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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생명수의 강〈새 예루살렘〉
작성자최혁주 쪽지 캡슐 작성일2005-10-31 조회수927 추천수0 반대(0) 신고
   생명수의 강〈새 예루살렘〉


   묵시 22장 1-2절을 보면 ‘그 강은 하느님과 어린양의 옥좌로부터 나와 그 도성의 넓은거리 한가운데를 흐르고 있었습니다. 강 양쪽에는 열 두가지 열매를 맺는 생명나무가 있어서 달마다 열매를 맺고’ 라고 하였습니다. 물은 만물을 새롭게 하는 생명의 근원인 것입니다. 주님의 강물은 우리 영혼에게 생명을 주며 갖가지 열매를 맺게 하고 우리의 영혼을 새롭게 합니다.

   시편 104장 13절에서 ‘높은 다락집에서 산에 산에 물 주시니 일하시는 보람이 땅에 가득하오이다.’ 하였듯이 하느님께서 우리 영혼에게 축복을 주시는 것을 비유하시는 말씀인 것입니다. 이것은 세상에서 농사 짓는 법칙을 비유하여 영혼의 농사를 짓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세상에서의 농사 짓는 법칙은 1년에 열매를 한번 맺지만 하느님의 농사법은 1년 12달 다달이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에서 농사를 잘 지으려면 농토가 강을 끼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도성을 정할 때도 강물은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나라를 예로 본다면 바로 이성계가 천년 도읍지를 한강을 따라 한양에다 세웠지만, 그러나 천년은 가지 못했고 이씨조선 오백년이란 말이 있듯이 묵시록 20장 1-6절 ‘천년왕국’은 하느님이 세우신다면 천년을 그대로 가는 것입니다. 물론 성서의 말씀은 비유가 많지만 무조건 다 비유로만 들어서도 안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믿으려고 하는 마음으로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농사에는 열매의 결실을 보는 것이 농사의 목적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마태 21장 19절에서 열매없는 무화과나무를 “이제부터 너는 영원히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하고 저주 하셨습니다. 이것은 당신께서 열매를 못따 잡수셔서 그런 것은 아닌 것입니다. 바로 우리가 열매를 맺기를 교훈하시는 말씀이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셨기에 다행이지 얼마나 무섭고 처참한 저주의 말씀입니까?

   우리의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열매를 맺어야 할 것입니다. 농부들이 좋은 실과를 내기 위해 얼마나 애를 씁니까? 접과를 해주고, 약을 쳐주고, 잡초를 제거해 주고, 물과 거름을 주고, 가지치기를 해주고 또 조심스럽게 따서 창고에 보관합니다.

   우리 영혼의 농사에 있어서도 방법은 더도 덜도 아니고 이와 똑같다면 우리는 벌써 과장법을 아주 조금만 쓰더라도 道를 닦아 道의 경지에도 이르렀을 것입니다. 우리는 농사에는 전문가들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영혼의 농사에는 전문가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너는 너의 세속 일에는 충실하였으면서 너의 영혼의 참일에는 무엇을 하였느냐?고 하시면 무엇이라고 변명을 하겠습니까? 우리는 죽쟁이를 내려고 농사를 짓는 것은 아닙니다. 농부가 추수때를 기다리며 인내하듯이 우리는 영혼의 추수때를 기다리며 인내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을 뵈올 묵시 14장 1-5절 ‘십 사만 사천 명이 부른 노래’ 편에서처럼 우리의 이마에 하느님의 이름이 새겨질 때를 인내하고 고대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이마에 하느님의 이름이 새겨지는 것, 큰 물소리, 천둥소리, 거문고타는 소리같은 소리가 울려 오는 것, 새로운 노래를 부르는 것, 어린양이 가는 곳은 어디든지 따라다닌다는 것,

   그리고 묵시 21장 9-27절 ‘새 예루살렘’ 편에서처럼 어린양의 아내인 그 신부의 일원이 된다는 것, 즉 묵시 21장 14절 ‘그 도성의 성벽에는 열 두 주춧돌이 있었는데 그 주춧돌에는 어린 양의 열 두 사도의 이름이 하나씩 적혀 있었습니다.’ 하였듯이 이미 열 두 사도가 교회의 주춧돌이 그 도성의 성벽의 주춧돌이 되었듯이

   그리고 16절 ‘그가 측량자로 그 도성을 재어 보았더니 길이와 넓이와 높이가 똑같이 만 이천 스타디온 이었습니다.’ 하였듯이 이미 구약시대에 가나안복지에 들어가기 위하여 전쟁에 뽑힌 만 이천 명의 군사들이 그 도성을 얻기위해 싸운 일원들이 되어주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17절 ‘또 그가 성벽을 재어 보았더니 사람의 자로 백 사십 사척 이었습니다. 이 자는 천사의 자이기도 했습니다.’ 하였듯이 144척×1,000=144,000척인 이 시대에 영신의 전쟁에 곱으로 많이 뽑힌 군사들을 지칭하는 말인 것인데 이들이 또한 그 도성의 성벽인 이 시대에 성벽이 되어지는 이치가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이러한 것은 우리가 무슨 위대한 일을 많이 해서 또는 공부를 많이 해서 그리되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그러니까 얼마나 좋습니까? 누구나 다 할 수 있으니까 말입니다. 우리가 매사에 생명의 근원이신 하느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면 되는 것입니다. 절제하고, 언어를 잘 다스리고, 겸손하게 우리가 이웃을 섬기면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도 마태 20장 28절에서 "사실은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 라고 하신 말씀의 속성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이곳에서는 양반과 상놈, 주인과 종, 돈과 노예의 법칙이지만 하늘 나라에서는 너와 나, 너의 이성과 나의 이성이 서로 섬겨야 하는 법칙만이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무슨 대단한 일을 해서 하느님을 뵈옵게 되는 것이 아니라 아주 작은 일을 해서 하느님을 뵈옵게 되는 것입니다.

   마태 13장 44-46절 "하늘나라는 밭에 묻혀 있는 보물에 비길 수 있다. 그 보물을 찾아낸 사람은 그것을 다시 묻어 두고 기뻐하며 돌아 가서 있는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 "또 하늘나라는 어떤 장사꾼이 좋은 진주를 찾아 다니는 것에 비길 수 있다. 그는 값진 진주를 하나 발견하면 돌아 가서 있는 것을 다 팔아 그것을 산다."

   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듯이 우리가 들은 옛날 속담에도 진주는 흙 속에 묻혀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 시대에도 역시 진주는 흙 속에 묻혀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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