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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2월 17일 대림 제3주간 월요일 - 양승국 신부님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7-12-17 조회수834 추천수17 반대(0) 신고
 

12월 17일 대림 제3주간 월요일-마태오 1장 1-17절



“다윗의 자손이시며 아브라함의 자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


<상처 입은 독수리의 비상>


   이레네오 성인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답니다.


   “하느님께 드리는 가장 큰 찬미는 한 사람의 생명이 충만해지는 것입니다. 한 인생이 생동하는 것입니다.”


   우리 젊은 수사님들과 함께 보다 충만한 삶을 살기 위해 몇 일간 한 곳에 모여서 교육을 받고 있습니다. 다루기 아주 민감한 주제이지만 꼭 필요한 주제인 ‘성(性)과 영성’이란 주제로.


   수도생활, 독신생활을 선택한 우리들이지만, 육체를 지닌 한 인간이기에 어쩔 수 없이 직면해야할 문제가 성(Sexuality)이란 문제이지요.


   더구나 이 세상은 독신생활을 방해하는 유혹거리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다양한 매체들은 앞 다투어 성의 의미를 왜곡시키고 있습니다. 참된 의미를 알고 잘 활용하라고 가르치기보다 즐기고 만끽하라고만 외치고 있습니다.


   솔직히 봉헌생활이 점점 힘들어지는 세상입니다.


   ‘수도자들은 왜 정결서원을 하는 가’란 문제를 두고 혼자 생각을 많이 해봤습니다.


   결혼생활에 대한 반감이 있어서, 신체적으로 뭔가 문제가 있어서가 절대로 아닙니다. 인간이란 묘한 존재여서 때로 보다 큰 가치관을 접하게 되면 그 하위적인 대상들을 과감하게 포기할 줄 압니다. 보다 차원 높은 진리, 신조, 이념을 위해 목숨까지 내어놓기도 합니다.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목숨까지 바친 청춘들이 수두룩하지 않습니까? 자신이 선택한 이념에 평생을 걸기도 하지 않습니까?


   수도자들의 정결 생활, 봉헌생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수도자들은 자신이 선택한 지고한 가치관이신 하느님께 목숨을 건 사람들입니다. 하느님께서 얼마나 감미로운 분이신지, 하느님께서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온몸으로 체득한 사람이기에 다른 모든 부차적인 것을 미련 없이 포기합니다. 그래서 독신을 서약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과 나와의 관계를 주종관계, 상하관계로 설정한 것이 아니라 연인관계로 설정한 사람들이 바로 정결서원을 한 수도자들입니다.


   그러나 교육을 받으면서 절실히 느꼈습니다. 의도는 좋지만, 지향은 멋있지만, 시작은 대단했지만, 정결서원을 지속적으로 지켜나가기가 얼마나 힘든 것인지를 모두 함께 공감했습니다.


   교육이 거듭되는 동안 다들 세상을 거슬러 살아가느라, 또한 자신을 극복하느라 죽을 고생을 하고 있다는 것을 서로 알게 되었습니다.


   순결한 몸과 마음을 온전히 하느님께 봉헌하고자 각고의 노력을 다 하지만, 너나할 것 없이 나약한 인간인지라 남모르는 괴로움을 겪으며 송구스런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음도 솔직히 인정했습니다.


   누군가의 표현처럼 형제들 한명 한명은 상처 입은 독수리들이었습니다. 멋있게, 그리고 힘차게 한번 비상하고 싶지만, 멋지게 한 마리 낚아채고 싶지만,  상처들이 만만치 않습니다.


   그러나 위안이 되는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상처 입은 인간들을 부르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다릴 줄만 안다면 언젠가 그분의 자비에 힘입어 그 상처는 치유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언젠가 하느님의 도우심에 힘입어 상처를 회복한 우리는 힘차게 더 넓은 창공으로 날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마태오 복음사가는 예수님의 족보를 우리에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족보를 읽으면서 더 큰 위안에 제게 다가왔습니다.


   예수님의 족보 안에도 우리 족보 못지않은 깊은 상처와 아픔, 슬픔, 삶의 굴곡, 고통의 세월들이 고스란히 묻어있었습니다.


   족보 안에는 한 시대를 풍미했던 ‘난다 긴다했던’ 사람들, 잘 나가던 사람들도 나열되고 있었지만, 심각한 문제들을 안고 살았던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들이 저질렀던 실수들, 그로 인한 수치심, 부끄러움도 그대로 담겨져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완벽한 사람을 원치 않습니다. 상처 하나도 없는 사람을 최고라고 치켜세우지도 않습니다. 우리가 상처입고 망연자실하게 쓰러져있는 것도 원치 않으십니다.


   비록 나약하고 부족하고, 그래서 상처입고 괴로워도 빨리 일어설 것을 기다리십니다. 비록 상처투성이의 삶이라 할지라도 자신의 삶을 존중하고 사랑할 것을 요청하십니다. 상처는 결국 보다 성숙하라는 당신 사랑의 표시임을 알아차릴 것을 간절히 바라십니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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