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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2월 18일 대림 제3주간 화요일 - 양승국 신부님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7-12-18 조회수994 추천수16 반대(0) 신고

12월 18일 대림 제3주간 화요일 - 마태오 1장 18-24절


 

“잠에서 깨어난 요셉은 주님의 천사가 명령한 대로 아내를 맞아들였다.”


<바닥에서 올려다보니>


   어머니의 품에 포근히 안겨 곤히 잠들어있는 한 아기의 모습에서 이 세상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평온함을 느낍니다.


   나라 전체가, 이 세상 전체가 자신의 장난감인양 쥐락펴락 거드름을 피우는 정치인들의 모습에서는 기쁨이나 편안함보다는 불안과 초조, 두려움의 기색이 역력합니다.


   수동성, 순응성, 수용성...이런 말들은 공격성, 진취성, 적극성과 같은 말들과 대비되는 의미로 우리 시대 어느 정도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수동성, 순응성, 수용성은 신앙생활 안에서, 특별히 그리스도교 수행생활 안에서 아주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됩니다.


   수도원 입회 초기 때만 해도 제 각오는 아주 각별했습니다. ‘굳은 일은 내가 먼저’라는 구호 아래 ‘시켜만 주면 뭐든 다 한다’는 각오를 다지며 따지지 않고, 불평불만하지 않고 그 어떤 일이든 고분고분 다 했습니다.


   가장 바닥에서 생각하고, 위만 쳐다보며, 모두를 우러러보며 살다보니 마음이 그리도 편했습니다. 내 견해를 고집하지 않고, 늘 상대방의 의견에 따르다보니 다툼도, 견해차이도, 스트레스도 전혀 없었습니다. 그야말로 완벽한 평화의 나날, 기쁨의 나날이었습니다.


   그러나 첫 서원을 하고, 종신서원을 하고, 서품을 받고, 책임자가 되는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초심은 슬슬 빛을 잃기 시작했습니다.


   제 마음 안으로 “이제 내가 뭔가 좀 해봐야겠다. 이제 내 포부를 한번 펼쳐봐야겠다”는 생각이 슬슬 자리 잡기 시작했습니다.


   그 날로 마음의 평화, 기쁨의 생활은 끝이었습니다. 그렇게 마음먹은 그 순간부터 날이면 날마다 이리 저리 부딪치고 상처 입는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내 계획과 내 주장을 내세우다보니 사사건건 이웃들과의 충돌이 그치지 않았습니다. 충돌로 입은 상처가 아물기 전에 또 다른 상처가 생기고, 상처부위는 곪아터지고, 그야말로 고통의 세월이 시작된 것입니다.


   돌아보니 그 모든 괴로움은 결국 ‘내가 무엇인가 한번 해보겠다’ ‘내가 주인공이다’고 마음먹는 그 순간부터 비롯되었다는 것을 지금에야 어렴풋이 알게 되었습니다.


   크게 나쁜 것이 아니라면, 아쉽지만 내 의견을 접고 이웃의 뜻에 따른다는 것, 서운하지만 내 의지를 접고 공동체의 결정에 순응한다는 것, 정말 괴롭지만 내 계획을 포기하고 하느님의 뜻을 추구한다는 것, 그것이 수행생활의 본질임을 조금이나마 파악하게 되어 다행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또한 수도자로서 가장 행복할 때는 내 뜻대로 뭔가 해보겠다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자비의 품안에 온전히 안기는 때라는 것을 요즘에야 깨닫습니다.


   내 의지를 과감히 접고, 바보처럼 이웃의 품에 안길 때 상상할 수 없는 천상적 평화와 내적인 기쁨이 어느새 소리 없이 제 곁으로 다가왔습니다.


   하느님 손 안에 노는 것, 그분 품에 안기는 것, 그분의 선택에 따르는 것, 그것이 때로 서운하고 아쉽지만 어쩔 수 없는 우리 신앙인들의 본 모습인 것입니다.


   오늘 복음의 주인공인 마리아와 요셉은 철저하게도 하느님 품에 깊이 안긴 수동적, 수용적, 순응적 인물들입니다. 과감하게 자신들의 계획이나 의지를 접고 하느님의 뜻에 순응합니다. 이러한 그들의 수용성으로 인해 인류구원을 위한 하느님 계획의 첫걸음이 시작된 것입니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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