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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7월20일(토) 서소문밖 형장에서 8위 순교하신 날
작성자정유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3-07-20 조회수426 추천수0 반대(0) 신고

 


7월20일(토) 음 6/13
서소문밖 형장에서 8위 순교하신 날



 

 

 

김 로 사

 

로 사

 

서소문 밖

 

1839.7.20

 

김 성 임

 

마르타

 

서소문 밖

 

1839.7.20

 

이 매 임

 

데레사

 

서소문 밖

 

1839.7.20

 

김 장 금

 

안 나

 

서소문 밖

 

1839.7.20

 

이 광 렬

 

요 한

 

서소문 밖

 

1839.7.20

 

이 영 희

 

막달레나

 

서소문 밖

 

1839.7.20

 

김 루치아

 

루치아

 

서소문 밖

 

1839.7.20

 

원 귀 임

 

마리아

 

서소문 밖

 

1839.7.20

 

 



이연실 - 찔레꽃




성녀 김로사

 
관련성지 서소문 밖 순교일 1839.7.20
 

 

 

과부가 된 뒤 입교하여열심한 신앙 생활로 친정 식구들을 입교시킨 김 로사님은
1839년 1월 16일 권득인(權得仁) 님등과 함께 체포되셨다.
포청과 형조에서 신문을 받을 때
“하느님은 신인만물(神人萬物)의 큰 주인이시라 배반할 수 없습니다." 하며
자신의 뜻을 분명히 밝히고,
여러 차례의 혹형과 고문을 이겨 낸 뒤 1839년 7월 20일
예수, 마리아를 부르며
7명의 교우와 함께 서소문 밖 형장에서 56세에 참수형을 받아 순교하셨다.


+주교교회의 중앙협의회 자료에서 발췌

 

 



'만물의 주인이신 주님을 배반할 수는 없다'며
서소문 형장의 칼날 아래

목을 내미셨던 56세의 순교자
성녀 김 로사님 님이시여

님을 기억하는 오늘

천상의 기도로 저희를 이끌어 주옵소서!...아멘


 

 

 



성녀 김성임 마르타

 
관련성지 서소문 밖 순교일 1839.7.20
 

 

인천 부평(富平)에서 태어난 김성임님은


혼인에 실패한 뒤서울에서
앞을 보지 못하는 점쟁이와 재혼하셨다.

이 때부터 교리를 배우기 시작하였고,

남편이 죽은 뒤 교우들의 집을 전전하며 신앙 생활을 하였다.


천한 일을 하면서도 항상 밝은 얼굴로 생활하던 김성임님은

1839년 4월 11일 자신이 몸붙이고 있던 이매임님의 집에서

이매임, 허계임, 이정희와 영희 자매, 김 루치아님 등과 순교를 결심한 뒤

이미 체포된 남명혁님의 집을 지키던 포졸들에게 자수하셨다.


포청과 형조의 혹형과 고문을 이겨 내고 7월 20일 7명의 교우와 함께

서소문 밖 형장에서 참수형을 받아 50세의 나이로 순교하셨다



+주교교회의 중앙협의회 자료에서 발췌
 

 

.

 


혼인에 실패한 뒤 점을 치는 사람과 재혼하였으나
사별한 후 이집 저집 떠돌며 허드렛 일로 연명하였지만

항상 밝은 얼굴을 보이셨으며

50세에 순교의 면류관을 쓰신
성녀 김성임 마르타 님이시여,
 

님이 간직하셨던 맑은 영혼의 은혜를
저희도 배울 수 있도록
천상의 기도를 보내 주옵소서!....아멘

 

 

 

 

 
 


성녀 이매임 데레사

 
관련성지 서소문 밖 순교일 1839.7.20
 

 

20세에 과부가 되어

경기도 봉천(奉天)의 친정으로 돌아온 이매임님은

한 동네에 사는 여교우의 전교로 천주교에 입교한 뒤

조카 이정희와 영희를 신앙의 길로 인도하셨다.

