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향과 속도  

   "아버지, 언제쯤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을까요?" "얘야, 그것보다 앞을 잘 보고 걸어야 한다."

   아버지는 지도와 나침반을 열심히 보며 갈 길을 찾고 있었다.

   "이러다간 평생 이곳을 못 벗어날 거예요. 벌써 며칠이 지난 줄 아세요?" 아들의 얼굴은 불안으로 창백해지고 있었다. 대답도 안 하고 나침반만 내려다보며 방향을 확인하는 아버지가 야속했다. "아버지 좀 더 빨리 걸어야겠어요. 발걸음을 재촉하세요." 그때 아버지는 오른팔을 뻗어 가리키며 "얘야, 이쪽이다. 우리는 다른 방향의 길을 걷고 있었던 거야"라고 말했다. 두 사람은 방향을 바꾸어 다시 며칠을 걸은 후에야 목적지에 도착했다.

   그날 저녁에 아버지가 아들을 불렀다. "얘야, 시간이란 그다지 중요한게 아니란다. 그보다 더 중요한 건 방향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라. 하마터면 우리는 영원히 사막에서 헤맬 뻔 했구나." 아들은 아직도 사막 어느 곳에서 헤매고 있었을지도 모를 자신을 생각하니 아찔했다. "자, 이걸 너에게 여행 선물로 주마." 아버지는 자신이 가장 소중히 여기던 나침반을 아들에게 주었다. 그러자 아들이 자신의 손목에 찼던 시계를 풀어 아버지 앞에 건네며 말했다. "고맙습니다. 아버지 제가 스스로 방향을 가늠할 때까지만 아버지께서 이것을 보관해주십시오."

   인간은 시간과 공간 속에서 산다.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을 수는 없다. 시간과 공간 중에 어느 것이 더 중요할까? 시간은 속도와 상관이 있고 공간은 방향과 상관이 있다. 속도와 방향 중에 어느 것이 중요할까? 운동을 할 때는 시간을, 타이밍을 잘 맞추어 강하고 빠른 속도를 내야 한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방향이다.

   축구를 할 때 골문을 향해 정확한 방향으로 차야 골인을 할 수 있다. 아무리 빠른 스피드와 강력한 힘으로 공을 찬다 해도 방향이 잘못되면 골인을 할 수 없다. 달리기나 수영처럼 빠른 시간을 요하는 운동도 목표 지점을 향해야지 엉뚱한 방향으로는 아무리 빨라도 소용이 없다. 야구나 골프에서도 공을 쳐 보낼 때 빠른 속도로 멀리 쳐야 하지만 방향이 틀리면 헛것이다.

   공을 잘못된 방향으로 멀리 보내느 것보다 속도가 좀 느려서 멀리 못 보내더라도 정확한 방향으로 보내는 것이 훨씬 좋은 점수를 낼 수 있다. 이처럼 모든 운동이 하나같이 정확한 방향을 요구하고 있다. 방향이 잘못되면 아무리 정확한 타이밍을 맞추어도 아무리 빠른 속력과 강한 힘을 내도 목표물에 도달할 수 없다.

   시간보다 중요한 것은 방향이다. 인생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예수님은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영원히 살게 하며 없어지지 않을 양식을 얻도록 힘써라"(요한 6,27)하고 말씀하셨다. 썩어 없어질 양식을 향해 방향 잡지 말고 영원히 썩지 않는 영혼의 양식을 향해 방향을 잡아야 한다.

   우리의 인생의 방향은 어디인가? 우리는 무엇을 방향으로 삼고 사는가? 물질만을 행해 가는 사람, 체면과 명예와 사치가 삶의 방향인 사람, 이 세상 삶을 전부로 알고 이 세상 삶에만 방향을 두고 사는 사람에 속하지 않는가?

   사실 우리 크리스천의 삶의 방향이 현세적이고 물질적인 것은 분명히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도 모르게 물질주의 사상에 젖어, 자신도 모르게 세상의 풍조에 영향을 받아 세속적이고 현세적인 곳으로 향해 나아거거나 잘못된 방향을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시간보다 중요한 것은 방향이다. 우리 삶의 방향을, 인생의 방향을 천상 생명을 향한 방향으로 바꿔야겠다.

                 - 박용식 신부 수필집 / 예수님 흉내내기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