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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녀리타수절
작성자김기연 쪽지 캡슐 작성일2007-12-18 조회수456 추천수1 반대(0) 신고

[5/22]성녀 리타 수절

    이탈리아에서 살다간 많은 성인 중에서 기적의 열매를 항상 지니셨던 분이 바로 리타 성녀이다.
 아펜니노 산맥의 골짜기를 들어가면 자그마한 산골이 나오는데 이곳이 성녀의 출생지인 카시아이다. 이곳은 성 프란치스코가 태어났던 아시시와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으며 오랫동안 지역 주민들끼리의 반목때문에 사소한 분쟁과 혼란이 끊이지 않던 곳이다.
 그녀가 생존해 있던 l370년대 부터 15 세기 초엽까지 교회는 혼란의 거친 풍랑을 맞는 시기였으며, 교황 그레고리오 11세는 유럽 혼란을 피해 로마를 떠나 아비뇽으로 교황청을 옮겨 갔던 때였다.
 리타 성녀는 출생 전부터 기적의 화관을 쓰고 있었는데 그녀의 부모인 안토니오와 아마타는 늦게까지 아이가 없어, 비어 있는 요람으로 하루하루를 지냈다. 하루는 아마타가 열심히 기도하다 환시를 통해 "곧 너의 기도의 선물로 여자 아이를 낳을 터인데 그 아이는 후에 큰 일을 하게 될 것이다"는 천사의 말을 들었으며 그 아이의 이름을 '리타'라고 지을 것을 당부하였다 한다. 그리하여 1381년에 태어난 리타는 그해 5월 22일 유아세례를 받았다. 세례를 받은지 며칠 안되어 기적같은 일이 또 벌어졌다. 아기가 잘 쉴 수 있도록 부모는 요람을 들판 그늘에 놓고 일을 하는데 온갖 새들이 아기 주위에 찾아와 평화롭게 맴돌았으며, 각종 짐승들이 아기와 대화하듯이 뛰놀았다 한다.
 그녀는 어린시절부터 부모에게 절대 순종하는 효심과 깊은 신앙심이 있었다. 또한 자신을 온전히 하느님께 바치기로 결심했었다. 그러나 리타에 대한 부모의 바람은 달랐다. 그녀가 자식을 키우며 살아가는 평범한 여자가 되길 원했다.
 부모의 뜻에 따라 l2세의 어린 나이에 `파올로 디 페르디난도'란 남편을 맞게 되었는데, 그녀의 남편은 마을 사람에게 환영받지 못하는 사람이었으며 비신자였다. 리타는 결혼시기동안 남편으로 부터 온갖 고통과 굴욕을 오직 사랑으로써 극복하여 끝내는 남편을 회두시켜 결혼 18년째 되는 해 교리반에 등록시켜 착한 그리스도의 자녀가 될 준비를 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어느날 둑을 걸어가던 리타와 페르디난도는 평소에 원한을 품고 있던 `단테지'란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싸움 끝에 남편은 칼에 맞아 죽고 말았다. 그녀는 눈 앞에서 죽어 가는 남편을 지켜 보아야만 했다.
 그녀의 마음 한구석에서 일어나는 인간적인 심판과 복수심을 신앙의 힘으로 극복해 나갔다. 이어 남편을 살해한 단테지란 사람을 용서하고 그를 자신의 아들 견진대부로 세우게 되었다.
 남편이 죽은지 일년도 안되어 두 자식도 병마에 시달리다가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녀의 30여 년 동안의 세속에서의 생활은 언제나 좌절과 고통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매 시기마다 주님께 의지하며 극복해 내었던 것이다. 홀로 된 리타는 아픔을 극복하고 그분께 결혼 전 약속했던 자신을 봉헌하기로 마음을 굳히고 카시아의 아우구스티누스 수녀회를 찾았다. 하지만 동정녀의 모습이 아닌 그녀를 수녀원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 원장 수녀는 그녀의 깊은 신앙심을 보고 훌륭한 수도자가 될 것임을 알았으나 규칙상 과부는 입회한 전례가 없어 허락하지 못하고 있었다. 고향으로 돌아온 리타는 기도와 고행, 선한 일 등 수도자와 같은 삶을 살아가며 어떤 모습으로든지 자신이 받아들여지기만을 기다리며 간구했다.
