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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1월 25일 야곱의 우물- 루카 23, 35L-43 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 묵상
작성자권수현 쪽지 캡슐 작성일2007-11-25 조회수497 추천수6 반대(0) 신고

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 묵상

그때에 지도자들은 “이자가 다른 이들을 구원하였으니, 정말 하느님의 메시아, 선택된 이라면 자신도 구원해 보라지.” 하며 빈정거렸다. 군사들도 예수님을 조롱하였다. 그들은 예수님께 다가가 신 포도주를 들이대며 말하였다. “네가 유다인들의 임금이라면 너 자신이나 구원해 보아라.” 예수님의 머리 위에는 ‘이자는 유다인들의 임금이다.’라는 죄명 패가 붙어 있었다.
 
 
예수님과 함께 매달린 죄수 하나도, “당신은 메시아가 아니시오? 당신 자신과 우리를 구원해 보시오.” 하며 그분을 모독하였다. 그러나 다른 하나는 그를 꾸짖으며 말하였다. “같이 처형을 받는 주제에 너는 하느님이 두렵지도 않으냐? 우리야 당연히 우리가 저지른 짓에 합당한 벌을 받지만, 이분은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으셨다.”
 
그러고 나서 “예수님, 선생님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
(루카 23,35ㄴ-43)
 
정 세라피아 수녀(포교성베네딕도수녀회 대구수녀원)
나무들이 기름을 부어 자기들의 임금을 세우려고 길을 나섰습니다. “우리 임금이 되어 주오.” 하고 올리브나무에게 말하였으나 “신들과 사람들을 영광스럽게 하는 이 풍성한 기름을 포기하고 다른 나무들 위로 가서 흔들거리란 말인가?” 하며 거절했습니다. 무화과나무와 포도나무도 같은 이유로 거절했습니다. 그래서 모든 나무가 가시나무에게 임금이 되어줄 것을 청하자 “너희가 진실로 나에게 기름을 부어 나를 너희 임금으로 세우려 한다면 와서 내 그늘 아래에 몸을 피하여라. 그러지 않으면 이 가시나무에서 불이 터져 나가 레바논의 향백나무들을 삼켜버리리라.”고 하였습니다(판관 9,8-­15 참조).
 
그리스도 왕 대축일을 지내면서, 또 제17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우리나라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바라보면서 판관기의 우화가 떠올랐습니다. 후보자들은 ‘내가 대통령이 되면 대한민국을 이렇게 만들겠습니다.’ 하며 여러 가지 공약을 앞세우고, 자신이 이 나라를 가장 잘 다스릴 수 있는 사람이라고 국민을 설득하려 합니다.
 
그러나 오늘 복음에서는 “이자가 다른 이들을 구원하였으니, 정말 하느님의 메시아, 선택된 이라면 자신도 구원해 보라지.” 하며 지도자들은 ‘빈정’거리고, 군인들은 ‘조롱’하고, 죄수는 ‘모독’하는데 십자가의 예수님은 침묵만 하십니다. 그들이 기대한 메시아, 기름부음받은자는―구약에서 예언자·사제·왕의 즉위식 때 기름을 부어 성별하였다―다윗 왕과 같이 정치·경제·군사·종교적으로 영향력 있는 왕이여야 했습니다.
 
‘짊어진 멍에와 어깨에 멘 장대와 부역 감독관의 몽둥이를 미디안을 치신 그날처럼 부수시는’(이사 9,3) 사람을 기대했는데, 십자가에서 맥없이 죽어가는 예수는 분명 거짓 메시아라고 그들은 확신했습니다. ‘남은 구했으면서 자신을 구하지 못하는 사람’이 메시아일 수 없다면 ‘남을 구하면서 자신도 구하는 사람’이 메시아란 논리도 이상합니다. 오히려 자신을 구할 필요가 없는 생명 그 자체여야 메시아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예수님은 ‘부활이요 생명’이기에 애써 자기 목숨을 돌보지 않았고 ‘남은 구하면서도 자신은 구하지 않는’ 살신성인의 삶을 살 수 있었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십자가 위에는 조롱의 표시로 ‘이자는 유다인의 임금이다.’라는 죄명 패가 붙어 있었습니다만 아이러니하게도 예수님은 온 우주의 왕이 되셨습니다.
본시 이스라엘 백성에게 왕은 ‘하느님’뿐이었습니다. 하느님은 그들을 종살이에서 이끌어 내시고 먹여주시고 보호해 주시며 어떤 아쉬움도 없게 해주시는 피난처요 산성이요 구원자요 방패요 목자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사무엘에게 “이제 다른 모든 민족들처럼 우리를 통치할 임금을 우리에게 세워주십시오.”(1사무 8,5) 하고 요구하였습니다.
 
