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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1월 15일 야곱의 우물- 루카 17, 20-25 묵상/ 보일 듯이 보이지 않는 하느님 나라
작성자권수현 쪽지 캡슐 작성일2007-11-15 조회수657 추천수7 반대(0) 신고

보일 듯이 보이지 않는 하느님 나라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들에게서 하느님의 나라가 언제 오느냐는 질문을 받으시고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하느님의 나라는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 또 ‘보라, 여기에 있다.’, 또는 ‘저기에 있다.’ 하고 사람들이 말하지도 않을 것이다. 보라,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셨다. “너희가 사람의 아들의 날을 하루라도 보려고 갈망할 때가 오겠지만 보지 못할 것이다. 사람들이 너희에게 ‘보라, 저기에 계시다.’, 또는 ‘보라, 여기에 계시다.’ 할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나서지도 말고 따라가지도 마라.
 
번개가 치면 하늘 이쪽 끝에서 하늘 저쪽 끝까지 비추는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자기의 날에 그러할 것이다. 그러나 그는 먼저 많은 고난을 겪고 이 세대에게 배척을 받아야 한다.”
(루카 17,20-­25)
 
이인옥(수원교구 기산 천주교회)
◆“하느님 나라는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 그렇다고 이 말씀이 ‘하느님 나라는 눈으로는 절대 볼 수 없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이 세상에서도 하느님 나라를 엿볼 수 있다.
 
아기의 숟가락에 반찬을 얹어주는 어머니의 다정한 눈길에서, 정답게 인사하는 이웃의 웃음에서, 돌 틈에 핀 풀 한 포기에서, 차선을 양보하는 차량에서, 순박한 농부의 정직한 땀방울에서, 덤을 얹어주는 상인의 넉넉한 손끝에서, 환경미화원으로 위장 취업한 신부님의 미담에서, 사랑하는 이들의 부드러운 입맞춤에서, 두 손을 모은 고사리 같은 기도손에서`….
 
하느님 나라는 이처럼 일상 안에서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다. 하느님 나라가 이미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도래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느님 나라를 이 세상에서 전부 볼 수 있거나 지속적으로 느낄 수는 없다. 아직 하느님 나라가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하느님 나라는 보일 듯이 보이지 않는다!
 
마르틴 부버는 온 존재를 기울여 내면의 자기에게 다가갈 때, 또 심혈을 다하여 만나는 모든 관계 안에서 ‘영원한 분의 옷자락’을 볼 수 있다고 했다. 누구도 그분을 직접 볼 수는 없기에 그분의 ‘옷자락’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정성을 다하여 진솔하게 만나는 모든 관계 안에서 하느님 또는 하느님 나라를 체험할 수 있다. 부버는 영원한 분의 자취를 보게 되는 그러한 찰나를 일컬어 ‘영원이 묻어나는 순간’이라 했다.
 
 
한편 그렇게 체험된 하느님 나라는 번개처럼 모습을 보였다가 사라지고 마는데, 부버에 의하면 그것은 인간 존재의 한계 때문이라고 한다. 현재 안에 영원히 머물 수 없고, 어떤 순간도 영원히 지속시킬 수 없는 인간의 운명, 그것을 일컬어 그는 ‘숭고한 우수’라 했다.
 
그렇다면 우수가 서린 인간의 운명은 도저히 바꿀 수 없는 것일까? 아니다. 바꾸어 주실 분이 있다! 그분이 바로 사람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영원히 그분과 함께 머물 수 있는 복된 날이 바로 ‘종말’이다. 하느님 나라가 통째로 도래한다는 종말, 하느님 나라가 완성된다는 종말, 그 종말을 가져다줄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그래서 그날이 희망의 날, 기다려야 할 날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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