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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세월을 느끼게 하는 가족 목욕행사
작성자지요하 쪽지 캡슐 작성일2007-03-21 조회수426 추천수2 반대(0) 신고

 

                            세월을 느끼게 하는 가족 목욕행사



<1>

처음 자동차를 갖게 된 때(1989년이던가…)부터 가족과 함께 충남 예산군에 있는 덕산온천 목욕을 즐기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그 세월도 벌써 20년 가까이 된 것 같다.

그 사이에 우선 길이 많이 변했다. 처음에는 홍성읍 코앞까지 갔다가 수덕사 가는 길로 돌아서 덕산온천엘 갔다. 그러다가 90년대 중반부터는 해미∼덕산 간 한티 고갯길이 포장되어서 그 길을 이용했는데, 지난해 새로 4차선 도로가 개통되어 덕산온천이 훨씬 가까워졌다.

태안에서 덕산온천까지는 약 90리. 처음에는 1시간 가까이 걸렸는데, 중간에 45분 정도로 단축되더니, 지금은 40분이면 충분하다.

내가 차를 갖게 된 때부터 덕산온천 목욕에 맛을 들인 것은, 우선 어머니를 생각한 탓이었다. 온천 목욕이 아무래도 노인 건강에 좋으리라는 생각이었다. 어머니부터 온천 목욕을 무척 좋아하시는 탓이기도 했다.

가족 모두를 생각하는 마음도 있었다. 목욕도 좋지만, 덕산에 가고 오는 시간이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 목욕을 하러 가고 오는 시간은 그야말로 가족 모두가 함께 하는 행복한 시간이었다.

덕산온천 목욕은 한 달에 두세 번 정도 가는데, 대개는 새벽에 가곤 했다. 새벽 4시나 5시쯤에 아이들을 깨워 덕산을 갈 때 아이들은 승합차의 중간 좌석을 하나씩 차지하고 누워 잠을 자면서 갔다. 아이들의 새벽 단잠을 방해하는 것이 미안하긴 했지만, 아이들은 목욕 가는 날 아침에는 집에서도 잘 일어났고, 승합차 안에서도 쉽게 일어나곤 했다.

목욕을 마치고 돌아올 때는 승합차 안에서 가족 모두 함께 '아침기도'와 '삼종기도'를 하고, '수호천사들께 드리는 기도'와 '수호성인들께 드리는 기도'를 했다. 그리고 '해미성지'를 가까이 보며 지날 때는 무명순교자들을 생각하며 다 함께 성호를 긋고….

목욕을 하고 나와서 개운하고도 상쾌한 몸과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가족 모두 기도를 하며 하느님께 감사하는 것은 '행복'의 다름 이름이고, 행복 그 자체일 터였다.

언젠가, 또 한 번 그 행복을 누리던 어느 날 아침 나는 운전석 옆자리의 아내에게 이런 말을 했다.

"이 행복한 시간도 어느덧 다 지나고, 언젠가는 우리 둘만 남는 시간이 올 거야. 우리 둘도 하나만 남는 시간이 올 테고…. 그때도 우리가 온천 목욕을 즐길 수 있을까? 혼자서 하는 목욕이 얼마나 쓸쓸할까? 혼자 목욕을 하면서, 오늘의 이 오붓함과 행복을 얼마나 그리워할까?"

그러자 아내는 작게 한숨을 삼키며 이런 말을 했다.

"그립긴 하겠지만, 그때는 그때대로 다른 위안이 있겠지요."

나는 아내의 그때 그 말을 명확하게 기억한다. 아내의 그 말을 들으면서, 뭔가 야릇한 위안을 지레 얻는 듯하면서도 괜히 눈물이 날 것 같았던 미묘한 심정도….

<2>

엄마 뱃속에서 나온 아들 녀석의 고추를 처음 들여다볼 때 아내가 했던 말도 기억한다.

"당신 좋겄수. 장차 목욕 동무할 녀석이 생겼으니…."

그 말을 듣고 웃으며, "허허, 어느 세월에 이 녀석이 자라서 아빠 목욕 동무를 헌다나?" 했는데, 녀석이 아빠 목욕 동무를 하는 세월이 금세 왔다. 작고 여린 손으로 아빠의 등을 용을 쓰며 간신히 밀어주는 시늉을 하는가 했더니, 또 어느새 크고 힘찬 손으로 아빠 등을 박력 있게 밀어주는 세월이 왔다.

