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07-11-20 조회수1,172 추천수18 반대(0) 신고
 
2007년 11월 20일 연중 제33주간 화요일
 
 
 
 
“Zacchaeus, come down quickly,
for today I must stay at your house.”
(Lk.19.5)
 
제1독서 마카베오 하권 6,18-31
복음 루카 19,1-10
 
 
오늘의 독서와 복음 듣기





저는 어제 오랜만에 자전거 동호회 사람들과 함께 자전거를 탔습니다. 평소에도 자전거를 타기는 하지만, 본당 신부라 동호회 사람들과 시간을 맞추기가 쉽지 않아서 주로 혼자 탔거든요. 그래서 동호회 분들이 저를 위해 특별히 휴가까지 내서 어제 시간을 만든 것이었습니다. 아무튼 추운 날씨였지만 좋은 분들과 함께 타는 자전거의 맛이 너무나도 좋았지요.

어제 자전거를 탔던 곳은 서해에 있는 어떤 섬이었습니다. 배를 타고 들어가 그 섬의 아름다움을 자전거로 구석구석 맛 볼 수가 있었지요. 그리고 자전거 여행의 막바지에 저희는 산의 임도(임시도로. 비포장이 된 차가 지나갈 정도의 소방도로를 말합니다.)를 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경사가 심하고 땅의 곳곳이 많이 파헤쳐 있으며 작은 돌들이 많아서 자전거 제동이 쉽지 않았습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기서 잘못하면 사고 나겠다. 혹시 내가 넘어져서 다치는 거 아니야?’

바로 그 순간 믿기 힘든 일이 일어났습니다. 위험한 부분을 거의 다 빠져나간 상태에서 제가 정말로 넘어진 것입니다. 물론 크게 다친 것은 아니지만, 무릎이 까지고 얼굴에도 약간의 상처가 났지요. 동호회 사람들이 제게 말합니다.

“아니, 위험한 곳 다 지나서 왜 여기서 넘어지세요?”

왜 넘어졌을까를 생각해 봅니다. 마음속으로 ‘혹시 넘어지지 않을까?’ 라는 부정적인 생각을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생각대로 되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특히 부정적인 일의 경우는 더욱 더 그런 것 같습니다. 하지만 부정적인 일만 꼭 생각대로 이루어지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긍정적인 생각 역시 그대로 이루어지지만, 그 사실에 대해서 감사하지 못하고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내 생각대로 되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들의 자유의지를 존중해주시기에, 우리의 생각이 하느님의 뜻과 반대되지 않는 한 그대로 이루어지게 하십니다. 따라서 기왕 하는 생각이라면 부정적이고 나쁜 생각이 아닌, 긍정적이고 좋은 생각을 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오늘 복음에서 자캐오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는 예수님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키도 작았고, 세리라는 직업을 가진 죄인이라면서 예수님을 만날 수 있도록 사람들이 연결도 해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예수님을 만나겠다는 강한 의지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부끄러움을 무릅쓰고라도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갔던 것이지요. 그리고 이 강한 의지가 실제로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자캐오의 모습과 우리들의 다른 차이가 하나 있습니다. 우리들은 이렇게 좋은 결과가 이루어지면 바로 우리들은 내가 잘해서 그런 것이라고 착각한다는 것입니다. 자캐오 역시 그렇게 생각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즉, “내가 이 나이에 불구하고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가는 노력을 해서 예수님을 만났다”고 말이지요. 하지만 그는 자기 자랑을 하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예수님께 대한 감사의 표현으로 가난한 이들을 돕겠다는 말을 함으로써 예수님 뜻에 가장 부합한 행동을 하게 됩니다.

지금 나는 과연 어떤 생각을 하고 있나요? 기왕 하는 생각이라면 긍정적이고 좋은 생각을 하십시오. 그리고 주님께 감사드리는 하루가 되었으면 합니다.



긍정적이고 좋은 생각을 하세요.




자신의 한계는 자신이 만든다(‘행복한 동행’ 중에서)
 
‘벼룩 여왕’으로 유명한 미국의 루이저 로스차일드 박사는 어느 날 벼룩의 점프력을 실험했다. 벼룩을 탁자에 놓고 그 옆을 손바닥으로 한 번 치자 벼룩이 갑자기 뛰어올랐다. 그런데 그 높이가 약 30Cm로 벼룩 자신의 키보다 몇 백 배가 넘었다. 벼룩에게는 일종의 단백질 유전자가 있기 때문에 엄청난 높이의 점프가 가능했다.

그는 한 무리의 벼룩을 실험용 대형 용기에 집어넣고, 투명한 유리로 덮었다. 그러자 뛰어오르는 습성이 있는 벼룩들이 유리 덮개에 부딪혀 ‘탁탁’하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얼마 뒤 소리가 잦아들자 그는 유리 덮개를 열었다. 벼룩들은 여전히 뛰고 있었지만 놀랍게도 모두 뛰는 높이가 유리 덮개 근처까지로 일정했다. 충분히 용기 밖으로 빠져나올 수 있는데도 벼룩들은 덮개에 머리를 부딪치지 않으려 한 것이다.

로스차일드는 한 가지 실험을 추가하기로 마음먹었다. 벼룩이 들어 있는 용기 밑에 알코올램프를 두고 불을 붙였다. 5분도 안되어서 용기는 뜨거워졌다. 모든 벼룩들이 자연스레 생존 본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벼룩들은 머리가 유리 덮개에 부딪치든 말든 최대한 높이 뛰어 모두 용기에서 빠져나왔다.

인간의 습성도 이와 비슷하다. 자신에게 적합한 환경을 만들고 습관적으로 그 안에 자신을 가둔다. 도약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상에 적응한 채로 가만히 있는 것은 아닌가. 용기 밖으로 뛰어나온 벼룩처럼 우리에게도 발밑의 불이 필요하다.
 
 
 
 
 
Thinking Of You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