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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곱구나 노란 단풍! - 천년은행을 찾아서
작성자최익곤 쪽지 캡슐 작성일2007-11-25 조회수527 추천수6 반대(0) 신고

 

 

 
천년은행을 찾아서…
 
 
 
 
 
 

위부터 충북 괴산의 청안초등학교 교정에서 자라고 있는 은행나무와 충남 금산의 보석사 은행나무, 강원 영월의 은행나무, 충남 아산 맹씨행단, 충남 금산의 행정 은행나무. 어떤 것은 운치있게 가지를 뒤틀고 있고, 또 어떤 것은 무성한 잎을 달고 있다. 저마다 모양은 다르지만, 어떤 것이든 1000년 안팎 세월의 깊이가 보는 이들을 압도한다.
 
# 거 참 잘 생겼다…충남 금산 보석사 은행나무

전국의 천연기념물은 모두 378건. 그중 은행나무가 22그루에 이른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은행나무는 대략 수령 1000년 앞뒤의 ‘노거수(老巨樹)’들이다. 오래 묵은 세월도 그렇지만, 빼어난 자태도 천연기념물로 부족함이 없다. 은행나무 노거수 가운데 가장 오랜 것으로 꼽히는 것이 경기도 양평의 용문사 은행나무다. 신라의 마지막 임금 경순왕의 아들인 마의태자가 심었다는 전설을 따르자면 1100살의 나이를 먹었다. 그렇다면 은행나무 노거수 중에서 가장 아름답기로 손꼽히는 것은 어떤 것일까. 굳이 뽑는다면 충남 보석사의 은행나무를 첫손으로 꼽아야 하지 않을까.

충남 금산의 진악산 자락에 들어선 보석사는 작고 초라한 절집이다. 그러나 보석사로 들어서는 입구는 이즈음 운치가 넘친다. 일주문을 들어서면 한쪽은 전나무가 하늘을 찌르고, 다른 쪽은 아름드리 은행나무들이 노랗게 잎을 떨어뜨리고 있다. 바람에 우수수 떨어진 은행잎들이 길에 노란색 양탄자처럼 폭신하게 깔려 있다.

이 길을 걸어 보석사의 종루를 지나치자마자, 거대한 은행나무 한 그루가 길옆으로 나타난다. 일주문 길가에 서있던 나무의 크기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다. 바로 앞에서는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뒤쪽으로 물러나 언덕 위의 보석사 대웅전 앞쪽에서야 나무의 전체적인 윤곽이 눈에 들어올 정도다. 보석사 창건 당시 심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니, 이 나무의 나이는 1080년으로 추정된다. 대개 이 정도의 수령의 은행나무는 중심가지가 부러졌거나 삭아 있는데, 이 나무는 아직도 청청하다. 또아리를 틀 듯 절묘하게 비틀어 올린 가지에는 노랗게 물든 이파리가 햇빛에 반짝거린다. 나무는 장엄하고 또 위압적이다. 한눈에도 ‘귀물’임을 알아볼 수 있다. 실제로 마을 주민들은 “마을에 변고가 있거나 나라에 큰일이 있을 때는 우우 울음소리를 낸다”고 했다.

# 그 나무에는 흰 뱀이 산다…강원 원주 반계리와 영월읍 은행나무

강원 원주 반계리의 은행나무는 800살이 훌쩍 넘었는데도 아직 청춘이다. 가지가 넓게 퍼져 높이보다 폭이 더 넓은데, 그 가지마다 빽빽하게 은행잎이 달린다. 나무 아래 서면 손바닥만 한 빛도 들지 않을 정도다. 잎의 무성함을 놓고 보자면 최고의 은행나무다.

남녘의 은행나무들도 이미 노란색으로 물들었는데, 반계리의 은행나무는 아직 싱그러운 초록 잎을 달고 있다. 은행나무 앞의 밭을 갈던 주민은 “나뭇잎이 물들기 시작하면 온 천지가 다 노랗다”며 “일시에 잎이 노랗게 물들면 이듬해에는 어김없이 풍년이 든다”고 했다.

