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생들은 학교에서 ‘기숙사’ 생활을 합니다. 제가 신학생 때와 비슷한 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6시 30분 기상, 7시 아침기도 및 미사, 8시 식사, 9시 오전 수업, 12시 30분 점심, 오후 2시 30분 오후 수업, 오후 5시 30분 양심성찰, 6시 저녁, 7시 15분 묵주기도 및 저녁기도, 8시 면학, 10시 취침입니다. 물론 시험 때는 새벽까지 공부를 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다음 날 아침기도는 꼭해야 합니다.  

일반 대학생들도 방학을 기다리지만 신학생들 또한 방학을 기다립니다. 파수꾼이 새벽을 기다리는 것처럼 방학을 기다립니다. 방학은 부족한 공부를 더 할 수 있는 시간이 되기도 합니다. 친구들과 여행을 갈 수 있는 시간이 되기도 합니다. 학교에서 배운 것들을 삶의 현장에서 실천할 수 있는 시간이 되기도 합니다. 보통 대학생들은 자신들이 수업시간을 선택합니다. 방학 기간의 시간도 본인들이 계획합니다. 어떤 학생들은 보람 있는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어떤 학생들은 소중한 방학을 헛되이 보내기도 합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본인이 결정하는 것입니다.  

친절한 학교는 신학생들의 방학도 챙겨주고 있습니다. 방학 중에 꼭해야 하는 프로그램들이 있습니다. 부제, 사제 서품을 앞둔 분들은 피정을 해야 합니다. 국제화 시대에 맞추어서 영어연수를 하기도 합니다. 사회사목, 청소년 사목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서 연수를 하기도 합니다. 7개 신학교의 학생들이 함께 모여서 친목을 도모하는 프로그램도 있습니다. 이런 프로그램들이 필요하기 때문에 학생들을 위해서 장소를 선정하고, 강사를 섭외하고, 비용을 마련합니다. 학생들을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을 느낄 수 있는 프로그램들입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움이 있습니다. 학교에서도 필수과목과 선택과목이 있듯이 학생들에게 좀 더 많은 자율권을 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배고픈 사람에게 물고기를 잡아다 주는 것도 좋지만 더 좋은 것은 물고기를 잡을 수 있는 그물이나, 낚싯대를 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배고플 때면 스스로 강가에 나가서 물고기를 잡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각 학년 별로 모임을 갖도록 하고, 방학 중에 하고 싶은 프로그램을 기획하게 하는 것입니다. 본인들이 원하는 것을, 본인들의 계획으로 실행한다면 훨씬 즐겁게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해외연수와 같은 것들은 미리 계획을 세우고, 무엇을 할 것인지를 연구하도록 하는 것도 좋은 방편입니다. 그 중에서 우수한 것들은 비용을 제공해 주는 것도 좋습니다. 비용에 대한 부담 때문에 해외 연수 계획을 포기하는 학생들에게는 기회가 생기는 것입니다. 무작정 가는 것이 아니라, 치밀한 계획을 세워서 가기 때문에 더 많은 결실을 맺을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선택하셨습니다. 함께 다니면서 참된 삶의 길을 가르쳐주셨습니다. 행복이 무엇인지, 참된 용서는 무엇인지, 영원한 생명은 무엇인지, 하느님나라는 무엇인지, 가장 큰 계명은 무엇인지 알려 주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을 파견하십니다. 제자들이 스스로 배울 수 있도록, 스스로 느낄 수 있도록 배려해 주셨습니다. 대부분의 제자들은 스스로의 길을 찾아갔습니다. 순교의 영광을 얻었습니다. 아름다운 초대교회를 만들어갔습니다.  

학교 차원에서 학생들이 방학 중에 할 수 있는 좋은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오늘 독서와 복음에서 들은 것처럼 ‘관계와 사랑’입니다. 배려와 인내, 양보와 타협을 할 줄 아는 인간관계가 없으면, 남에게 바라는 것처럼 남에게 해주려고 하는 사랑이 없으면 아무리 좋은 제도와 대책이 있어도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 신앙인들이 가야할 길을 명확하게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너희의 아버지께서 자비로운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너희가 되질하는 만큼 그 되로 너희도 받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