이영희님이 동정 생활을 결심하여 서울로 피신하자

함께 따라가 살며 신앙 생활을 하다가,

1839년 4월 초 이매님임은

남명혁, 이광헌님의 어린 자녀들이

혹형을 이겨 내고 신앙을 지켰다는 이야기에 감동하여

순교를 결심하셨다.

마침내 4월 11일 자수하여

7월 20일 서소문 밖 형장에서 52세에 순교셨다.


+주교교회의 중앙협의회 자료에서 발췌

 

 

 


20세에 과부가 되어 친정에 돌아온 후

올캐와 어린 조카들을 모두 주님 곁으로 인도하고


저들과 함께 순교의 영광까지 입으신
성녀 이매임 데레사 님이시여,

 

주위를 주님 곁으로 이끄신 크신 은혜로
부족한 저희를 위하여
천상의 축복을 보내주옵소서!....아멘

 


 

 

 
 

 



성녀 김장금 안나

 
관련성지 서소문 밖 순교일 1839.7.20
 

 

 


서울에서 태중 교우로 태어난 김장금님은

어려서부터 독실한 신앙 생활을 하였고,

중년에 이르러 과부가 되자 노모와 함께 이광렬님과 친하게 지내셨다.

두 집은 사이가 좋고 화목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이러한 이유로 김장금님은 1839년 4월

이광렬, 이광헌님 일가와 함께 체포되어

혹독한 형벌과 고문을 당하였으나 끝까지 신앙을 지켰고,

마침내 7월 20일 서소문 밖 형장에서 51세의 나이로 순교하셨다.


+주교교회의 중앙협의회 자료에서 발췌

 

 

 


어려서부터 독실한 신앙 생활을 익히고
순교자 이광렬 요한님 댁과 이웃으로서 오손도손 지내셨던 님


51세에 저들과 함께 순교의 영광을 입으신
성녀 김잗금 안나 님이시여,


저희가 소공동체의 축복을 받을 수 있도록
천상의 기도로 저희를 이끌어 주옵소서!......아멘


 

 


 



성 이광렬 요한

 
관련성지 서소문 밖 순교일 1839.7.20
 

 

 

‘경삼’으로도 불렸던 이광렬님은

명문 양반인 광주 이씨의 후예로 태어났다.

22세쯤 형 이광헌님과 함께 입교한 뒤

헌신적으로 교회 일에 참여하였으며,

정하상(丁夏祥), 조신철(趙信喆), 유진길(劉進吉)님 등과 함께

북경을 왕래하며

나 베드로(모방) 신부, 정 야고보(샤스탕) 신부 등을 맞아들였다.

북경에서 세례성사를 받고 귀국한 뒤로는 육식을 끊고,

극기와 인내로 동정을 지키며 생활하셨다.

1839년 4월 7일 체포되어 혹형과 고문을 받았으나 모두 이겨 내고,

7월 20일 서소문 밖 형장에서 45세의 나이로 순교하셨다.



+주교교회의 중앙협의회 자료에서 발췌


 

 

 


순교자 이광헌 아우구스티노님의 돈생으로서
정하상,조신철,유진길 님등과 함께 북경을 왕래하며
사제 모방 님과, 샤스땅 님을 영입해 왔으며

북경에서 세레를 받고 돌아온 후로는 육식을 끊고 동정을 지키는 엄격함 가운데
45세에 순교함으로서
형, 형수, 어린 조카까지 모두 순교한 명문 성가정을 이루신
순교자 성 이광렬 요한 님이시여
 

무더위 처참한 옥중에서 수난을 겪던 님들을 기억하며
오늘 하루 저희의 편안함을 생각해 봅니다.

장렬하게 죽어가신 성인이시여
지복 직관의 천상에서
저회를 위하여 천상의 기도를 보내주옵소서!....아멘


 

 

 

 

 

 



성녀 이영희 막달레나

 
관련성지 서소문 밖 순교일 1839.7.20
 

 

 

 

동정 순교자 이영희님은 경기도 봉천(奉天)에서 태어났다.

과부가 되어 친정에 돌아온 고모 이매임님의 권면으로

어머니 허계임, 언니 이정희님과 함께 어린 나이에 입교하셨다.

