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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그리스도의 시] 마리아는 공동속죄자이기 때문에 우셨다
작성자장병찬 쪽지 캡슐 작성일2006-01-24 조회수622 추천수0 반대(0) 신고

예수님께서는 훗날 옷타비오 신부에게 이글은 자신이 저자라고 밝혔으며 ('아들들아, 용기를 내어라' 3권 11페이지, 가톨릭출판사), 마리아 발또르따를 통해 '환시'와 '받아쓰기'를 통한 글입니다.
   
(출처: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 원제: Il Poema dell'Uome-Dio )


[마리아는 공동속죄자이기 때문에 우셨다]

예수의 말씀.
  “이것이 하느님의 어머니 마리아의 네번째 고통이다. 첫번째 고통은 나를 성전에서 바칠 때였고, 두번째 고통은 에집트 피난이었으며, 세번째 고통은 요셉의 죽음이었고, 네번째 고통은 어머니와 나의 이별이었다.”

  신부의 바람을 내가 알기 때문에, “우리” 고통에 대한 서술을 서둘러서 사람들에게 알리게 하겠다고 어제 저녁 네게 말하였었다. 그러나 네가 보는 것과 같이 그 고통들은 내 어머니의 고통으로 인하여 벌써 명백히 드러났었다. 에집트에 피난한 이야기를 성전에서 바친 것보다 먼저 한 것은 그날 그 이야기를 해야 하였기 때문이다. 나는 그 이유를 알고 있으며, 너도 그것을 이해하니, 네가 신부께 말로 설명해 드려라.
  네가 주시하는 것과 내가 다음에 네게 하여줄 설명과 엄밀한 의미의 "받아쓰기"를 번갈아 하도록 한 나의 의도는 네게 환시의 지복을 주면서 네 정신과 함께 너를 높이 올리기 위해서이고, 또 그렇게 하면 네가 서술하는 문체와 네가 설명하는 화법 사이의 차이가 명백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라, 나에 대하여 말하는 그 많은 책들이 손질을 하고 고치고 바꾸고 아름답게 꾸미고 한 탓으로 비현실적인 것이 된 것을 보고, 나를 믿는 사람에게 내 지상 생활의 실제에 다시 맞추어진 환상을 보여주기를 원해서이다. 그로 인하여 내 가치가 떨어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너희를 위하여 빵이 되는 내 겸손으로 인하여 더 위대하게 되어, 너희와 같은 사람이었으면서 인간의 겉모습 안에 하느님의 완전을 지니고 있을 나를 닮아 겸손하라고 너희에게 가르치게 된다. 나는 너희들의 모범이어야 하는데, 모범은 항상 완전해야 한다.
  환상을 보이는 데 있어서 복음서의 시간적 순서와 꼭 들어맞는 시간적 순서를 따르지는 않겠다. 나의 가르침과 자비의 순서에 따라서 어느 정해진 날에 너와 다른 사람들에게 더 유익하다고 생각하는 점을 택하겠다.

