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07-12-18 조회수934 추천수18 반대(0) 신고
 
2007년 12월 18일 대림 제3주간 화요일
 
 

Joseph, son of David,
do not be afraid to take Mary your wife into your home.
For it is through the Holy Spirit
that this child has been conceived in her.
She will bear a son and you are to name him Jesus,
because he will save his people from their sins.”

(Mt.1.20-21)

 

제1독서 예레미야 23,5-8
복음 마태 1,18-24
 
 
오늘의 독서와 복음 듣기





프랑스에서 어떤 여자가 살충제를 먹고 생을 마감한다는 유서를 써놓고 자살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위액을 조사한 결과 사람들은 깜짝 놀라고 말았어요. 왜냐하면 그녀의 위액 속에는 살충제의 흔적은 전혀 없고 대신 독성이 전혀 없는 음료만 있었기 때문입니다. 즉, 그녀는 실제로 무독성 음료를 마신 것인데 살충제라고 굳게 믿었기 때문에 죽었다는 것입니다.

하긴 어느 책에선가 어떤 사람이 절벽에서 추락해서 고통 속에 있을 때, 친구가 아스피린을 진통제라면서 자기에게 주었는데 이를 먹은 뒤에 고통이 사라졌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적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현상을 플라시보우(Placebo) 효과라고 하네요. 진통제를 요구하는 환자에게 진통제를 주면 치명적이어서 그 처방이 불가능할 때 그와 비슷한 모양의 약을 환자에게 줘서 정신적 효과를 얻게 하는 것이지요.

이렇게 자신의 의지가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주변의 상황이 어떻게 되든 그것은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닌 것이지요. 겸호라는 스님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셨다고 해요.

“길일이라도 그날 악한 일을 행하면 반드시 흉일이 되는 것이요, 흉일이라도 선을 행하면 반드시 길하게 된다. 길흉은 사람에게 달린 것이지 날에 달린 것이 아니다.”

똑같은 환경에서 자란 형제도 자신의 삶을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 지금의 위치가 달라집니다. 한날한시에 똑같은 환경, 똑같은 부모에게서 태어나도 각자의 길은 각자에 따라 달라집니다. 이런 것을 볼 때 운명은 이미 정해진 것이 아니라, 자신이 스스로 우연을 운명으로 만들어가는 것은 아닐까 라는 의구심이 듭니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모든 일상은 우연으로 다가오지요. 그 우연을 좋은 운명으로 만들어가는 이는 성공적인 삶을 사는 것이고, 그 우연을 나쁜 운명으로 만드는 이는 실패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요셉이 약혼녀 마리아와 파혼하기로 작정합니다. 그 이유는 결혼도 하기 전에 잉태한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었지요. 의로운 사람이라고 복음서에 적혀 있듯이, 요셉은 율법대로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따라서 마리아를 간음한 여인이라고 신고해서 공개적으로 돌에 맞아 죽도록 해야 했을 것입니다. 이것이 정해진 운명 같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운명을 거슬러서 자신의 의지대로 남모르게 파혼하기로 작정하지요. 이에 하느님께서 개입하십니다. 스스로 만들어내는 운명을 거슬러 자신의 의지대로 행동한 뒤에야 요셉에게 천사가 나타나 예수님 잉태에 대한 말씀을 전해 주십니다.

만약 정해진 운명이라고 하면서, 율법대로 마리아를 신고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우리의 구세주 예수님의 강생이 있을 수 없었겠지요.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것을 운명 탓으로 외치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고 한다면, 이것이야말로 진정으로 주님의 뜻을 실천하지 않는 것이 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주셔서, 우리 스스로 운명을 개척할 수 있도록 하신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남 탓, 운명 탓을 외치지 마세요.





내 자신을 먼저 변화 시켰더라면(‘좋은 글’ 중에서)

내가 젊고 자유로워 상상력에 한계가 없다고 생각했을 때
나는 세상을 변화시켜야 하겠다는 꿈을 가졌다.

좀 더 나이가 들고 지혜를 얻었을 때
나는 세상이 변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내 시야를 약간 좁혀 내가 살고 있는 나라를
변화 시키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나 그것 역시 불가능한 일이었다.

황혼의 나이가 되었을 때 나는 마지막 시도로 나의 가장 가까운
내 가족을 변화 시키고 말겠다고 마음을 정했다.
그러나 아무도 달라지지 않았다.

이제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 자리에 누운 나는 문득 깨닫는다.
만일 내가 내 자신을 먼저 변화 시켰더라면,
그것을 보고 내 가족이 변화 하였을 것을....

또한 그것에 용기를 얻어 내 나라를
더 좋은 나라로 바꿀 수 있었을 것을...

그리고 누가 아닌가! 세상까지 변화 되었을는지...
 
 
Behold, the virgin shall be with child and bear a son,
and they shall name him Emmanuel,
which means “God is with us.” 
(Mt.1.23)
 
 
 Taro Hakase - To Love You More
 
(위의 음악이 멈추면 밑의 곡 클릭하세요)

 December Mor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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