그러고도 시간은 쉬지 않고 겅중겅중 흘러서 아이들 모두 부모 둥지를 떠나 사는 날이 많게 되었다. 딸아이는 대학생이 되어 주로 서울에서 생활하고, 고등학생 아들 녀석은 주로 논산의 기숙사에서 생활한다. 완전히 부모 둥지를 떠난 것은 아니더라도 부모 둥지 밖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훨씬 많은 것이다.

나는 아이들이 집에 올 때는, 집에 온 다음날 꼭, 대개는 새벽에 덕산 온천목욕을 간다. 가족 온천목욕 행사에서 오랜 세월 누려온 신선한 행복감을, 그 행복한 시간을 좀 더 연장하고 싶은 마음이다. 그리고 아직은 그 시간을 연장할 수 있음에 대해서도 하느님께 감사한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나 혼자 덕산온천에 가서 목욕을 한 적은 거의 없다. 1999년 여름 종합 검진을 받을 일이 있어 천안 순천향대 병원으로 입원을 하러 가면서 덕산온천을 들른 기억밖에는 없다.

새벽이 아닌 낮에 가족목욕 행사를 한 적들은 꽤 많다. 그건 동생 가족들과 함께 하기 위해서였다. 제수씨 생전에 동생 가족과 함께 새벽에 덕산을 간 기억은 전혀 없다. 제수씨가 새벽에 아이들 깨우는 일을 자신 없어했고, 또 아침 일찍 출근하는 남편 조반을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하여간 동생 가족들을 위해 낮에 덕산에 간 적들은 꽤 많은데, 형제 가족이 함께 광천 오서산과 청양 칠갑산을 갔다 온 날, 두 번 모두 동생이 끝내 목욕을 거부한 것은 지금도 이해할 수 없는 일로 남아 있다.

동생은 여러 사람 앞에서 벌거숭이가 되는 것 자체를 혐오하는 것 같은데, 동생이 나이 오십을 바라보는 세월 속에서도 그런 독특한 성격을 고수한다는 것은 내게 미묘한 안타까움을 준다.

동생의 그런 독특한 성격 때문에 동생 가족을 가끔이나마 온천 목욕탕에 데리고 가는 일은 내 소임이 되었고, 조카 녀석의 몸을 씻어주는 일도 큰아버지 소임이 되었다. 나는 조카 녀석의 몸을 씻어주면서, 덕분에 큰아버지와 조카 녀석 사이가 더욱 밀착될 수 있는 계기임을 기꺼워하면서도, 어린 시절 아버지와의 목욕탕 추억을 거의 갖지 못하게 된 녀석을 안쓰러운 눈으로 보지 않을 수 없었다.

<3>

2년 전 제수씨가 세상을 뜬 후로 조카 녀석들이 큰집에서 생활하게 되어, 내가 조카 녀석들을 데리고 덕산온천을 가는 기회는 더욱 많아졌다. 내 아이들이 부모 둥지를 떠나 살게 되면서 그 자리를 조카 녀석들이 차지하게 된 것을 다행스럽게 여기기도 한다.

아무튼 새벽에 덕산온천을 가는 우리 가족의 목욕 행사는 그 모양새가 좀 더 유지될 수 있게 되었다. 다시 말해 우리 부부와 어머니, 이렇게 어른들만 목욕을 가고, 그리고 나 혼자 목욕을 하는 그 외롭고 쓸쓸한 모습은 좀 더 유보가 되었다는 얘기다.

물론 내 아이들이 집에 오면 좀 더 풍성한 가족 목욕행사 풍경을 연출할 수 있지만, 아이들은 이따금 집에 온다. 방학 때도 아닌 평상시에 아이들 오기를 기다려 목욕을 하기로 한다면 동안이 너무 멀다. 사이사이에 우리끼리 덕산을 가지 않을 수 없다.

이번 3월에는 한 달 내내 두 녀석 모두 집에 올 수 없다고 했다. 별 수 없이 우리끼리 목욕을 해야 할 상황이어서, 지난 18일 새벽에 덕산을 갈 계획을 세웠다. 그런데 중2 조카 녀석이 도리질을 했다(녀석은 어른의 묻는 말에 고갯짓으로 대답을 하곤 해서 꾸중을 듣기도 한다).