나무의 모습이 범상치 않으니, 나무에 깃든 신령스러운 전설 하나쯤 없을 리 없다. 반계리 은행나무에는 나무를 지키는 굵은 흰 뱀이 살고 있다는 전설이 있다. 이런 전설은 영월읍의 은행나무도 비슷하다. 영월읍의 1000년 된 은행나무에도 신통한 뱀이 살고 있어 곤충과 동물들이 접근하지 못하게 하고, 아이들이 나무에서 떨어져도 크게 다치지 않도록 돌봐준다는 전설이 있다.

영월의 은행나무는 영월 엄씨의 시조가, 지금은 없어진 절집 대성사 앞마당에 심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마을 주민들은 이 나무가 1100살로 가장 오래됐다는 경기 양평 용문사의 은행나무보다, 100년은 더 묵은 나무로 믿고 있다. 반계리의 은행나무는 성주 이씨의 가문에서 심었다고도 하고, 또 어떤 고승이 이곳을 지나다가 지팡이를 꽂은 것이 자라서 거목이 됐다고도 한다. 이 두 그루의 은행나무에 전설이 깃든 것은, 민가와 가까이 심어져 오래도록 숭앙을 받았기 때문이리라.

# 절집 앞에서 세상을 노랗게 물들이다…충북 영동 영국사 은행나무

영국사는 충북 영동의 천태산 자락에 들어서 있다. 계곡을 끼고 있는 좁은 등산로를 따라 바위와 계곡, 폭포를 지난 뒤 고갯마루를 넘어서면 갑자기 시야가 탁 트이면서 우뚝 선 은행나무가 앞을 막는다. 영국사 은행나무가 각별한 것은 깊은 산에 들어서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절집 영국사의 일주문 격인 은행나무는 35m의 높이로 뒤편의 절을 온통 가리고도 남는다. 유독 둥치와 가지가 검다. 나뭇잎은 샛노랗게 물들어 있는데, 검은색 나무가지와 노란색 잎들이 대조를 이뤄 가히 장관이라 할 만하다. 이곳의 은행나무는 지금 절정의 노란색을 보여주고 있다. 산골짜기를 휘몰아가는 바람에 은행잎이 우수수 떨어진다. 떨어진 잎으로, 나무 주변의 바닥은 온통 노란색이다.

영국사는 창건연대가 분명치 않으나, 거슬러 올라가자면 신라 문무왕 8년(668년)에 창건했다는 설이 있다. 이 창건기가 맞는다고 보고, 절집의 나이와 은행나무의 나이가 같다고 친다면 은행나무는 무려 1400살 가까이 됐다는 얘기다. 절집을 지키던 스님도 “나무의 위세로 본다고 해도 1000년은 훨씬 넘지 않았겠느냐”고 말을 보탰다.

이 나무는 은행이 많이 달리기로 유명하다. 올해는 예년에 비해 은행이 덜 달렸다는데도 바람에 가지가 흔들릴 때마다 후드득 은행 열매가 떨어지는 소리가 그치지 않는다.

조용한 산사 앞을 지키고 선 거대한 신의 모습. 그것이 바로 영국사의 은행나무다.

# 사람들과 어울려 커가는 거목들…충북 괴산의 읍내리와 충남 금산 요광리 행정 은행나무

은행나무 노거수가 사람들과 살을 비비대며 자라는 모습을 찾는다면, 충북 괴산의 읍내리 은행나무와 충남 금산 행정의 은행나무를 찾아가 볼 일이다. 읍내리 은행나무는 괴산 청안초등학교 운동장 한가운데서 공을 차는 아이들과 함께 자라고 있다. 이 나무의 나이는 950살. 고려 성종 때 고을의 성주가 연못을 파고 둘레에 많은 나무를 심었는데, 그중 이 은행나무만 남아있다고 전해진다. 나무는 기품과 위엄이 있고, 귀 달린 뱀이 살고 있다는 전설도 있지만, 아이들은 아랑곳없이 밑둥에 매달리기도 하고 팔을 벌려 밑둥을 재며 놀고 있다.