  내가 떠나는 것을 보는 데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교훈은 특히 하느님의 뜻이 어떤 더 높은 사랑을 위하여 서로 버리라고 부르시는 부모와 자녀들에게 관계되는 것이다. 둘째로는 고통스러운 단념을 과감히 해야 하는 모든 사람에게 관계되는 것이다.
  너희가 살아가는 중에 그런 경우를 얼마나 당하느냐! 그것들은 너희가 세상에 머무는 동안에 만나는 가시들로서 너희들의 심장을 꿰뚫는다는 것을 내가 안다. 그러나 그것을 체념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에게는 -주의하라. ‘그것들을 갈망하고 기쁨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라고 말하지 않고 ‘체념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라고 말한 것은, 그것들을 갈망하고 기쁨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벌써 완전이기 때문이다- 그 가시들은 영원히 피어 있는 장미꽃으로 변한다.
  그러나 그것을 체념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도 별로 많지 않다. 비록 너희들이 영적인 뒷발길질과 물어뜯음으로, 즉 하느님께 반항하고 하느님을 모독하는 말을 하는 것으로 그분께 모욕을 드리려고 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마치 뒷걸음질치는 나귀들처럼 아버지의 뜻에 반항하고 거역한다.
  “나는 그 재물밖에 가진 것이 없었는데, 하느님이 그것을 빼앗아 가셨다. 아니 나는 저 애정밖에는 가진 것이 없었는데 하느님이 그것을 빼앗아 가셨다”고 말하지 말아라. ‘은총이 가득한’ 여인에게 있어서는 애정과 감정의 형태까지도 완전하였기 때문에 사랑스럽고 완전히 사랑하는 여인 마리아도 이 세상에는 오직 하나뿐인 재산, 오직 하나뿐인 사랑 밖에 없었다. 그것은 그의 아들이었다. 마리아에게는 남은 것이라고는 이 애정 밖에는 없었다. 부모는 오래 전에 돌아가셨고, 요셉도 몇 해 전에 세상을 떠났다. 마리아를 사랑하고 마리아가 외롭지 않다는 것을 느끼게 하는 사람으로는 나밖에 없었다. 친척들은 나 때문에, 내가 하느님에게서 왔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마리아에 대하여 약간 적의를 품고 있었다. 그들의 생각에는 마리아가 상식을 우습게 여기는 아들, 가문을 돋보이게 하고 물질적인 도움까지도 집안에 가져다줄 수 있었을 결혼 계획들을 거절하는 아들에게 자기 뜻을 받아들이게 할 줄을 모르는 어머니였다.
  상식의 목소리요, 인간적 의식의 목소리인 친척들은 -너희는 상식을 양식이라고 부르지만, 그것은 인간적인 의식, 즉 이기주의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까 친척들은 내 생활에서 실제적인 변화를 원했던 것이다. 사실은 그들이 생각하기에 너무 이상주의적이고, 시나 고가의 기분을 거스를지도 모르는 사상들을 벌써 감히 내놓는 나 때문에 언젠가 난처한 일을 당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이었다. 히브리 민족의 역사에는 예언자들의 운명에 관한 교훈이 수두룩하다. 예언자의 사명이란, 쉬운 사명이 아니었다. 예언자의 사명은 흔히 예언자에게는 죽음을, 그의 일가족에게는 난처한 일을 가져다주었다. 결국 언젠가 내 어머니를 떠맡아야 하리라는 생각이 항상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친척들은 내 어머니가 어떤 일에도 내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고, 아들 앞에서 끊임없이 숭배하는 태도를 가지는 것 등을 보고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들의 반대가 그 후 내 임무를 수행하는 3년 동안에 점점 더 커져서, 내가 군중에 둘러싸여 있는 것을 만나러 오게 될 때에는 공공연하게 비난을 하게까지 되었고 그들의 생각으로는 강력한 특권계급과 충돌하는 것으로 보는 내 괴벽 때문에 얼굴을 붉히게까지 되었다. 나와 가엾은 어머니에 대한 비난이었다.
