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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문성공주 두 번 울리기 / 이현철이냐시오 소장님
작성자신희상 쪽지 캡슐 작성일2007-12-01 조회수574 추천수4 반대(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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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성공주 두 번 울리기 / 이현철 마르코니 문화영성 연구소장

십자가를 안테나로!
최근 미국과 독일의 정상들이 차례로 티벳의 정신적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를 접견한 이래, 중국은 노골적으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고 있다고 합니다. 아마 그동안 고구려사, 발해사를 중국의 역사로 편입시키는 이른바 ‘동북공정’처럼 티벳의 역사를 중국의 역사로 편입시키는 ‘서남공정’에 차질이 있을지 모른다는 지나친 조바심에서가 아닐까요?

아무튼 그 옛날 어린 나이에 울면서 토번(티벳)에 시집갔을 당나라의 문성공주가 지금 전세계인의 존경을 받고 있는 티벳 불교의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를 중국이 노골적으로 탄압함으로 인해 다시 울지 않도록 중국이 티벳과의 올바른 관계를 맺도록 촉구하면서 문성공주에 관한 자료와 영화 ‘티벳에서의 7년을 소개합니다. 가브리엘통신

< 티벳으로 시집 간 문성공주 >

문성공주는 원래 당 태종의 양녀였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당 태종과 장손황후(長孫皇后)의 양녀로 궁궐에 들어가 깊은 사랑을 받으며 문성공주에 봉해졌다. 그리고 당시에 토번(티벳)족은 서남지역에서 강성한 국가였기 때문에 당 태종은 서남의 변방을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그들과의 경제적 문화적 협조가 늘 절실히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그의 우려대로 토번의 막강한 군대와 함께 송찬간포는 중국을 침공하려고 하자 그는 정략결혼을 생각하고 토번의 평화협정를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인다. 결국 당 태종은 양녀인 문성공주를 송찬간포에게 시집보내게 되고 그녀는 토번과의 우호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중대한 정치적 임무를 지고 중국 역사상 왕소군(王昭君)에 이어 두 번째로 화친의 임무를 띠고 이역 땅으로 시집간 여인으로 중국 역사에 기록된다.

정관 15년(641년) 정월, 문성공주 일행은 장안에서 티벳까지 약 3,000km에 이르는 장도에 올랐다. 그런데 송찬간포는 그녀를 영접하기 위하여 대규모 영친(迎親) 행렬을 거느리고 청해(靑海)까지 달려갔다고 한다. 그리고 문성공주는 라싸에 도착한 이후 오히려 당왕조의 선진 기술과 문화를 티벳인들에게 전수하여 토번사회의 발전을 촉진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문성공주와 함께 티벳에 들어간 한족 기술자들의 도움으로 티벳족은 야금, 농기구제조, 방직, 건축, 도자기제조, 방아, 술제조, 제지 등의 기술을 신속하게 습득할 수 있었다.

현재 티벳 여인들이 짜는 푸루(야크 털로 짠 검은색 또는 다갈색의 모포)와 융단, 모전(毛氈) 등의 기술은 모두 문성공주로부터 전해진 것이다. 문성공주는 또 티벳인들에게 천문과 역법 일시를 계산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고, 문성공주가 데리고 간 악대는 티벳음악의 발전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이 악대가 가지고 간 악기는 지금도 50여개나 보존되어 있다. 라싸의 대소사(大昭寺)에 소중하게 보관되어 있는데 매년 장력 2월 30일 양보회(亮寶會)가 되면 그것들은 사내의 다른 문물과 함께 일반인들에게 공개된다.

특히 문성공주는 독실한 불교신자였다. 송찬간포도 정치적으로 불교의 교의가 토번족 토속 신앙인 분교(분敎, 분=竹+本) 보다 통치에 훨씬 더 적합하다고 여겼기 때문에, 그는 왕권신수(王權神授)사상을 빌어 왕권을 공고히 하고 찬보의 절대적 권위를 수립하였다. 이에 그는 불법(佛法)을 제창하고 신봉한 문성공주의 주장을 강력하게 옹호하면서 400여 개에 이르는 사원 신축공사에 심혈을 기울였다. 이때부터 티벳불교가 크게 번성하게 되었다. 티벳에 세워진 최초의 불교사원인 방대한 규모의 라싸 대소사는 바로 문성공주의 배려로 건축된 것이다. 대소사 안에는 지금도 공주가 가지고 간 석가모니 불상이 모셔져 있다. 대소사 입구에는 공주가 직접 심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는 버드나무가 몇 그루 있는데 사람들은 그것을 “당류(唐柳)” 또는 “공주류(公主柳)”라 한다.

