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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마귀의 표적
작성자김용대 쪽지 캡슐 작성일2009-10-10 조회수427 추천수1 반대(0) 신고
"이스라엘아 들어라! 그때에 너희는 내가 나의 거룩한 산 시온에 사는, 주 너희 하느님임을 알게 되리라. 예루살렘은 거룩한 곳이 되고, 다시는 이방인들이 이곳을 지나가지 못하리라."(요엘 4:17)
 
성녀같이 사는 한 여인이 마귀로부터 심한 유혹을 받았다. 그녀는 하느님의 도움을 청하기 위하여 열심히 기도했지만 하느님께서는 그녀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것 같지 않았다. 어렵게 유혹을 물리치고 난 후에 하느님께
"저가 유혹을 받고 있을 때 하느님께서는 어디 계셨습니까?"하고 물었다.
하느님께서 대답하셨다. “지금처럼 네 곁에 있었다.”
이스라엘이 적들에게 마구 짓밟힐 때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을 버린 것으로 생각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느님, 우리가 당신을 필요로 할 때 어디에 계셨습니까?”하고 물었다. 요엘 예언자가 “우리들 사이보다 더 가까운 곳에 항상 하느님께서 계신다”고 안심을 시켰다.
"나 너와 함께 있으니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너의 하느님이니 겁내지 마라. 내가 너의 힘을 북돋우고 너를 도와주리라. 내 의로운 오른팔로 너를 붙들어 주리라."(이사야 41:10)
 
빛의 천사의 얼굴로 위장하는데 명수인 마귀는 성령(聖靈)의 얼굴도 모방한다.
그리고 믿음이 깊은 사제나 평신도들을 더욱더 집요하게 공격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세상에 악령이 있다는 것을 잘 믿지 않는다.
성령을 받은 것을 눈치채지 못하듯 그림자처럼 몰래 다가온 악령(惡靈)도 눈치채지 못한다.
그러나 선한 사람은 하느님 아버지밖에 안 계시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 모두 악령에 씌워있을 수 있다. 의롭지 못한 생각이나 행동은 모두 악령에 쓰인 것이다.
누가 하느님 앞에 떳떳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성령을 받으면 사람이 달라진다.
성령으로 충만하면 거룩한 수줍음으로 가득한 사람으로 바뀐다.
성령은 얼굴 없는 인격(Person without face)이라는 말이 있다.
성령은 자신의 얼굴을 감추는 신비한 인격이다.
그러기에 성령을 받는 것과 성령의 역사(役事)를 알기가 쉽지 않다.
 
『Affirming the Apostles' Creed』등 수십 권의 책을 쓴 캐나다 성공회의 유명한 신학자인 패커(J. I. Packer, 1926- ) 주교는 성령의 가장 중요한 특성 중의 하나를 거룩한 수줍음(holy shyness)이라고 했다. 이 수줍음은 인간에게서 볼 수 있는 병든 자의식(自意識)의 산물, 즉 자신감이 결여되거나 지나치게 자신을 의식하는 데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 수줍음은 자신을 잊어버리고 상대에게 모든 관심을 쏟는 사랑의 특성이다. 성령님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온전히 예수님만 드러내는 수줍음을 가지셨다. 성령님은 자신의 영광을 베일로 감추고 자신을 통해 예수님의 영광만 드러나게 하신다(요한 16:14).
이 거룩한 수줍음은 예수님의 특성이기도 하다. 예수님은 스스로 영광을 취하지 않고 하느님 아버지에게 모든 영광을 돌리셨다.그런데 마귀는 성령을 받은 사람을 귀신 같이(?) 알고 괴롭힌다.
마귀는 마귀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마태오 복음(12:43-45) 에 분명히 인류의 역사를 단편적으로 기록하고 있다.
“더러운 영이 사람에게서 나가면, 쉴 데를 찾아 물 없는 곳을 돌아다니지만 찾지 못한다.
그때에 그는 ‘내가 나온 집으로 돌아가야지.’ 하고 말한다. 그러고는 가서 그 집이 비어 있을 뿐만 아니라 말끔히 치워지고 정돈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러면 다시 나와, 자기보다 더 악한 영 일곱을 데리고 그 집에 들어가 자리를 잡는다. 그리하여 그 사람의 끝이 처음보다 더 나빠진다. 이 악한 세대도 그렇게 될 것이다."
 
즉 예수님께서는 이전 세대의 유다인들은 “더운 영”에 들린 사람과 같았으며,
당시 유다인들은 더 악하고 더러운 일곱 영에 들린 것 같다고 말씀하시면서
당시 유다인들의 영적(靈的) 상태를 날카롭게 지적하셨다.
다시 말하면 이전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빌론 포로 생활에서 해방됐을 때 그들은 우상 숭배라는 더러운 영(靈)에 붙들려 있었지만 에즈라와 느헤미야 같은 예언자들의 영적(靈的) 각성(覺醒) 운동으로 인하여 그 “더러운 영”이 그들에게서 떠나갔다.
그러나 그 후 바리사이들의 율법주의로 인하여 예수님 당시의 유다인들은 그 이전보다 “훨씬 더 악하고 더러운 일곱 영에 들린 사람처럼 참혹한 상태에 있었다”는 것을 지적하신 것이다.
 
우리들의 못된 악습과 잘못된 가정교육은
모두다 마음의 때[垢]가 되어  마귀로 바뀌게 된다.
우리가 세례를 받을 때 “마귀를 끊습니까?”하는 질문을 받고, “끊습니다.”하고 아무 뜻도 모르고(?) 답했지만 “과거의 마귀를 모두 끊고 앞으로도 마귀를 끊겠습니까?”하고 묻는 것이 옳을 것 같다. 악령이 곧 마귀이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죽음을 알고 계셨지만 죽음의 길을 택하셨다.
패배주의자였기 때문일까?
아니면 약하셨기 때문일까?
내가 죽는 꼴을 봐야 정신을 차리겠느냐? 하시면서 돌아가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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