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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저의 전부가 되소서
작성자장병찬 쪽지 캡슐 작성일2005-11-21 조회수1,051 추천수0 반대(0) 신고
주님은 더욱 커지셔야하고 나는 작아져야 합니다. (요한 3,30)
예수님, 저는 예수님께 의탁합니다.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우리는 얼마나 행복한 존재인가!
모든 성인들과 천사들의 기도와 선행도 한 대의 미사와 비교할 수 없다.
언제 어디서나 항상 저와 함께 계시는 예수님, 저의 전부가 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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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전부가 되소서]


사람에 있어서 "외유내강(外柔內剛)한 모습은 함께 살아가는 이들에게도
큰 힘이 됩니다.
곧 만나는 이들 어느 한 사람에게도 부드럽고 관대한 마음으로 대하되,
자기 자신에게 있어서는 차가우리만큼 냉정한 태도가 갖추어진 것을
말하지요. 즉 모두에게 열려 있는 따뜻한 가슴으로,
"고생하며 무거운 짐진 자 다 나에게 오라." 하셨던 주님 곁에 세리도
죄인도 거리낌 없이 마음을 나눌 수 있었던 것처럼 사람을 모아들일 수
있는 넉넉한 품성을 갖추고 있을 때 참다운 기쁨을 얻습니다.

또한 자신을 다듬어갈 수 있는 차가운 이성으로 스스로의 몸가짐을 주님
보시기에 좋은 모습으로 만들어갈 때, 우리는 그에게 신뢰감을 갖게
됩니다. 이같이 주님 보여주신 길을 좇아 사는 사람들이 보여주는 힘이
바로 카리스마(Charisma)입니다. 말하지 않아도 움직이는 힘 말입니다.

가슴의 뜨거운 사랑으로 사람을 만나는 삶이 필요합니다. 자신을 겸허하
게 돌아봄으로써 절도있게 사는 삶이 우리에겐 필요합니다.
성경에서는 "주님께서 여러분의 사랑을 키워주시고 풍성하게 해 주셔서
우리가 여러분을 사랑하듯이 여러분도 서로 사랑하고 또 모든 사람을
사랑하게 되기를 빕니다." 하시며 좋아하는 사람, 내게 좋은 사람만이
아닌 누구에게나 관대한 사랑, 따뜻하고 부드러운 사랑을 일러주십니다.
그러나 "하느님 아버지 앞에 흠 없는 사람으로 나설 수 있게 되기를 빕니
다."하고도 성경에서 권고하고 계십니다.

흠없는 사람,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럽 없이 살 수는 없다 할지라도,
아니 그렇게 산다 자신있게 말할 순 없다 할지라도,
주님께서 쓰시고자 하는 그 때에 그 곳에 내 자신을 내어놓을 수 있는
다짐,
적재적소에 쓰일 수 있는 도구될 수 있음에 기꺼할 수 있는 마음이 되었
으면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절도 있는 삶이란 곧 자신을 비우는 마음으로 가난을 차지하고,
순명할 때 채워집니다. 그리고 하느님과 이웃에 대해 정결하게 내 자신
을 집중할 때 이루어집니다. 단, 여기서 절도 있는 삶이란 자신에 대한
무조건적인 인색함이나 자책으로 매이는 것이 아니라, 형식적인 율법주
의에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를 위해 내어놓을 수 있는 자유로움과
사랑으로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것을 의미합니다.

곧 목마름과 아픔을 가진 이들에게 기꺼이 다가가서 한 벗으로 어울려
어둠을 빛으로 밝히고 소금으로 녹아 썩지 않게 하려면, 그들의 마음에
눈과 귀를 모아야 합니다. 다시 말해 그들의 마음을 알아들을 귀가,
아픔을 헤아릴 눈이 늘 그들 곁에 깨어서 머물러 있어햐 하는 것이지요.
복음의 말씀처럼 "너희의 주인이 언제 올지 모르니 늘 깨어 있어라" 하시
는 말씀 따라 "깨어있음"이 절실한 것입니다.
방 정리도 되지 않은 채 손님을 맞을 수 없습니다. 채 깨끗하게 해 놓지
도 않은 방에 누군가 불쑥 찾아오면 당황스럽기 마련입니다.
항상 준비되어 있는 삶이 그래서 필요하지요.