송간찬포는 현명하고 아름다운 문성공주를 위하여 포달라궁(布達拉宮)을 지어주었는데, 모두 1000간의 궁실로 이루어져 있는 포달라궁은 그야말로 화려하고 웅장하다. 현재의 건물은 17세기에 두 번에 걸쳐 증축한 것이다. 포달라궁의 본전의 높이는 13층, 길이는 117m, 점유 면적 36만여㎡에 이른다. 포달라궁 내부에는 많은 벽화가 보존되어 있는데 거기에는 문성공주에 얽힌 여러가지 이야기의 벽화가 있다.

문성공주는 영륭(永隆) 원년(680)에 40년간의 티벳생활을 마감하고 세상을 떠났다. 티벳인들은 두 개의 기념일을 제정하여 그녀를 기리고 있다. 하나는 문성공주가 라싸에 도착한 날을 기념하기 위해 마련한 장력 4월 15일의 “사허다와절(沙喝達瓦節)”이고, 다른 하나는 문성공주의 탄신일로 알려져 있는 장력 10월 15일이다.

그리고 티벳에는 문성공주에 관한 희극이 많다. 민간에는 그녀에 관한 아름다운 시가와 전설도 많이 전해지고 있다. 티벳인들은 라싸의 팔각대가(八角大街)와 같이 그녀가 지나갔던 곳을 성역으로 여기고 있다. 그녀는 한족과 티벳 두 민족에 있어서 우호의 화신인 것이다. (야후 '중국역사' 참조)

<영화 ‘티벳에서의 7년’>

어린 아들과 임신한 아내를 뒤로 한채 히말라야의 최고봉 중의 하나인 낭가 빠르바트로의 원정을 떠난 오스트리아의 유명한 산악인 하인리히 하러(브래드 피트 분). 강인함과 냉철함, 그리고 이기적인 성격의 하인리히는 혹한의 산정에서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기지만, 이것은 그의 험난하고 기나긴 여행의 시작에 불과했다.

제 2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영국군에게 체포되었다가 극적으로 탈출에 성공한 그는 티벳으로 흘러들어간다. 낯선 땅 티벳에서 졸지에 이방인이 된 하인리히. 하지만 그는 티벳의 모든 국민에게 추앙받는 종교적, 영적 지도자인 13세 어린 나이의 달라이 라마를 만나면서 그의 인생은 바뀐다. 그리고 달라이 라마에게 서방세계의 문명을 가르쳐주며 우정을 나누게 된다. 그리고 그는 당시 엄청난 정치적 격변의 시기에 처한 티벳에서 7년의 세월을 보내게 된다. 특히 하인리히는 달라이 라마와의 만남을 통해 영적인 성숙을 경험하게 된다. 하인리히는 자신이 원하는 모든 것을 가졌었지만 그것이 얼마나 무의미 한지 전에는 미처 깨닫지 못했다. 하지만 자신의 모든 것을 잃고 달라이 라마를 만나, 자기 스스로를 존중하는 마음을 얻을 수 있었다. 어린 달라이 라마가 자신에게 끼친 영향이 얼마나 큰지 깨닫고 그가 자신의 진정한 스승이었음을 알게 된다.

그러나 늘 평온하기만 했던 영혼의 나라인 티벳에 갑자기 중국 인민해방군이 진격해 오면서 모든 것이 변하게 되고 불교는 극심한 탄압을 받으며 그의 영적 친구이자 스승이었던 달라이 라마는 안타깝게도 망명의 길을 떠나게 된다...

<말씀에 접지하기>

여러분은 진리에 순종함으로써 영혼이 깨끗해져 진실한 형제애를 실천하게 되었으니, 깨끗한 마음으로 서로 한결같이 사랑하십시오. (1베드 1, 22)

(마르코니 문화영성 연구소 ;
http://hompy.dreamwiz.com/hl1ye )
 
 
 



Ten. Mario Lanza
R.Falvo,1873~1937
로돌포 팔보
Dicitencello vuie
그녀에게 내 말 전해주오
그녀에게 내 말 전해주오
나 항상 그녀를 생각하기에
내 맘의 평화를 다 잃어버렸다고
    
그녀는 내 모든 것이기에.
그녀에게 내맘을 털어놓고 싶지만
난 어찌 할 바를 모른다네!
    
내가 얼마나 사랑하는지,
얼마나 그녀를 사랑하는지
내 말을 전해주오
결코 잊을 수가 없다고.
이 열정은 사슬보다 더 강해서
내 영혼은 고통 받고 견딜 수가 없네!
    
Ten. Mario Lanza
    
로돌포 팔보(R.Falvo,1873~1937)
나폴리 출생의 이탈리아 작곡가이다.
처음에는 가수로 데뷔,
달콤한 목소리로 주목을 받았다.
뒤에 작곡으로 전향해
칸초네 나폴리타나의 많은 걸작을 내놓아
인기 작곡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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