성장하면서 동정을 지킬 것을 결심하여 혼기에 이르자

혼담을 피해 호랑이에게 물려간 것처럼 꾸미고 상경하여,

이매임님과 함께 살며 신앙 생활을 하셨다.

1839년 김성임, 김 루치아, 어머니, 언니와 함께 자수한 뒤,

포청과 형조에서 일곱 번 형문(刑問)을 받고 사형을 선고받아

7월 20일 서소문 밖 형장에서 31세의 나이로 순교하셨다.
 


+주교교회의 중앙협의회 자료에서 발췌

 

 

 


고모 이매임 데레사님의 인도를 받아
31세의 동정녀로서
고모와 어머니, 언니, 15세의 어린 질녀와 함께 순교하신

성녀 이영희 막달레나 님이시여
 

님들을 기억하는 오늘
지복직관의 천상 기도로 저희를 이끌어 주옵소서!...아멘


 


 



성녀 김 루치아

 
관련성지 서소문 밖 순교일 1839.7.20
 

 

 

 

동정 순교자 김 루치아님은 강원도 강촌(江村)에서 태어나

아홉 살 때 어머니에게 교리를 배워 입교하셨다.

14세 때 동정을 지킬 것을 결심하였고,

부모를 여읜 뒤로는 자신을 받아 주는 교우들의 집에서

잔심부름을 하며 살았다.

1839년 기해박해 때 포졸들에게 자수한 뒤,

포청과 형조에서 천진한 태도와 한결 같은 신앙으로

모든 형벌과 고문과 유혹을 참아 냈고,

교리에 대한 심문 중에도

기막힌 비유와 논리정연한 대답으로 형관을 감동시켰다.

7월 20일 서소문 밖 형장에서 참수형을 받아 22세의 나이로 순교하셨다.
 


+주교교회의 중앙협의회 자료에서 발췌


 

 

.


강원도 강촌에서 태어나

교우들 집에서의 잔심부름으로 연명하다가

22의 젊음을 주님 성혈 제단에 깨끗한 꽃으로 봉헌하신

순교 성녀 김루치아 님이시여


저희도 주님 사랑을 고이 간직할 수 있도록
천상의 축복을 보내주옵소서!..아멘

 

 

 

 

 

 


성녀 원귀임 마리아

 
관련성지 서소문 밖 순교일 1839.7.20
 

 



동정 순교자 원귀임님은 경기도 고양군 용머리에서 태어나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여기저기를 떠돌며 살다가

아홉 살 때 서울의 친척집에서 삯바느질로 생계를 꾸려 나갔다.

이 때 동정으로 살아갈 것을 결심하고

언제나 모범적인 신앙 생활을 하셨다.

1839년 3월 29일 원귀임님이 있던 친척집이 포졸들의 습격을 받게 되자

재빨리 피신하였으나

길거리에서 원귀임을 아는 사람에게 들켜 체포되었다.

체포될 때 정신을 잃을 정도로 당황했던 원귀임님은

정신을 가다듬고포청으로 끌려가셨다.

포청에서 배교를 강요하며 고문하는 형리에게

“내 영혼을 이미 하느님께 맡긴 지 오래니 더 이상 묻지 마십시오.


오직 죽을 뿐입니다." 하며 배교를 거부하니
형조로 이송되었다.

형조에서도 가혹한 형벌과 고문을 받았으나 원귀임님은 굴하지 않았고

드디어 7월 20일 일곱 명의 교우와 함께 서소문 밖 형장에서


참수형을 받고 22세에 순교하셨다.

+주교교회의 중앙협의회 자료에서 발췌

 

 

 


아홉살에 고아가 되어 친척 집을 돌아가며 연명하는 가운데
동정녀의 꿈을 잃지 않아

8위가 한 자리에서 참수당했던 서소문 형장에서
22살의 젊음을 바친
순교 성녀 원귀임 마리아 님이시여

님들을 기억하는 오늘
현세의 온갖 마귀들을 이겨낼 수 있도록
저희들 위하여 천상의 기도를 보내주옵소서!...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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