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펌 - (2) 첫 눈 내리는 날의 아침 풍경
작성자이순의 쪽지 캡슐 작성일2007-12-15 조회수532 추천수3 반대(0) 신고
 
 
 
(2) 첫 눈 내리는 날의 아침 풍경 

                                    이순의 

 

 

 

 

 

아침 여섯시! 모닝콜 소리와 함께 눈을 떳다.

믹서기에 사과 하나를 깍아서 담고 온갖 곡식을 찌고 볶아서 갈은 미수가루 두스푼을 넣고 오대산 이름모를 풀꽃들의 꿀 한숟가락과 우유 한잔! 전기선만 꽂으면 되는 고등학생 자식놈의 아침을 마련하려는 순간 섬뜩한 전율이 느껴졌다. 어제밤 뉴스시간에 빙판과 첫눈을 조심하라는 일기예보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어떻게하지? 첫눈이 왔으면?!"

전기코드를 내려놓고 베란다 유리창부터 열었다.

 

"어머 어떻게해!"

골목안 지붕위에 얇은 백도화지 한 장 만큼의 첫눈이 덮여있다. 얼른 창문을 닫았다. 아침을 일으키려고 안간힘을 쏟고 있을 덩치큰 아들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왼쪽 새끼 손톱을 찾아 보았다. 꾸물꾸물 꼼지락 거리던 녀석은 눈도 뜨지 않고

"엄마 왜 그래?" 하고 아는 척을 한다.

"어서 더 자!" 라고 쏘아붙였다.

다른 날은 일어나라고 재촉 할까 봐서 깊이 잠이 든척 하던 녀석이 얄밉기까지 했다.

 

이른 초가을 어느 날!

여자 친구의 학교에 축제를 다녀 온 아들녀석의 손톱에 빨강이 선명한 고운 봉숭아 물이 들어 있었다. 화를 냈다. 사내자식이 그런거나 물들이고 다녀서 어디다 쓸거냐고 예민하게 화를 냈다. 여자친구의 친구들이 억지로 물을 들여 주었다고 하면서 평소보다 좀 더 지나친 엄마의 반응에 의아해 하였다.

"엄마는 봉숭아 손톱을 좋아 하셨는데 왜 제가 물들이는건 싫어하세요?" 하고 되물었다.

 

"엄마는 봉숭아 손톱은 좋아하지만 내 아들의 손톱이 빨간건 싫다.

혹시 위급한 상황이 생겨 병원에 가서 진단을 받아야 하거나 수술을 해야 한다면 여러가지로 좋지가 않다더라." 하고 근거도 없는 변명을 둘러대며 화를 냈다. 그러나 걱정은 다른데 있었다. 몇 일이 가지 못 해서 나는 아들에게 나의 걱정을 말해 주었다.

"봉숭아 꽃물이 첫눈 오시는 날까지 남아 있으면 첫사랑이 이루어 진데." 라고!

 

그런데 그렇게 예쁜 구전을 아들녀석은 전혀 알고있지 못했다. 무작정 불려가서 호기심으로 손톱에 물을 들였던 아들아이는 그런 말이 전해 온다는 사실만으로도 너무 들뜨기 시작 했다. 나중에 그 친구를 만나 친구들이 장난 반 진담 반의 마음으로 구전을 희망하며 봉숭아 손톱을 꾸며 놓았다는 사실을 확인 하고 왔다. 그리고 하는 소리가!

"참 하느님은 위대하셔!

사내자식들은 그런 말이 전해 오는지 안전해 오는지도 모르는데 여자아이들은 그런말도 알고, 이렇게 봉숭아 물도 몰래 들여주고 얼마나 좋아!

아마 아담만 살았으면 이세상은 삭막했을 거예요." 라고 하면서 좋아서 어쩔줄을 모른다.

 

그날 이후 손톱과의 전쟁이 시작 되었다.

빨리 자라서 없어질까 봐 긴 마귀손톱을 아까워 하며 다니는 녀석과, 손톱깍기를 들고 잔소리와 함께 따라다니는 나와의 전쟁은 언제나 덩치큰 아들의 힘에 밀려 패배로 끝이 났다. 그렇다고 방법이 없지는 않았다. 아빠의 위엄과 힘은 아들아이를 제압하기에 아직은 충분한 부모였다. 봉숭아 손톱의 추억이 아름답지 않아서 무지한 엄마가 되려 하는것은 아니었다. 사춘기의 사랑이 예쁘게 장식되고 곱게 끝나기를 바라는 어미의 걱정때문이었다.

 

세상이 개방되면서, 책임이라는걸 얼마나 처절하게 지켜내야 하는것인지 알기도 전에 우리의 아이들은 성이라는 대중매체와 정보들에 노출되어 있다. 사춘기의 이성친구는 사귐 그 자체가 가슴 떨리고 두근거리는 설레임이다. 어른이 되어서도 후회나 아픔 보다는 신비로운 장식품 같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가슴이라는 장농 속에서 티 없는 옥구슬을 가끔 한 번씩 꺼내 보아야 한다. 여전히 흠없는 영롱한 빛을 발하는 풋사랑의 가치를 더 중요하게 인도 하고 싶었다. 그것이 어른 된 어미의 심정이었다. 물론 훗날에는 어미와 손톱깍기를 들고 사투를 벌인 추억 조차도 곱게 기억으로 남겠지만, 지금 엄마가 이렇게 해야만 하는 이유는 하늘이 사춘기 자녀를 둔 모든 어미에게 내린 숙제 같은 마음이다.

 

감정을 조절하기 힘든 질주용 자동차 같은 시기에 브레이크가 필요하다. 사회와 학교보다 더 앞서서 가정 안의 부모가 가장 먼저 열쇠를 쥐고 절제하는 법과! 사랑에는 반드시 피나는 노력과! 완전한 희생과! 목숨을 건 책임!이 따른다는 운전법을 알려주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오늘 아침 첫 눈이 얇게 쌓인 양만큼 아들의 손톱 끄트머리엔 빨간 봉숭아 손톱이 사위기 직전의 그믐 달 처럼 애교스럽게 웃고 있다. 믹서기에서 혼합된 영양식을 건네면서 한마디 염려를 반찬 삼아 곁들여 주었다.

"그 친구 한테 첫눈이 왔는데 봉숭아 손톱이 남아 있다고 알리지 마라.

 운명은 하느님의 지휘봉만이 인도 하고 계실거야!

 손톱이 네 운명을 알려주지 않듯이 그 친구의 운명도 하느님만이 알으셔."라고

 

내 아들은 ’알았어요’ 라고 대답은 했지만 분명히 집 밖을 나가면서 휴대전화기의 문자가 활화산이 되어 지글지글 끓고 있을 것이다. 그래도 엄마의 잔소리가 쓰디 쓴 약이 되기를 바라면서 아직 잔 어둠이 걷히지 않아서 선명하지 못한 인적드문 골목에 펑펑 쏟아지는 첫 눈을 바라보며 늦은 인사를 했다.

"반갑습니다. 첫눈!

 

 

 -지금, 2007년12월15일 새벽

   밖에 눈이 오셔서 전에 올렸던 글을 다시 올려 보았습니다. -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