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07-12-17 조회수893 추천수15 반대(0) 신고
 
2007년 12월 17일 대림 제3주간 월요일
 
 
 
 Jacob the father of Joseph,

the husband of Mary.
Of her was born Jesus

who is called the Christ.

(Mt.1.16)

 
 
제1독서 창세 49,1-2.8-10
복음 마태 1,1-17


오늘의 독서와 복음 듣기
 
 
 

 

 

죽을병에 걸린 한 부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평생 돈만 생각했고 그래서 어려운 사람을 돕기보다는 자신의 돈을 어떻게 하면 더 불릴 수 있을까를 죽는 순간까지 하고 있었지요. 드디어 임종의 순간, 그는 마지막 힘을 다해 목에 걸고 있는 끈에서 열쇠를 풀어 하녀를 손짓하여 불러서 자기 침대 옆에 있는 금고를 가리킵니다. 그리고는 말해요.

“저기 저 금고에서 큰 돈주머니를 꺼내 나의 관속에 넣어라. 알겠느냐?”

얼마 후 그는 죽었습니다. 그는 천국에서 아주 훌륭한 음식이 차려져 있는 큰 식탁을 보았습니다. 그는 배가 고파서 천사에게 “여보시오. 저기 저 연어는 얼마요?”라고 물었지요. 그러자 천사는 “1원이에요.”라고 말합니다. 그는 다시 “그러면 저 참치는요?”라고 물었습니다. “역시 1원입니다.”라고 천사가 대답했습니다.

부자는 신이 났습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돈이면 여기서 걱정 없이 살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그는 “싸군, 모든 것이 굉장히 싸!”라면서 자기가 가지고 있던 돈 중에서 2원을 꺼내 천사에게 내밀었습니다. 그런데 천사는 돈을 받지 않고 “당신은 인생에서 전혀 베푼 것이 없군요!”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겠어요? 이 부자는 “무엇을 베풀어야 하는데요? 그런데 그것이 내 돈과 무슨 상관이 있소? 정 그렇다면 내가 10배의 가격을 내리다.”라면서 천사에게 20원을 내밀었습니다. 이에 천사는 이렇게 말했어요.

“여기 천국에서는 누군가에게 선사했던 돈만 받습니다. 당신은 누군가에게 선사했던 돈이 없으니, 이 천국에서는 아무것도 드실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지옥으로 가야 할 것입니다.”

천국에 아직 가보지 않아서 어떤 곳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어렵고 힘들어 하는 사람, 소외받는 사람과 함께 했던 예수님의 삶을 떠올려볼 때, 천국은 바로 이렇게 예수님처럼 사랑을 실천하며 사는 사람만이 살 수 있는 곳이 아닐까 싶네요. 그렇다면 여러분 자신은 천국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면서 살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사실 나의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바로 다른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서 산 사람들과 계속 연결되고 있지요. 그래서 어떤 사람은 좋은 사람의 모습으로, 또 어떤 사람은 나쁜 사람의 모습으로 기억 속에 남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내 모습은 사람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남게 될까요?

오늘 복음에서 우리들은 예수님의 족보를 보게 됩니다. 내 족보도 아닌, 남의 족보 관심없다고 하실 분도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이 족보 안을 잘 보면 시간의 흐름 속에서 살았던 이스라엘 선조들의 모습을 발견할 수가 있지요. 누구는 올바른 모습으로, 누구는 부정적인 모습으로 살았다는 것을 족보를 통해서 우리들은 기억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족보의 절정에 예수님이 계시다는 것을 우리들에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즉, 시간의 흐름 속에서 예수님과 같이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으로 기억되어야 한다는 것을 족보는 말합니다.

주님의 충실한 제자로서 이름을 남길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내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누군가에게 기쁨을 줄 수 있는 일을 해보세요.




클레망소의 관용(‘행복한 동행’ 중에서)

1차 세계 대전 때의 일입니다. 유럽의 한 수상이 그와 정치적 이념을 달리한 청년에게 저격을 당했습니다. 청년이 쏜 일곱 발의 총알 가운데 한 발을 맞은 그는 다행히 목숨을 건졌고 현장에서 체포된 청년은 사형 선고를 받았지요. 그러나 수상은 극구 청년의 사형 집행을 반대하며 대신 벌로 8년간 교도소에 수감시켜 사격 훈련을 시키자고 제안했습니다.

“아니, 왜 하필 사격 훈련입니까?”

수상은 원래 의사였던지라 타인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구나, 생각했던 사람들도 선뜻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었습니다.

그런 세상의 물음에 수상은 처연히 이렇게 답했습니다.

“1차 대전을 승리로 이끈 프랑스에 일곱 발 중 한 발만 명중시킨 사람이 있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지 않습니까?”

자신의 목숨을 노린 적수를 관용과 용서를 넘어 진정한 자기 사람으로 품으려 했던 통 큰 인물. 바로 프랑스의 전 수상 클레망소입니다. 연합군의 승리에 크게 이바지한 그에게, 세상은 ‘승리의 아버지’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습니다.
 
 
 
 
Destiny Of 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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