이 말을 듣고 언짢아진 사무엘에게 주님은 “백성이 너에게 하는 말을 다 들어주어라. 그들은 사실 너를 배척한 것이 아니라 나를 배척하여 더 이상 나를 자기네 임금으로 삼지 않으려는 것이다.”(1사무 8,7)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은 하느님보다 눈에 보이는 사람의 통치받기를 선택하면서 임금을 세울 때 감수해야 하는 온갖 것에 대해서도 “상관없습니다. 우리에게는 임금이 꼭 있어야 하겠습니다.”(1사무 8,19)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사울이 첫 왕이 되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왕정제도를 허락하셨지만 왕과 백성은 하느님을 잊어서는 안 되었습니다.
 
기름부음받은 왕의 임무는 하느님께서 하셨듯이 자기 백성을 물질적·영적으로 잘 돌보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내 양들을 돌보아라.”고 세 번이나 당부하신 것도 같은 맥락이겠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역대 왕들은 대부분 이 임무에 충실하지 못했습니다.
 
참된 임금, 메시아는 겸손하여 평화를 이루시고 백성들을 위해 고난을 받는다고 예언자들이 예언하였습니다. “보라, 너의 임금님이 너에게 오신다. 그분은 의로우시며 승리하시는 분이시다. 그분은 겸손하시어 나귀를, 어린 나귀를 타고 오신다. 그분은 에프라임에서 병거를, 예루살렘에서 군마를 없애시고 전쟁에서 쓰는 활을 꺾으시어 민족들에게 평화를 선포하시리라. 그분의 통치는 바다에서 바다까지, 강에서 땅 끝까지 이르리라.”(즈카 9,9-­10) “주님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이 그에게 떨어지게 하셨다. 학대받고 천대받았지만 그는 자기 입을 열지 않았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 양처럼 털 깎는 사람 앞에 잠자코 서 있는 어미양처럼 그는 자기 입을 열지 않았다. 그가 구속되어 판결을 받고 제거되었지만 누가 그의 운명에 대해 생각해 보았던가?”(이사 53,6ㄴ-8ㄱ)
 
예수님은 당신 백성들을 먹여주고 치유해 주고 발을 씻어주면서까지 그들을 섬겼으나 배반당합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위해 목숨을 내어 놓은 바보같이 착한 왕, 그의 왕관은 가시관이요, 반지는 못이요, 옷은 벌거벗김이고, 침상은 십자가였습니다. 그야말로 ‘다른 이들은 구하면서도 자신은 구하지 않는 왕’, 죄인을 부르러 왔다고 하신 말씀을 끝까지 실천하며 두 죄인 사이에서 죽어간 왕입니다.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라는 대답을 들은 죄수는 꼴찌였는데 첫째가 되어 하느님 나라를 얻었습니다. 이 왕은 죽음까지도 극복하는 생명의 왕이면서도 우리의 음식이 된 사랑의 왕으로 아버지의 나라를 세우고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것이 지상 목표였습니다.
 
경제성장이 아니라 서로 나눔으로 공정한 분배가 이루어지고, 개발과 편리한 삶보다는 자연과 더불어 살며, 무한경쟁이 아니라 각자 받은 선물을 꽃피우게 함으로써 서로를 즐기고, 생명을 조작하는 행위를 절대 묵인하지 않으며, 평화를 위한 구실로 전쟁을 하는 일이 없으며, 특별히 작고 가난하고 소외되고 버림받은 이들의 소리에 민감하고, 힘의 논리에 의지하지 않고 말씀에 힘과 권위가 있으며, 언행이 일치하는 정의롭고 당당한 왕. 이런 왕을 섬기는 이는 진정 복된 사람입니다. 시편은 이 왕의 마음을 사로잡는 방법을 가르쳐 줍니다. “듣거라, 딸아. 보고 네 귀를 기울이라. 네 겨레와 아비 집을 잊어버리라. 이에 임금이 네 미모에 사로잡히시리라.”(44,11-­12ㄱ: 최민순 역) 세상의 온갖 것을 뒤로하고 주님께 몰두하는 그것이 미모요, 임금이신 주님께서는 이런 미모에 사로잡히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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