  마리아는 친척들이 기분 나빠하는 것을 알고 계셨다. 친척 모두가 야고보와 유다와 시몬 같지 않았고, 그들의 어머니 클레오파의 마리아 같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그러한 마음가짐이 어떻게 될 것인지를 예측하고 계셨다. 마리아는 그 3년 동안에 당신의 운명이 어떻게 될 것인지, 무엇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는지 알고 계셨고, 나의 운명도 알고 계셨다. 그런데도 너희들이 하는 것과 같이 반항하지 않으셨다. 어머니는 우셨다. 내가 어머니를 사랑하는 만큼 사랑하던 아들과 헤어질 때, 당신 혼자 있는 외로운 그 집에 내가 있지 않게 될 오랜 세월을 생각하고, 자기들이 죄를 깨달으며, 그 죄의식 때문에 그 죄 없는 사람을 죽이기를 원할 정도로 공격하도록 부추겨지는 사람들의 악의를 보고 어떤 어머니가 울지 않겠느냐?
  어머니는 공동속죄자이고 하느님에게서 새로운 생명을 받은 인류의 어머니이기 때문에 우셨다. 어머니는 그들의 어머니로서의 고통을 가지고 영원한 영광의 월계관을 만들 줄을 알지 못하는 모든 어머니들 때문에 우셔야 하였다.
  이 세상에는 품안에 있는 자식을 죽음에서 빼앗기는 어머니가 얼마나 많으냐! 초자연적인 뜻에서 그들 곁에 있는 아들을 빼앗기는 어머니가 얼마나 많으냐! 그리스도인들의 어머니로서는 그 모든 딸들 때문에, 외톨이가 된 어머니의 고통 속에 있는 그 모든 자매들 때문에 마리아가 우셨다. 또 여인의 몸에서 태어나서 하느님의 사도가 되고, 하느님께 대한 충실로 인해서 또는 사람들의 잔인성으로 인하여 하느님 사랑을 위한 순교자가 되도록 운명지어진 그 모든 아들들 때문에도 우셨다.
  내 피와 마리아의 눈물은 영웅적인 운명에 부름을 받은 사람들을 튼튼하게 해 줄 것이고, 그들이 약함으로 인해서 저지른 불완전이나 죄까지도 지워 없애는 혼합물이 되며, 어떠한 고통이든지 그 고통 너머로 하느님의 평화를 줄 것이고, 그 고통을 하느님을 위하여 참아받았으면 하늘의 영광을 줄 것이다.
  선교사들은 온통 눈으로 덮힌 나라들에 서로 그들을 따뜻하게 하는 불꽃처럼 이 혼합물을 찾아내고, 몹시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곳에서 이슬처럼 이것을 찾아낸다. 마리아의 눈물은 그의 자비에서 나오고 순결한 마음에서 솟아난다. 그러므로 선교사들은 사랑과 결합한 동정녀의 자비에서 불을 얻고, 동정녀의 순결에서는 이슬 내린 밤을 지낸 백합의 꽃받침 속에 고인 신선한 물과 비슷한 향기롭고 시원한 물을 얻는다.
  봉헌된 영혼들을 제대로 이해한 수도생활이라는 광야에서 이 혼합물을 찾아낸다. 광야라고 말한 것은 하느님과의 일치밖에는 산 것이라고는 없기 때문이고, 부모나 친구나 윗사람이나 아래 사람에 대한 일체의 다른 애정은 오직 초자연적인 사랑이 되면서 사라져 버리기 때문이다.
  하느님께 봉헌된 사람들은 그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사랑하지도 않는 세상 안에서도 이 숭고한 혼합물을 찾아낸다. 내게 대하여 가지는 사랑 때문에 하도 이해를 받지 못하고 웃음거리가 되어서 그들 혼자만이 사는 것으로 느껴지는 이 세상도 그들에게는 광야와 같은 것이다.
  내 사랑하는 ‘희생들’은 이 혼합물을 찾아낸다. 희생이라고 말한 것은 마리아가 첫 번째로 예수에 대한 사랑으로 희생이 되었고 또 그를 따르는 다른 영혼들도 희생이 되었기 때문이다. 마리아는 그의 어머니다운 손, 의사다운 손으로 더 큰 희생을 위하여 강하게 하고 도취시키는 눈물을 준다. 내 어머니의 거룩한 눈물!
  마리아는 기도를 드린다. 마리아는 하느님께서 고통을 주신다 해도 기도를 거부하지 않는다. 이것을 기억하여라. 마리아는 예수와 함께 기도한다. 마리아는 우리와 너희들의 아버지께 기도를 드린다.