녀석은 주말에는 꼭꼭 아빠 집에 가서 잔다. 혼자 된 동생을 너무 외롭게 하지 않으려는 생각에 내가 안을 내어 조카 녀석들을 주말에는 아빠 집에 보내는 것이지만, 녀석은 아빠에게 위안을 주는 쪽보다는 텔레비전 영화와 인터넷 게임이 우선인 것 같다. 주말에 아빠 집에 가면 간섭하는 사람도 없겠다, 아빠는 일찍 곯아떨어졌다가 일요일에도 아침 일찍 출근을 하겠다, 마음 놓고 거의 밤을 새우며 인터넷 게임을 하는 모양이다.

긴긴 시간 인터넷 게임을 하면 새벽에 일어나기가 거의 불가능할 것임을 예상한 나머지, 아이가 일주일 만에 마음껏 인터넷 게임을 즐기는 것을 막는 것도 어려운 일이어서, "그럼, 목욕을 새벽에 가지 말고 오후 낮에 가자"고 했다. 완전히 녀석을 데리고 가기 위한 방책이었다.

하지만 녀석은 도리질을 했다. 이유를 물으니, 친구들과 농구를 하기로 약속했다고 했다. 나는 녀석을 데리고 가는 것을 포기하면서 "나 혼자 외롭게 목욕을 하는 쓸쓸한 세월을 좀 더 미루려 했더니, 이제는 어쩔 수 없이 혼자 목욕을 해야겠구먼"하고 씁쓸한 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동안 조카 녀석이 아빠 집에서 자고 새벽에 일어나 함께 목욕을 간 적은 여러 번이다. 대개는 사촌형과 함께 간 것이지만, 사촌형이 집에 없을 때 목욕을 간 적도 두어 번 된다. 나는 조카 녀석의 등을 닦아주고, 녀석으로 하여금 큰 아빠 등을 밀게 하면서 흐뭇한 마음을 가졌다. 큰 아빠와 조카 녀석 사이가 좀 더 가까워지고, 녀석이 어린 시절 큰 아빠와의 목욕 추억도 실팍하게 가지게 되리라는 것을 생각하니 절로 기꺼워지는 마음이었다. 앞으로는 녀석을 새벽 가족 목욕행사에 데리고 가는 일이 별로 어렵지 않을 것 같은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녀석은 끝내 도리질을 했고, 우리 가족은 일요일 오후에 조카 녀석을 제외한 네 식구만 덕산을 갔다. 일요일 낮이라 목욕탕에 사람들이 많은 가운데서도 나는 묘한 외로움을 느끼며 정말 혼자 목욕을 했다. 나 혼자 목욕을 하기는 실로 1999년 여름 이후 처음이었다.

가족과의 목욕 행사를 끝내 거부한 조카 녀석의 속내가 내내 궁금했다. 녀석 역시 매우 특이한 성격을 가졌다. 녀석은 매일같이 아침저녁으로 샤워를 한다. 저녁에 샤워를 했는데도 아침에 일어나면 또 샤워를 한다. 수건도 한번 사용한 것은 다시 쓰지 않고 꼭꼭 새 수건을 쓴다. 그런 녀석이니 온천 목욕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닐 터였다.

녀석이 목욕을 거부한 것은 인터넷 게임과 친구들과의 농구 약속 때문만이 아닐 거야. 이미 두어 번 경험을 한 일이더라도 큰아버지와 목욕을 하는 것에서 묘한 부담감을 가질지도 몰라. 또 어쩌면 아빠와의 목욕 추억을 만들지 못하는 것에서 알게 모르게 가지는 어떤 결핍증 같은 것이 녀석의 내면에서 미묘하게 작용을 하는 것인지도 몰라.

그런 생각을 하며 목욕을 하자니 긴 타월로 내 등을 닦는 일이 좀 더 힘들어지는 것 같았다. 이제는 나 혼자 목욕을 하는 이 쓸쓸한 세월을 인정해야 할 것 같아. 모양새로 그 세월을 연장한다고 해서 진정으로 그 세월이 유보되는 것도 아니니…. 그런 생각도 출렁거려서 내 팔뚝을 더욱 아프게 하는 것 같았다.  


  덧붙이는 글

1990년대 중반 어느 지인(知人)으로부터 '덕산온천관광호텔' VIP 카드를 한 장 선물 받았습니다. 그 카드 덕분에 덕산온천관광호텔 목욕탕에 갈 적마다 1인 1천원씩의 할인을 받습니다. 이 지면을 빌어 그 지인께 고마운 뜻을 표합니다.


  2007-03-21 13:16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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