 그러던 어느날 밤 기도하는 리타에게 그녀의 전구를 들어주던 수호성인들이 찾아와 아무도 들어갈 수 없는 굳게 닫힌 아우구스티누스 수녀원 안뜰의 지하 기도방으로 인도하는 기적이 나타났다.
 그날 아침 공동기도를 위해 기도방에 내려온 수녀들은 입회가 허락되지 못했던 그부인이 기도하고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으며, 이 사건에 대해 원장 수녀는 주님 은총의 징표임을 확신하고 수녀원 생활을 허락하게 되었다.
 영신적으로 단련되어 있는 그녀에게 있어 수련기는 더욱 굳센 바탕이 되었다. 항상 고요한 곳을 찾아 묵상을 즐겼다. 그리고 인간이므로 가질 수 있는 욕망이 사라질 때까지 돼지털로 짠 거친 수도복 속에 많은 가시를 넣어 자기 몸을 찌르면서 생활하였다
 수녀원 생활이 시작된 이후에도 리타 성녀에게 베풀어지는 하느님의 보살핌은 계속되었다. 그녀는 정원 한구석에 이미 말라 죽은 포도나무에 물을 주기 시작했다. 매일 아침 저녁으로 정성을 다해 계속 물을 주고 기도하는 것을 여러 동료 수녀들은 어리석다고 비웃기까지 했으나, 어느 화창한 날 죽어 있었던 포도나무 가지의 잎사귀가 움트고 포도가 듬뿍 열린 기적이 나타났다.
 종신 서원을 받을 때에도 하늘의 징표가 내렸는데, 자신을 받아주신 하느님의 은총에 감사드리며 묵상 중에 갑자기 계단이 하늘에서 내려와 길게 놓여지더니 그 꼭대기에 예수님께서 성좌에 앉아 계셨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광채를 띤 예수님은 인자하신 모습으로 그녀를 향해 올라오라고 말씀하셨다 한다. 그후 원장 수녀가 된 리타 성녀는 수녀원의 구석 구석을 살아있는 수도원이 되게 가꾸었으며 따라서 지원자들도 많아졌다.
 심신의 고통과 단식, 계속되는 보속의 생활로 인해 결국 리타 성녀는 건강을 잃게 되었고, 몸져 누워있는 동안 전혀 음식물을 섭취하지 못하였다. 하지만 그녀에게 성체를 영할 수 있는 배려가 내려져 그 성체를 영하는 힘으로 간신히 생명을 지탱해 갔다. 오랜 투병생활 동안에도 그의 영혼은 견고하고 깨끗했으며 병자의 얼굴이 아닌 항상 밝은 모습을 지녔다.
 그의 친척들이 마지막 작별인사를 하기 전 리타 성녀에게 무엇이든 부탁이 있으면 들어주겠다고 하자, 그 추운 겨울 고향에 있는 자기 집 텃밭에서 장미꽃 한송이를 갖다 달라고 했다. 친척들은 이 겨울에 어디서 장미꽃을 구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텃밭에 가보니 과연 엄동설한에서도 한송이 장미꽃이 의연히 피어 있었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하느님께서 주신 선물을 세상에 보여주시고 가셨다.
 l595년 시복되고 l900년에 시성된 리타 성녀의 유해는 현재까지도 수녀원 내부에 안치되어 있다. 전체적으로 하얀 피부를 유지하고 부패되지 않았으며 l828년 그녀 시복 축하 축제 때 혼잡한 축제분위기를 경고하는 듯 몸이 움직이고 눈이 떠져 현재까지 두눈이 떠 있는 상태이다. 리타성녀(l38l-l457) 의 축일은 5월 22일 지내고 있다.
 그녀 스스로 과거의 절망과 아픔을 극복하였듯이, 세상 저 아래서 구원받지 못하는 가련한 이들과 매순간 한탄과 절망 속에서 헤매이는 모든 이들에게 리타 성녀는 하느님 안에서의 희망과 꿈을 가르쳐 주었다. 또한 정녕 결백하고 완전한 사랑은 아무런 보상을 기대하지 않으며 더욱더 하느님의 종임을 채찍질 해야함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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