뚝 떨어진 채 보호난간 속에서 자라는 다른 은행나무와 달리, 이렇듯 아이들과 어울려 자라는 모습이 더 행복해 보인다.

충남 금산 요광리의 행정 은행나무는 신라시대부터 자연정자를 이루었다고 전해지는 나무다. 수령은 1000년쯤으로 추정된다. 이 은행나무에는 ‘은행나무 정자’라는 뜻의 행정(杏亭)이라는 이름이 따라붙는다. 500여년 전쯤 마을에 살고 있는 오씨의 선조가 전라감사를 맡았을 때 이 은행나무 밑에 정자를 짓고 ‘행정헌’이란 이름을 붙였다는 기록에 따른 것이다. 정자는 최근 다시 지어졌다.

나무는 점필재 김종직과 율곡 이이의 문집에도 등장한다. 당시 이곳의 지명이 진산이었는데, ‘진산에 큰 은행나무가 있다’는 내용이 문집에 담겨 있다. 조선시대에도 이름을 떨치던 거목이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 은행나무에는 유독 여행자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나무가 대전~통영 간 고속도로 바로 옆에 있어 남쪽으로 향하는 여행자들이 이곳을 찾아 고개를 올려 노랗게 물들어가는 나뭇잎을 바라보거나 둥치를 쓰다듬으며 나무가 살아온 세월을 가늠해보곤 한다.

# 역사와 함께, 선조의 삶과 함께… 충남 부여 녹간마을과 충남 아산 맹씨행단의 은행나무

부여 녹간마을의 은행나무는 평화로워 보이는 마을 안쪽의 민가들 사이에 자리잡고 있다. 너른 부지에 우뚝 솟은 나무가 평안하게 들어서 있어 나무 앞에 서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푸근해진다. 백제 시대에 심어진 것으로 전해지는 이 나무는 갖가지 수난의 역사를 증거한 것으로 전해내려온다. 마을 주민들은 이 나무에 “나라에 변고가 있을 때마다 이를 미리 알려주는 영험이 깃들어 있다”고 했다. 백제와 신라, 그리고 고려와 조선이 망할 때마다 칡넝쿨이 은행나무를 감아 나라의 망조를 예언했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고려 때에는 은산면의 절집 승각사의 주지가 대들보로 쓰려고 큰 가지를 베었다가 급사하고 절도 망하고 말았다는 기록도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1894년 동쪽으로 뻗은 가지가 부러진 뒤 동학란이 일어났고, 1906년에는 서쪽의 가지가 부러지면서 의병의 봉기가 일어났다고 했다.

이런 영험함으로 마을 주민들은 지금도 음력 1월2일에는 마을 주민들이 제사를 지내며 정성껏 돌보고 있다.

아산의 맹씨 행단에도 은행나무 두 그루가 우뚝 서있다. 맹씨 행단이란 조선 초기 명재상이었으며, 청백리로도 유명한 맹사성의 일가가 살던 곳. 당초 고려 말에는 최영 장군이 살던 집이었다. 이곳에는 두 그루의 600년 된 은행나무가 있다. 두 그루의 은행나무는 어느 것이 더 낫다 할 수 없이 웅장하게 자라고 있다. 이 은행나무 아래서 맹사성은 자시의 청빈한 삶을 되돌아 보았으리라.

수백년의 세월을 건너온 은행나무. 그 나무는 그저 한 그루의 묵은 나무가 아니다. 나무에서 울창한 숲이나 반짝이는 나뭇잎만을 보자는 것은 아니다. 그 나무가 뿌리박고 살아온 세월을 들여다보고, 그 세월 속에 녹아 있는 세상살이의 덧없음 또는 묵직함을 들여다보자는 것이다.

원주·영월·영동·괴산·금산·부여·아산 = 글·사진 박경일기자
parki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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