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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07-11-21 조회수1,142 추천수18 반대(0) 신고
 
2007년 11월 21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 기념일
 

 
 'I will judge you by your own words,
you wicked servant! You knew, did you,
that I am a hard man, taking out what I did not put in,
and reaping what I did not sow?
(Lk.19.22)
 
 
제1독서 마카베오 하권 7,1.20-31
복음 루카 19,11-28
 

오늘의 독서와 복음 듣기





산에 노루를 방목하면서 키우는데 자꾸 이리떼가 와서 잡아먹더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에 따른 손실이 많아질 수밖에 없었지요. 그래서 이리떼를 보이는 족족 잡아 죽이기 시작해서, 이리를 거의 찾기가 힘들 정도까지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이제 이리가 없으니 노루가 더 많아질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그 결과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이리떼에 잡혀서 죽는 경우는 줄었지만, 점점 비실비실하여 병사하는 노루들이 많더랍니다. 즉, 병에 걸려서 죽고, 약해서 죽고 그렇게 죽는 숫자가 이리떼에 잡혀 죽는 수보다 훨씬 더 많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다시 이리떼를 풀어 넣었습니다. 그러자 노루들이 긴장을 하면서 도망 다니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더욱 더 강해지더라는 것입니다.

싱싱한 횟감을 만들기 위해서는 그 물고기 안에 천적인 물고기 한 마리를 넣으면 잡혀먹지 않으려고 이리저리 도망 다니기 때문에 운동량이 많아지고 그래서 횟감이 더욱 더 연해지고 맛있다고 하지요.

이렇게 아무런 사냥꾼 없이 풀어놓으면 삶에 대한 의지가 약해질 수밖에 없답니다. 그런데 이런 부분은 우리 인간들에게도 해당된다고 하네요. 그래서 사람 역시 약간의 스트레스를 통해서 삶의 활력을 얻을 수 있다고 합니다.

고난과 시련이 왔을 때, 겁을 먹을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고난과 시련은 내가 더욱 더 힘차게 살 수 있도록 만들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불평과 불만 속에 살기 보다는 매 순간 감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이러한 마음을 갖기란 쉽지가 않네요. 감사하면서 살지 못하기 때문에, 내가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감사하지 못하면서 힘들게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오늘의 복음에서 미나의 비유 말씀을 우리에게 전해주십니다. 어떤 귀족이 왕권을 받으러 먼 고장으로 떠나지요. 그런데 이에 앞서 종에게 한 미나씩을 나누어주고는 벌이를 하라고 합니다. 그리고 왕권을 받아가지고 오자, 그 종들이 벌어들인 양만큼 고을을 다스리게 합니다. 한 미나로 열 미나를 벌어들인 종인 열 고을을, 다섯 미나를 벌어들인 종은 다섯 마을 맡깁니다. 그런데 어떤 종은 이를 수건에 싸서 보관해두어 그대로 가지고 오지요. 이에 주인은 그 한 미나 마저 빼앗아 열 미나를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주게 합니다.

이 비유의 말씀처럼 우리도 주님으로부터 똑같은 능력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들이 인간적이고 세속적인 차원에서만 그 능력의 크기를 재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내가 얼마나 많은 능력을 주님으로부터 받았는지를 깨닫지 못하는 것이며, 그래서 감사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우리들이 판단의 기준으로 삼고 있는 그 능력의 크기가 얼마나 대단치 않게 보일까요? 그렇기 때문에 오늘 복음의 비유 말씀을 통해서 똑같은 능력이 주어짐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지금 나의 모습을 스스로 살펴보십시오. 혹시 불평과 불만 속에서 살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요? 그래서 주님으로부터 받은 능력을 성장시키지 못하고, 그대로 움켜만 쥐고 있는 어리석은 종의 모습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내가 받은 모든 것에 대해서 감사하세요.




당신의 삶이 15분이라면(고두현, ‘시 읽는 CEO’중에서)
 
서양 연극 중 생명이 15분밖에 남지 않은 한 젊은이를 주인공으로 한 ‘단지 15분’이라는 작품이 있다. 주인공은 어려서부터 총명했다. 뛰어난 성적으로 박사 과정을 수료하고 논문 심사에서도 극찬을 받았다. 이제 학위 받을 날짜만 기다리면 되는 상황이었다. 그의 앞날은 장밋빛 그 자체였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가슴에 심한 통증을 느꼈다. 정밀 검사 결과 청천벽력 같은 진단이 떨어졌다. 시한부 인생이라는 것이다. 그것도 남은 시간은 단지 15분. 그는 망연자실했다. 이 모든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 그렇게 5분이 지나갔다. 이제 남아있는 인생은 10분이었다. 이때 그가 누워 있는 병실에 한 통의 전보가 날아들었다.

‘억만장자였던 당신 삼촌이 방금 돌아가셨습니다. 그의 재산을 상속할 사람은 당신뿐이니 속히 상속 절차를 밟아 주십시오.’

그러나 죽음을 앞둔 그에게 재산은 아무 소용 없었다. 그렇게 운명의 시간은 또다시 줄어들었다. 그때 또 하나의 전보가 도착했다.

‘당신의 박사 학위 논문이 올해의 최우수 논문상을 받게 된 것을 알려드립니다. 축하합니다.’

이 축하 전보도 그에게는 아무 위안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절망에 빠진 그에게 또 하나의 전보가 날아왔다. 그토록 애타게 기다리던 연인으로부터 온 결혼 승낙이었다. 하지만 그 전보도 그의 시계를 멈추게 할 수 없었다. 마침내 15분이 다 지나고 그는 숨을 거두었다.

이 연극은 한 인간의 삶을 15분이라는 짧은 시간에 응축시켜 보여 준다. 이 청년의 삶은 우리 모두의 삶과 같다. 젊은 시절의 꿈을 좇아 정신없이 달리다 보면 어느새 머리카락이 희끗해진다. 그리고 인생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을 즈음이면, 남은 시간이 별로 없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때 가서 후회한들 아무 소용없다. 시간은 강물과 같아서, 막을 수도 없고 되돌릴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물을 어떻게 흘려보내느냐에 따라 시간의 질량도 달라질 수 있다. 루시우스 세네카는 말했다.

“인간은 항상 시간이 모자란다고 불평을 하면서 마치 시간이 무한정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
 
 

 

Well done, good servant!
You have been faithful in this very small matter;
take charge of ten cities.’
(Lk.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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