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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1월 14일 연중 제32주간 수요일 - 양승국 신부님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7-11-14 조회수932 추천수14 반대(0) 신고
 

11월 14일 연중 제32주간 수요일 - 루카 17장 11-19절

 


“예수님, 스승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회색 빛 나날들>


    돌아보니 제 "신앙생활"은 다름 아닌 아버지의 집을 향해 걸어가는 여행길이었습니다.


   산행을 하다보면 평탄하고 호젓한 오솔길을 걸을 때가 있는가 하면 가파른 오르막이나 아슬아슬한 절벽 사이를 기어갈 때도 있지요.


   지난 제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때로 희망과 설렘으로만 가득 찼던 맑은 날이 있었는가 하면, 답답함과 좌절과 쓰라림뿐이었던 회색빛깔의 나날들도 많았습니다. 아버지와 이웃들 앞에 떳떳하고 의기양양하게 살아가던 때가 있었는가 하면 쥐구멍으로 들어가고만 싶었던 날들도 있었습니다. 절실하고 감미로운 하느님 체험으로 가슴 뛰던 때가 있었는가 하면, "과연 하느님이 계시기는 하는가? 이게 도대체 뭔가?"하며 막막해하던 시절도 많았습니다.


   제 신앙여정 안에서 참으로 피하고 싶었던 불행했던 순간들을 떠올려봅니다. 물론 그 순간은 현실적으로 너무도 고통스러웠던 순간들이었습니다. 제 삶 전체가 뒤흔들렸던 위기의 순간들이었지요. 어떤 체험들은 너무도 고통스러웠기에 떠올리기조차 싫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조금씩 세월이 흐르면서 이런 생각이 제 머릿속에 자리를 잡게 되었습니다.


   좌절의 순간이야말로 은총의 순간이었습니다. 좌절의 순간이야말로 제 삶 안에 큰 쉼표를 찍게 된 보물과도 같은 순간이었습니다.


   불행했다고 여겨지던 그 순간이 비록 육체적으로 괴로웠지만 제 자신의 내면을 솔직하게 바라다 볼 수 있었던 제 인생의 가장 소중한 순간이었습니다.


   병고의 십자가를 지고 가던 순간이야말로 진한 하느님의 은총을 온몸으로 체험할 수 있었던 희망과 구원의 순간이었습니다.


   오늘 복음은 한평생 나병으로 시달리던 사람들을 말끔히 치유하시는 예수님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예수님은 언제나 인간의 병고를 모른척하지 않는 분이십니다. 인간의 고통 앞에 함께 아파하며 함께 고통당하시며 함께 눈물 흘리시는 연민의 예수님이십니다.


   우리가 고통당할 때, 거듭되는 실패 속에 헤맬 때도 우리가 결코 삶을 포기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한 가지 있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우리를 외면한다할지라도 예수님 그분만은 우리를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떠나간다 할지라도 그분만은 끝까지 우리를 떠나가지 않으십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은 결코 고통을 외면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고통 안에 계심을 굳게 믿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은 노화마저 거부하지 않습니다. 봄이 오면 고목의 등걸에서 연녹색 푸른 싹이 돋아날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은 죽음마저도 내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음마저 물리치셨음을 굳게 믿기 때문입니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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