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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404) 땅 500평과 바꾼 신부 / 하청호 신부님
작성자유정자 쪽지 캡슐 작성일2007-12-02 조회수747 추천수8 반대(0) 신고
 
 
 
 
 
 땅 500평과 바꾼 신부
 
 
                                             글 : 하청호 ( 대전 가톨릭대학교 영성관 보좌신부)
   
 
"대체 왜 이러시는 거예요!"
 
붙잡아 일으켜도 비틀거리며 쓰러지는 아버지.
 
"청호야......  배고프구나."
 
부랴부랴 국을 데우고 찬밥을 퍼담다 보니 부엌 한쪽 귀퉁이에 큰 소주병 두 개가 보였다. 가까스로 앉아 밥을 말아 드시는 아버지의 눈가에는 이슬이 맺혔다.
 
"안 살려고 했다..... ."
 
고등학교 2학년, 늘 큰 어깨로만 보였던 아버지의 무너지는 모습은 견디기 어려웠다.
 
 
 
작은 공장을 운영했던 우리 집은 당시 과중한 토지초과세 부담으로 2억이 넘는 빚에 허덕이고 있었다. 막상 세금을 내고 나니 법규가 대폭 완화되었지만, 이미 낸 세금 빚으로 매달 이자만 300만 원을 물어야 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등기를 내도록 맡긴 인감이 위조되어 공장 한쪽 300평만 팔았는데 500평을 양도한 것으로 서류가 둔갑했다.
 
수차례 재판이 진행되었고, 양편은 독이 오를 대로 올랐다.
아버지는 포크레인을 동원해 그쪽 진입로를 폐쇄했고, 상대편의 고소에 업무방해죄로 소환되었다.
 
어느 날 아버지의 찢어지고 피묻은 속옷을 본 나는 이성을 잃었다.
 
"이런 세상에 지고 싶지 않아! 돈을 줄 테니 몇 사람 보내줘!"
 
폭력을 폭력으로 갚고자 했다.
 
사려 깊은 사촌의 설득에 주저앉았지만 며칠을 속으로 울었다.
그리고 폭력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세상을 만나고 싶었다.
 
법정으로 가던 어느 날, 어머니는 차에 붙어있는
 
'내 탓이오'
 
글귀를 보았다.
 
'악을 악으로 갚으려 했구나!'
 
어머니는 먼저
"돈 안 받겠어요! 젊은 사람이 사업하려니 그럴 수도 있지....."
 
했더니, 웬일인가?
한사코 잡아떼던 그쪽 남자가
 
"일이 커지다 보니 나도 모르게 그리 되었습니다."
 
잘못했다며 갑자기 눈물을 주르륵 흘리더란다.
 
결국 재판은 중단되었다.
나중에 깨달았지만 이때의 고민이 날 신부로 부르시는 하느님의 방법이었다.
 
부제품 30 일 피정 중에 나는 그리스도 왕을 뵈었다.
빌라도의 입을 통해 고백된
 
"자 이 사람이오."(요한 19,5)
 
매 맞고 침 뱉음 당하고 피가 엉겨 붙은 모습에서 결코 피곤과 원망에 찌든 눈빛이 아니라, 오히려 그 눈 속에 담긴 하느님 아버지의 위대하신 모습을.......
여기서 내 서품 성구와 평생의 모토가 결정되었다.
 
세상에서 제일 억울한 자 있다면 예수님을 빼고 말할 수 없다.
그리스도왕은 십자가상에서 피를 흘려 폭력에 종지부를 찍었다.
악은 사랑으로만 이길 수 있다.
 
 
 
오늘 우리가 고백하는 그리스도의 왕권은 십자가의 피를 통해 이룩한 사랑과 평화의 왕권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왕은 용서의 자리, 십자가에서만 만날 수 있다.
 
벌써 15년이 지났다.
지금은 어머니랑 농담을 한다.
 
"땅 500평하고 신부하고 바꾼 거 맞죠?"
 
아버지는 매일 밤늦도록 성경을 보신다.
신부인 나보다 더 신부님같은 아버지.......  .
 
         ㅡ 가톨릭 다이제스트 중에서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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