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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증언이 있다' - [유광수신부님의 복음묵상]
작성자정복순 쪽지 캡슐 작성일2007-03-21 조회수427 추천수4 반대(0) 신고

증언이 있다(요한5,31-47)

 

 그러나 나에게는 요한보다 더 큰 증언이 있다. 아버지께서 나에게 완수하도록 맡기신 일들이다. 그래서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이 나를 위하여 증언한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도 나를 위하여 증언해 주셨다.

 

 오늘 복음에서 증언이라는 말이 여러 번 나온다. 증언이란 무엇인가? 사실을 증명하는 말이다. 즉 내가 말하는 것이 거짓이 아니고 진실이다 라고 말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인간은 자기 자신을 증언하기가 쉽지 다른 사람을 증언한다는 것은 어렵다. 그러나 다른 이를 증언한다는 것은 그 만큼 그에 대해서 또는 어떤 사건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는 것이고 그럴만한 가치가 있을 때에 가능한 일이다. 잘 모르면 증언할 수가 없다. 잘 모르면서도 증언한다고 하는 것은 오히려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더 곤란하게 만드는 것이다. 거짓 증언을 할 때 증언을 한 사람이나 또 증언을 받은 사람이나 위증죄의 처벌을 받는 법이다.

 

 우리는 대부분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많은 증언을 한다. 즉 자기가 한 일에 대해서 그것이 옳다고 주장하고 다른 이를 설득시키려고 대화를 하고 협박까지 해가면서도 자기가 한 일에 대해서 정당화시키고 합법화시키려고 많은 증언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자기가 자신을 증언하는 것은 믿을만하지 못하다. 왜냐하면 모두가 자기를 증언한다고 할 때 거짓인 데도 다 맞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자기에게 불리할 때는 아니오, 유익할 때는 네 라고 대답하기 때문이다. 자기가 자신을 증언할 때에는 사실인가 아닌가에 따라서 증언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에게 유익한가 불리한가에 따라서 말하기 때문에 신빙성이 없다.

 

그래서 예수님도 제자들을 파견하실 때에 둘씩 짝지어 보내신 것이다. 서로 증언을 하기 위해서이다. 증언은 반드시 다른 이가 해야 한다. 공평하게 사실을 사실대로 말하기 위해서 다른 이가 증언하는 법이다. 그러나 다른 이를 위해서 증언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증언을 함으로써 자기에게 불이익이 돌아오게 될 경우 더욱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가 다른 이를 위해서 증언한다는 것은 그마만큼 깊은 관계이거나 그럴만한 가치가 있을 때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내가 나 자신을 위하여 증언하면 내 증언은 유효하지 못하다."라고 하시면서 자신이 자신을 증언하지 않으시고 "나를 위하여 증언하시는 분이 따로 계시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여기서 예수님이 "나를 위하여 증언하시는 분이 다로 계시다"라고 하신 그분은 누구인가? 예수님을 증언하시는 분은 아버지이시다. 즉 아버지가 아들을 증언하시는 것이다. 그리고 아들은 자기가 한 일을 통해서 다른 이들에게 아버지를 증언하고 있는 것이다.

 

 어제 복음에서 예수님은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말씀하시면서 "내가 내 뜻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추구하신다."고 말씀하셨다. 즉 아들은 항상 아버지의 뜻을 알고 그 일을 하시는 분이시다. 그렇기 때문에 아들이 아버지의 일을 하고 있는지 안하고 있는지를 가장 잘 아시는 분은 아버지이시고 그 일을 증언하실 수 있는 분은 오직 아버지뿐이시다.

 

예수님은 항상 아버지와의 관계 속에서 일을 하신다. 예수님은 인간을 상대로 일을 하시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와의 관계 속에서 일을 하신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주 외딴 곳에 가시어 기도하셨다. 외딴 곳에 가서 기도하신다는 것은 아버지와 대화하시는 것이고 아버지의 뜻을 확인하시는 것이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일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를 점검하시는 것이다. 만일 예수님이 아버지와의 관계 속에서 일을 하지 않으시고 단순히 인간과의 관계 속에서 일을 하셨다면 아버지의 뜻과 다르게 일을 하실 수도 있으셨다.

 

인간과의 관계 속에서 일을 하지 않으시고 아버지와 관계 속에서 일을 하셨기 때문에 당신이 사람들로부터 모함과 모욕을 당하셨어도 흔들림 없이 아버지의 일을 계속 하실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께서 증언하신다고 하신 것이다. 예수님의 관심은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인정을 받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을 제대로 하시느냐가 문제이다.

 

 신앙생활이란 무엇인가? 인간과의 관계를 맺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즉 아버지와 관계를 맺는 것이고 그 관계를 발전시키는 것이다. 아버지와의 관계를 우선 순위에 놓고 그 일을 먼저 하는 것이다. 아무리 인간적으로 어려움을 당한다 하더라도 또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고 비난하고 죽음의 위협을 한다 하더라도 아버지의 뜻에 우선 순위를 두고 그 일을 먼저 하는 것이다. 아무리 인간적으로 손해를 본다 하더라도 때로는 자기 생명의 위험을 당한다 하더라도 아버지의 뜻에 어긋나는 일이라면 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많은 순교자들이 자기의 목숨을 바칠 수 있었던 것이다. 아버지의 뜻에 일치하고 그 일을 하기 위해서 그것과 다른 일을 강요당할 때 자기의 목숨가지 바쳐가면서까지 아버지를 증언한 것이다.

 

 오늘 아버지를 증언하는 사람이 필요하다. 세상 것이 아니라 또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아버지 즉 진리를 증언하고 그것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는 사람이 필요하다. 그래서 예수님은 마지막 기도하실 때 "이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라고 비는 것이 아니라, 이들을 악에서 지켜 주십사고 빕니다. 제가 세상에 속하지 않은 것처럼 이들도 세상에 속하지 않습니다. 이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십시오. 아버지의 말씀이 진리입니다. 아버지께서 저를 세상에 보내신 것처럼 저도 이들을 세상에 보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들을 위하여 저 자신을 거룩하게 합니다. 이들도 진리로 거룩해지게 하려는 것입니다."(요한17,14-19)

 

예수님은 아버지와의 관계 속에서 아버지의 일을 하시기 때문에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이 나를 위하여 증언한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도 나를 위하여 증언해 주셨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일을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자주 조용한 곳에 가서 즉 골방에 들어가 기도하면서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이 또는 나의 삶이 아버지를 증언하는 일을 하고 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그런 관계 속에서 신앙생활을 한다면 우리 스스로 기도하지 않을 수 없고 기도하기 위해 골방에 들어가 머물지 않을 수 없고 인간관계 때문에 속이 상하거니 어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들로부터 증언을 받기 위해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로부터 증언을 받을 일을 하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나의 삶에 증언자가 되지 않으신다면 나는 누구를 위해서 일을 하고 누구를 위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인가? 예수님도 "나는 사람들에게서 영광을 받지 않는다."라고 말씀하셨다. 사람들로부터 훌륭한 사람이다, 일을 잘한다, 똑똑하다 등 그런 영광을 받는 삶이 아니라 아버지로부터 증언을 받는 삶이 신앙생활이다. 그런 참 신앙인을 하느님은 찾고 계신다. 정말로 참되게 예배드리는 신앙인들을 말이다.  

 

                                                  -유광수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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