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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401) 몇 년에 한 번씩 어머니 꿈을 꾼다 / 장영일 신부님
작성자유정자 쪽지 캡슐 작성일2007-11-15 조회수970 추천수17 반대(0) 신고
 
 
 
 
11월 둘째주 연중 제32주일
"그분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사실 하느님께는 모든 사람이 살아있는 것이다." (루카 20,27-38)
 
 
 
1988년 성주간 시기,
보좌신부 3년째인 나는 몸이 약하신 주임신부님 덕분에 늘 24시간 대기해야 했다.
그래도 주임신부님은 잘못하거나 맘에 들지 않으면 자주 꾸중을 하셨다.
 
판공성사 때는 "본당에 신부가 둘이나 있는데 손님신부를 부를 필요가 있느냐!" 고 하셔서 바쁘기 한량없었다.
 
고해성사 주실때 주임신부님은 자주 큰소리를 내셔서 고해소에는 사정을 모르는 교우 몇몇만 성사를 보았다.
대신 나는 저녁을 먹다가도 늘 불려나가 밤 11시 넘게까지 성사 주는 일의 연속이었다.
 
사제관으로 주임신부님이 들어가시면 그제야 성당마당에서 기다리던 교우들이 고해소 앞에 줄을 뱀처럼 꾸불꾸불하게 섰다.
 
 
성주간 월요일에는 어머니가 병원에 입원하셨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성사가 끝나고 11시가 넘어 겨우 병문안을 갔고 바빠서 사흘 후에야 저녁 늦게 병원으로 전화를 드리니 이미 다른 병원으로 가셨다고 했다.
 
성 금요일 새벽 퇴원하신 어머니는 집에서 편히 하느님께로 가셨지만
성삼일의 전례와 판공성사로 나는 도저히 본당을 비울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비록 몸은 빈소가 아닌 고해소에 있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 깊은 기도와 묵상의 시간이었다.
 
 
나는 형제 중에 누구보다 별났다.
병약하고 고집 세고 막무가내였던지라 가장 어머니를 힘들게 했다.
내가 신학교에 간다고 했을 때도 어머니는 늦잠 많은 내가 어떻게 신학교 생활을 견뎌낼지 큰 걱정이셨다.
 
보좌신부인지라 늘 돈은 부족했고 주일학교 운영비는 내가 받은 13만 원이 전부였으니 어머니께 밥 한 끼 사드리지 못했다.
부활절 미사를 마친 오후에야 뒤늦게 어머니 빈소에 앉아있는 내가 어머니께 해드릴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때 어머니를 위해 기도를 드릴 수 있는 길을 열어놓으신 하느님께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르며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절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 비로소 몸으로 알아들었다.
 
왜 부활절이 있어야 하는지 알지못함은  죽음의 허무 앞에 서보지 못한 까닭이라고 하면 너무 어설픈 표현이 될까?
 
소나기가 쏟아졌다가 맑게 개인 하늘 아래 사월의 꽃들이 피어오르는 언덕을 올라 어머니는 묻혔다. 그러나 어머니의 죽음은 내게 부활의 의미를 깨닫게 했다.
 
 
몇 년에 한 번씩 어머니 꿈을 꾼다.
그때마다 늘 울다가 잠이 깨는데 아직도 씻어야 할 불효의 때가 남아있기 때문이리라.
 
부활을 선물로 주신 하느님!
그 진리를 알게 해주시니 감사드립니다.
 
 
                                       글 : 장영일(대구 효목성당  주임신부)
 
                   (원제/原題 : 사월의 꽃들이 피어오르는 언덕에)
 
                                      ㅡ가톨릭 다이제스트에서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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