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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주님의 길을 닦는 삶" - 2007.12.9 대림 제2주일(인권주일)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07-12-09 조회수540 추천수3 반대(0) 신고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07.12.9 대림 제2주일(인권주일)                                   
이사11,1-10 로마15,4-9 마태3,1-12

                                                
 
 
"주님의 길을 닦는 삶"
 


어제 마침 이발해주는 젊은 수사님에게 넌지시 물어보았습니다.

“요즘 살기 어때요?”
“아주 좋습니다.
  몇 달 전에는 고민도 많이 했습니다.
  그러다 언젠가 깨달음처럼 문득
  ‘어, 왜 내가 주님의 삶을 살아야 하는데 내 삶을 살려고 그러지’ 라는
  생각이 들면서 나를 놓아버리니 아주 자유롭고 편안해 졌습니다.”

주님을 따라 주님 중심의 삶을 살려고 신자가 되었는데
내 중심의 삶을 살려고 하기에 파생되는 불평불만에 어려움입니다.
 
젊은 수사님의 대답이 새삼스런 깨달음이었습니다.
 
내 필요가 아닌 공동체의 필요에 따라 살아가는 이런 수사님의 삶 자체가
큰 위로와 힘이 됩니다.

‘나는 누구인가?’ 아무리 물어도 답은 안 나옵니다.
 
안개에 싸인 듯 애매한 존재가 나입니다.
주님이 없는 나를 한마디로 정의하면 심연의 블랙홀입니다.
 
하여 주님이 없는 나의 추구는 십중팔구 환상과 착각, 오해 속에
끝없는 미궁 속으로 빠져들기 마련입니다.
 
주님 앞에서
비로소 태양에 안개 걷히듯 환상은 걷히고 참 나의 모습이 들어납니다.
 
역설적으로 주님을 찾고 따르며 주님의 삶을 살 때
비로소 자유롭고 자연스런 참 나를 살게 됩니다.

세례자의 신원을 통해 밝혀지는 우리의 신원입니다.
바로 ‘세상 광야에서 주님의 길을 닦는 이’가
하느님을 믿는 우리들의 신원입니다.

인적 없는 곳만이 광야가 아니라
많은 이들이 함께 사는 도시도 외롭고 쓸쓸한 광야입니다.
 
하여 ‘도시의 광야’, ‘군중 속의 고독’이란 말도 있지 않습니까?
 
대림 제2주일,
이 도시의 광야에서 들려오는 우리 모두를 향한 세례자 요한의 말씀입니다.

“너희는 주님의 길을 마련하여라. 그분의 길을 곧게 내어라.”

세상 광야에서 주님의 길을 마련하라고 불림 받은 우리들입니다.
 
외치는 소리 보다
묵묵히 길을 마련하는 삶 자체보다 더 좋은 복음 선포도 없습니다.
 
내 삶이 아닌 주님의 삶을 사는 것이요,
내 길이 아닌 주님의 길을 마련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세상 광야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지요.
 
이 주님의 길이 상징하는바 내 삶의 중심이요 방향이요,
이 길을 잃어 허무와 방황입니다.

어찌 보면 우리의 전 삶이 주님의 길을 닦는 여정이니
우리 모두가 주님의 수도자라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을 찾아 가는 같은 길로, 주님은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우리가 주님의 길을 내지 않으면 주님도 오시지 못합니다.
 
그러나 삶의 자리가 다 다르듯이 주님의 길도 사람마다 다 다릅니다.
모두 똑같은 주님의 길이 아닙니다.
누가 대신 마련해 줄 수 있는 주님의 길이 아니라
나 스스로 마련해야 하는 주님의 길입니다.
 
외롭고 고독한 평생 작업이 내 주님의 길을 마련하는 일이나,
주님 친히 도와주십니다.
과연 나의 주님의 길은 어느 정도 마련되어 있는지요.

세례자 요한의 우리 모두를 항한 두 번째 말씀입니다.

“회개하여라. 하늘나라가 다가왔다.”

예수님의 설교의 요약이기도 합니다.
예나 이제나 만고불변의 진리 말씀입니다.
 
세례자 요한 자신의 회개체험에서 나온 확신 넘치는 선포 말씀입니다.
 
이런 회개를 통해 주님의 길을 마련하고 곧게 하는 우리들입니다.
그러나 한번으로 끝나는 회개가 아니라 평생 회개의 삶입니다.
아무리 환경, 사람, 법, 건물 바뀌어도
사람의 마음 바뀌지 않으면
다 헛일이요 모래위의 집짓기입니다.
 
죽어서가는 하늘나라가 아니라
회개한 자들은 이미 지금 여기 도래한 하늘나라임을 예민하게 감지합니다.
 
사실 여기서 하늘나라를 살지 못하면
죽어서 하늘나라를 살기는 거의 불가능합니다.

회개는 결국 거창하지도 놀라운 것도 아닙니다.
 