'가랑비에 옷 젖는다'라는 속담이 전하는 의미를 우리는 잘 압니다.
마치 보이지도 않을 만큼 가녀린 빗줄기 속을 거닐면
어느샌가 옷이 흥건히 젖는 걸 경험하게 됩니다.
다른 예로 바닷가 갯벌에서 조그만 게들을 좇아 앞으로, 앞으로 나가다
가 저 멀리서 차오르는 밀물을 보지 못한 경험이 있지요.
채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밀려오는 물살을 피해 죽다 살았던 겁니다.
가랑비처럼, 조용히 밀려오는 밀물처럼 유혹은 명확하거나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많기에 말 그대로 유혹이 되어 깨어있음을 방해합
니다. 더욱이 유혹이란 그 자체가 나쁜 것임이 드러날 때 유혹이 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좋은 것이라 여겨질 때,
그것을 취함으로써 가장 좋은 것을 얻지 못하게 할 때, 소리 없이 우리를
묶어놓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하기에 경계해야 합니다.
아름다운 꽃 자체는 좋은 것이지만 그 꽃에만 시선이 머물고 있으면
걸어갈 발길이 늦추어지는 것과 같습니다.
나 자신의 삶을, '이 정도면 됐어, 이 정도 쯤이야.' 하고 주저앉도록
하는 "현실안주'가 바로 하느님께로 옮아가지 못하는 걸림돌이 됩니다.

신명기에서 "나는 너희에게 생명과 죽음을 내 놓는다." 하셨을 때 생명을
택하지 죽음을 택하는 이는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이 같이 말씀하신 것은, 죽음으로 이끄는 길임에도 불구하고
포장을 덧씌운 채 생명의 길로 가장하는 유혹들이 우리 곁에 늘 존재하
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참 생명의 길을 분별해내고 실천하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소명입니다.

이 때에 인간적인 식견과 판단이 미약하니 전심으로 성령께 기대어야
합니다.
"제가 성령께 민감하게 하여 주십시오.
가난한 이들 가운데 계시는 당신을 알아보게 하시고
저로 하여금 행동하게 하시는 당신의 부르심을 듣게 하시며
당신을 따름에 있어 주저하지 않도록 저를 채워주소서."
하신 어느 선배 수사님의 기도를 가슴 깊이 되뇌어 봅니다.

마치 전류에 민감한 차단기처럼 지나친 전류가 흐르면 자동적으로 흐름
을 끊고 적절한 전류가 흐르면 다시금 이어주는 것처럼 맺고 끊음이
분명한 나 자신을 향한 태도와 이웃에 대한 사랑에 민감할 수 있도록
청하는 기도가 너무나 필요합니다.
그러기에 "스스로 일깨우는 자 되어라. 문제가 되는 것은 문제시하라."는
창설자 신부님 말씀을 이에 비추어 성찰해보았으면 합니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 젖어 되려 이웃보다 나 자신에게 관대하지는 않았
는지? 가족들을 위하여 기꺼이 투신해야 할 삶의 여정들을 충실히
"흠 없게" 채워가고 있는 지 말입니다.
누구에게나 부드러우나 누구보다도 자신에게 강할 수 있는 외유와 내강
이 함께 어우러질 수 있는 오늘의 삶을 봉헌드렸으면 합니다.

주님,
당신을 위하여 저를 버리고
대신 당신만에 제 전부가 되게 하소서.

사랑합니다!

(puresmile님)


( http://예수.kr  ,  http://www.catholic.t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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