the virgin shall conceive and bear a son,
and they shall name him Emmanuel,

(Mt.1.23)

 
제1독서 이사야 7,10-14
제2독서 로마서 1,1-7
복음 마태 1,18-24
 
 
오늘의 독서와 복음 듣기

 
 
자신은 운이 없어서 재산을 모을 수 없다며 매일같이 울상을 짓고 사는 젊은이가 있었습니다. 하루는 한 노인이 젊은이의 근심 어린 표정을 보고는 “젊은이, 왜 그렇게 기분이 안 좋은가?”하고 물었지요. 이에 젊은이는 대답합니다.

“저는 왜 이렇게 가난한지 모르겠어요.”

“가난하다고? 내 눈엔 자네가 부자로 보이는데?”라고 노인은 진심 어린 말투로 이야기했지요. 젊은이는 이해가 안 간다는 듯이 “왜 그렇게 생각하시죠?”라고 물었습니다. 노인은 대답은 않고 이렇게 되묻는 것이었어요.

“내가 오늘 자네의 손가락 하나를 부러뜨리는 대가로 10만원을 준다면 그렇게 하겠나?”

“미쳤습니까? 저는 그렇게는 못합니다.”

“그렇다면 내가 자네의 한 손을 부러뜨리고 100만원을 준다면 그렇게 하겠나?”

“겨우 100만원을 받고 누가 그렇게 하겠습니까? 저는 싫습니다.”

“자네가 지금 당장 팔십 세 노인이 되겠다면 1000만원을 주지. 그렇게 하겠나?”

“팔십 세 노인이면 이제 얼마 살지도 못할 텐데, 1000만원이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싫어요.”

“자네가 지금 당장 죽는다면 1억 원을 주지. 그렇다면 하겠나?”

“죽으면 돈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싫습니다.”

“거봐. 자네는 이미 1억이 넘는 돈을 가지고 있는 셈이지 않나? 그런데 뭐가 가난하다고 불만이야?”

그제야 젊은이는 더 이상 불평을 하지 않게 되었다고 합니다. 내가 이미 많은 것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지요. 어쩌면 우리들의 일반적인 모습이 이 젊은이의 모습은 아닐까요? 즉, 내가 가지고 있지 못한 것에 대한 불평과 불만으로, 있는 것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을까요?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요셉 성인을 묵상해 보았으면 합니다. 그는 성모님의 잉태소식을 듣고는 남모르게 파혼하기로 결정하지요. 이 말은 그 누구와도 상의하지 않고 혼자서 결정했다는 것을 뜻하기도 합니다. 즉, 그는 스스로 판단했고 스스로 결정했던 것이지요. 아마 그는 불평과 불만으로 가득 찼을 것입니다. 하필이면 자신의 약혼녀 마리아에게 이런 일이 생기냐고 말이지요. 하지만 혼자 했던 그의 판단이 과연 올바른 판단이었을까요?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땅에 강생할 예수님을 맞이하지 않는 판단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이 개입하시지요.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라는 임마누엘의 뜻처럼,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을 받아들이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우리 곁에 강생하시는 예수님을 받아들일 수 있으며, 바로 이때 주님께서 주시는 행복 안에서 참된 기쁨과 평화를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내 불평과 불만을 떠올려 보세요. 혹시 하지 말아야 할 불평과 불만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지금이 최악은 아니다(앤드류 매튜스, ‘즐겨야 이긴다’ 중에서)

누구나 삶이 지독히 힘들게 느껴질 때가 있다. 세상에 자기 혼자만 남은 듯하고 청구서는 쌓이며, 직장은 잃고, 사랑하는 사람도 떠났다. 눈앞이 막막해지면서 세상이 온통 잿빛으로 물들었다. 숱한 문제가 매설된 지뢰밭 같은 미래를 떠올리며, 누구도 지금과 같은 위기를 극복하지 못할 것이라 한탄한다.

로버트 슐러 박사에게 전화를 걸었던 한 남자의 이야기를 나는 즐겨한다. 그들의 대화는 이렇게 이어졌다. 먼저 남자가 말했다.

“다 끝났어요. 난 끝장이에요. 돈을 몽땅 날렸어요. 전부 잃었다고요.”

슐러가 물었다. “여전히 볼 수는 있나요?”

“네, 아직 볼 수 있어요.”

“여전히 걸을 수는 있나요?”

“네. 아직 걸을 수도 있죠.”

“내게 전화한 것을 보니 분명 들을 수도 있겠죠?”

“네. 물론이죠.”

“그럼, 모든 게 그대로군요. 잃은 건 당신 돈뿐이군요.”

누군가 이렇게 물을 수도 있다. “일어날 수 있는 일 중에 최악의 일은 뭔가요? 그런 일이 일어나도 살 수 있을까요?” 최악의 일이 일어난다면 몹시 고통스럽겠지만, 그렇다고 세상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그러면 다음 질문이 이어진다. “그런 상황에서도 배우는 게 있을까요?” 지난날을 돌이켜 보면 많은 경우 어려운 시기에도 배우는 바가 있다. 시련은 삶의 균형을 이루게 하고, 고통 중에서도 배우는 바가 있음을 깨닫게 한다. 성공한 사람일수록 어려운 시기를 배움의 기회로 삼는 법이다. 이들은 턱을 치켜들고 얼굴에 웃음을 띤 채 상황이 곧 좋아질 것을 믿으며, 시련에서 빠져나올 때에는 한층 성숙한 사람이 된다.

아울러 자신을 더 사랑하는 가장 경이로운 방법 가운데 하나는, 누군가를 위해 뭔가 해 주는 것이다. 지나친 걱정과 자기 연민은 자신만 생각하는 데에서 비롯된다. 꽃을 보내든, 페인트칠을 도와주든, 말동무가 되어 주든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해 주기 위해 무엇이든 하라. 그 순간 당신도 행복해진다.
 
 
 
 “God is with us.”
(Mt.1.23)
 
 
    
Steve Barakatt - Sailing Toget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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