이기적 나 중심에서 하느님 중심에로의 전환이 회개요,
탈선의 삶에서 주님 계신 내 제자리 삶의 궤도로 돌아오는 게 회개입니다.
 
매일을 처음이자 마지막처럼,
하느님 현존 안에 생생히 깨어있는 삶이 회개입니다.
 
어둠 속의 삶이 아니라 하느님 현존의 환한 빛 속에 삶입니다.
 
이런 회개에서 제외될 자 아무도 없습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기득권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다음 사자후를 토해내는 세례자 요한의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우리는 아브라함을 조상으로 모시고 있다’고 말할 생각일랑 하지 마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는데,
  하느님께서는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녀들을 만드실 수 있다.
  도끼가 이미 나무뿌리에 닿아 있다.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는 모두 찍혀서 불에 속에 던져진다.”
세례자 요한의 과격한 말씀들,
모두가 회개의 절박성을 깨닫게 하기 위한 충격요법의 표현입니다.
 
내 삶의 나무에 열매들은, 믿음, 희망, 사랑의 열매들은 잘 커가고 있는지요.

세 번 째 간곡한 권고 말씀입니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라”

막연한 회개가 아니라,
구체적 열매인 겸손과 평화로 회개의 진위가 드러납니다.

회개할 때 하느님 앞에 서게 되고 비로소 자기를 아는 겸손입니다.
 
하여 회개할 때 겸손이요,
겸손할 때 회개이니 회개와 겸손은 함께 감을 깨닫습니다.
 
세례자 요한의 다음의 단순 소박한, 자연스럽고 자유로운 풍모를 통해
그대로 드러나는 겸손입니다.

‘요한은 낙타털로 된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둘렀다.
  그의 음식은 메뚜기와 들꿀이었다.’

다음 고백에서도 주님을 중심으로 한 그의 겸손한 삶이 한 눈에 들어옵니다.

“그러나 내 뒤에 오시는 분은 나보다 큰 능력을 지니신 분이다.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들고 다닐 자격조차 없다.”

주님의 거울에 환히 비친 참 나를 아는 세례자 요한, 참 겸손한 사람입니다.
 
회개의 구체적 확실한 열매가 이런 자기를 아는 겸손이요,
이런 겸손으로 마련되고 곧게 내어지는 주님의 길입니다.

겸손의 열매에 이어 평화의 열매입니다.
하느님 앞에서 겸손해진 사람들,
일체의 위선이나 가식, 허영이 없는
있는 그대로의 자유롭고 자연스런 사람들입니다.
 
자기 방어도 무장도 없으니 모두에게 활짝 열린 평화의 사람들입니다.
 
이의 구체적 증거가 예수님과 숱한 성인들이요,
모두가 잘 아는 프란치스코 성인입니다.
 
바로 이사야 예언자가
우리 모두의 염원인 이런 유토피아 평화의 상태를 아름답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늑대가 새끼 양과 함께 살고, 표범이 새끼 염소와 지내리라.
  송아지가 새끼 사자와 더불어 살쪄가고, 어린아이가 그들을 몰고 다니리라.
  암소와 곰이 나란히 풀을 뜯고, 그 새끼들이 함께 지내리라.
  사자가 소처럼 여물을 먹고,
  젖먹이가 독사 굴 위에서 장난하며,
  젖 떨어진 아이가 살무사 굴에 손을 디밀리라.”

평화의 사람들에 의해
서서히 실현되는 이런 꿈같은 평화의 유토피아 세상입니다.
 
그리스도 우리의 평화입니다.
 
다음 바오로 사도의 말씀처럼
그리스도를 본받을 때 비로소 평화의 사람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을 기꺼이 받아들이신 것처럼,
  여러분도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서로 기꺼이 받아들이십시오.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의 진실하심을 드러내시려고
  할례 받은 이들의 종이 되셨습니다.”

우리 한 가운 데 계신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의 샘입니다.
 
그리스도를 늘 모시고 바라보면서 살 때 개인은 물론 공동체의 평화입니다.
 
주님의 길을 마련하는 데
겸손과 더불어 평화라는 두 회개의 열매들 보다 더 좋은 수단은 없습니다.


세상 광야에서 주님의 길을 마련하고 곧게 하라고 불림 받은 우리들입니다.

우리의 그루터기에서 겸손의 햇순이 돋아나고,
우리의 뿌리에서는 평화의 새싹이 움트고 우리 위에 주님의 영이 내립니다.
 
우리 모두 정의의 띠로 허리를 두르고,
신의의 띠로 몸을 두르고 주님의 수도자 되어
이 은총의 대림시기 열심히 주님의 길을 닦읍시다.
 
우리가 닦는 이 주님의 길을 통해 우리에게 오시는 주님이십니다.
 
매일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바다를 덮는 물처럼 주님을 앎으로 가득해져가는 세상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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