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수행생활에 바탕을 둔 관상생활" - 2007.12.19 대림 제3주간 수요일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07-12-19 조회수503 추천수5 반대(0) 신고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07.12.19 대림 제3주간 수요일
                                                  
판관13,2-7.24-25 루카1,5-25
 

                                            
 
"수행생활에 바탕을 둔 관상생활"
 


영성생활에 요행이나 지름길은 없습니다.

쉽고, 편리하고, 신속을 추구하는 현대인들에게
삶의 깊이를 기대하기는 힘듭니다.
 
얕고 좁고 탁한 물속에서는 도저히 큰 고기가 자랄 수 없을 것이고,
아무리 높고 넓은 산이라도 아름드리나무들 없고 잡목들만 우거져 있다면
허전하고 쓸쓸하기 짝이 없을 것입니다.
 
깊고 넓어야 큰 고기들 살 수 있듯이,
개인이나 공동체도 깊고 넓어야 풍요로운 영적 삶이 가능합니다.
 
쉽고, 빠르고, 편리한 육적 본능의 삶에 기울다보면
결코 내적 삶은 깊어질 수 없습니다.

모두가 하느님을 갈망하지만 하느님을 만나지 못하는 원인은 무엇일까요?

삶의 깊이가 없기 때문입니다.
 
넓이의 활동에서 만나는 하느님이 아니라
깊이의 관상에서 만나는 하느님입니다.
 
삶의 깊이에서 살아계신 하느님을 만날 때
비로소 내적 갈증은 해갈되고 안정과 평화가 있습니다.

다닐 것 다 다니고,
말할 것 다 하고,
일할 것 다하고,
볼 것 다 보고,
들을 것 다 듣고,
만날 것 다 만나고...
하다보면 결코 삶의 깊이에 도달하지 못합니다.
 
바쁘게 움직이지만
결국 삶은 피상적이 되고 얕고 가벼워져 공허만 가득할 것입니다.
 
편리와 신속, 효율과 업적을 추구하는 시대에
낭비되는 시간과 정력과 물질은 얼마나 많겠는지요.
 
현대인들의 불안과 두려움, 허무감, 영육의 숱한 질병들,
모두가
삶의 깊이에서 생명의 샘이신 살아계신 하느님을 만나지 못한 데서 기인합니다.
 
살아계신 하느님을 만날 때
비로소 행복과 기쁨이요 충만한 존재의 삶입니다.

이래서 자기포기와 섬김의 수행생활이 필요합니다.
 
이런 자기포기와 섬김의 구체적 수행생활위에
사랑으로 꽃피어나는 관상과 신비의 기도생활입니다.
 
저기포기와 섬김의 수행생활이 바탕 되지 않은
모든 관상 신비의 기도생활은 사상누각 되기 십중팔구입니다.
 
오늘 복음의 즈카리아와 엘리사벳 부부,
바로 금욕가와 신비가의 모범입니다.
 
다음 한 구절이 이들의 삶을 요약하고 있습니다.

“이 둘은 하느님 앞에서 의로운 이들로,
  주님의 모든 계명과 규정에 따라 흠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이런 금욕과 절제, 기도 생활에 충실하며
평생을 하느님을 섬겨왔던 즈카리야는
마침내 하느님께서 파견하신 가브리엘 천사를 통해 요한 탄생의 예고를 듣습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즈카르야야. 너의 청원이 받아 들여졌다.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너에게 아들을 낳아 줄 터이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여라.”

지성이면 감천이라 했습니다.
 
100% 내 손에 달린 듯이 노력하고
100% 하느님 손에 달린 듯이 기도하라 했습니다.
 
정성을 다한 수행생활의 결과가 관상 신비의 하느님 체험입니다.
 
이런 내적 하느님의 체험을 통해 깊어가는 믿음, 희망, 사랑의 삶입니다.
 
엘리사벳도 감격에 겨워 주님의 체험을 고백합니다.

“내가 사람들 사이에서 겪어야 했던 치욕을 없애주시려고,
  주님께서 굽어보시어 나에게 이 일을 해 주셨구나.”

단순소박하게 살면서
늙기까지 평생 하느님만을 충실히 섬겨왔던 즈카리야, 엘리사벳 부부를
당신의 도구로 삼아 아들 요한을 선물로 주신 주님이십니다.
 
이런 주님과의 강렬한 만남의 체험이 노부부의 태교에 바탕이 됐을 것이며
아이의 양육에도 커다란 자극이 됐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1독서의 마노아 부부 역시
하느님 앞에서 충실한 삶을 살았고
 마침내 주님을 만나 이스라엘을 구원할 아들 삼손을 선물로 받습니다.

“보라, 너는 임신할 수 없는 몸이어서 자식을 낳지 못하였지만,
  이제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다.”

마노아의 아내는 아들을 낳자 이름을 삼손이라 하였고
주님께서는 그 아이에게 복을 내려 주셨다 합니다.
 
예나 이제나 살아계신 전능하시고 자비로우신 하느님이십니다. 우
 
리가 하느님을 체험하지 못함은 하느님 탓이 아니라
우리의 삶이, 자기포기와 섬김의 삶이 빈약하기 때문입니다.
 
눈에 보이는 이기적 육적 욕망의 추구에 기울수록
영적 감각은 무디어지고 퇴화해가며 하느님 체험 능력도 상실되어갑니다.
삶과 미사는 하나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뿌리 살이 수행생활에 충실했을 때
미사를 통한 하느님의 신비 관상 체험입니다.
 
이 거룩한 미사시간,
주님은 나름대로 자기포기와 섬김의 수행생활에 충실했던 우리를  
당신의 생명과 사랑으로 충만하게 하십니다.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