  ‘주의 기도’는 나자렛의 정원에서 맨 처음으로 드렸다. 마리아의 마음 고통을 위로해 드리기 위해서였고, 우리의 뜻을 영원하신 분께 드리기 위해서였다. 우리의 뜻을 버리는 이 기간은 점점 더 커져서 결국 내게 있어서는 목숨을 바칠 때에 절정에 이르렀고, 마리아에게 있어서는 그의 아들이 죽을 때에 절정에 이르렀다.
  우리는 아버지께로부터 용서를 받을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죄없는” 우리들은 존엄한 우리의 사명에 대하여 한숨 한번 지은 것에 대해서라도 용서를 받고 사죄를 받기 위하여 아버지께 용서를 빌었다. 그것은 하느님의 은총을 받고 있으면 받고 있을수록 임무가 더 축복을 받고 더 좋은 결과를 나타낸다는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기 위해서였고, 하느님께 대한 공경과 겸손을 가르치기 위해서였다. 하느님 아버지 앞에서 우리 완전한 남자와 여자 두 사람도 허무와 같이 느껴졌고, 그래서 ‘일용할 양식’을 청하고 용서를 청하였다.
  우리의 양식은 어떤 것이었느냐? 오! 그것은 마리아의 깨끗한 손으로 반죽한 것을 내가 묶어 놓은 나무로 불을 피운 작은 화덕에서 구워 내는 그런 빵이 아니었다. 그런 빵도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사는 한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의’ 일용할 양식은 우리 사명의 일을 날마다 행하는 것이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임무를 다하는 것이 우리의 하루의 기쁨이기 때문에 하느님께 그 일용할 양식을 주시기를 청하는 것이 아니냐, 작은 요한아? 만일 인자하신 주님이 네게 고통의 임무를 주시지 않은 채로 내버려두시면, 그 날은 텅 빈 것 같고, 심지어는 그날이 없었던 것 같다고 네가 말하지 않았느냐?
  마리아는 예수와 함께 기도한다. 얘야, 너희를 정당화하는 것은 예수이다.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아버지께 받아들여질 만한 것이 되게 하고 유익한 것이 되게 한다. 나는 그 말을 하였다. “너희는 무엇이든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청하면 아버지께서 그것을 들어주실 것이다” 하고. 그리고 교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라고 말하여 그 기도를 더 가치있게 한다.
  너희가 기도할 때에는 항상, 항상, 항상 나와 일치하여라. 나는 너희들을 위하여 큰 소리로 기도할 것이며, 하느님이요 사람인 내 목소리로 인간인 너희들의 목소리를 들리지 않게 할 것이다. 나는 너희들의 기도를 꿰뚫린 내 손에 얹어 가지고 아버지께 들어올리겠다. 그 기도는 무한한 가치가 있는 제물이 될 것이다. 너희들의 목소리와 내 목소리가 합쳐져서 아들의 입맞춤 모양으로 아버지께 올라갈 것이고, 내 상처들의 피는 너희들의 기도를 값비싼 것이 되게 할 것이다. 너희들 안에, 너희들과 함께, 또 너희들 차지로 아버지를 모시고 싶으면 내 안에 머물러 있어라.
  너는 “그리고 우리들을 위하여도”라는 말로 이야기를 끝마쳤는데, 너는 이런 뜻으로 그 말을 하였다. 우리를 위하여 갈바리아를 올라가신 두 분께 대하여 몹시도 배은망덕하는 우리들을 위하여도, 네가 그 말들을 쓰기를 잘했다. 내가 우리 고통 중의 하나를 보여줄 때마다 그 말을 써 넣어라. 이 말들은 묵상하고 뉘우치라고 울려주고 부르는 종소리 같은 것이 되기를 바란다.
지금은 이쯤으로 그만두겠다. 쉬어라. 평화가 너와 함께 있기를.”


(
http://예수.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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