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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예수님 흉내내기<4회>남이야 죽건 말건 - 박용식 신부님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7-11-21 조회수734 추천수11 반대(0) 신고
 

남이야 죽건 말건

             

    미국에 있을 때의 일이다. 병원에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데 예쁜 여자 어린이가 엄마의 손을 잡고 들어와 내 옆에 앉았다. 나는 말을 걸었다. "몇 살이니?" "어디가 아파서 왔니?" 다섯 살이고 감기에 걸려 왔단다. 그러더니 입을 손에 대고 "쉿, 떠들지 마세요. 저기 책을 읽는 분이 계시잖아요. 방해하면 안 돼요? 라고 나를 타이는 것이다. 미국 아이한테 뒤통수를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나는 결코 책을 읽는 사람에게 방해가 될 만큼 큰 소리로 말하지도 않았고 많은 말을 한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나의 행동이 어처구니 없는 상황에서 '미안하다'는 말로 사과를 했지만 웬지 기분이 좋지 않았다.


   또 한 번은 커다란 백화점에서 엄마와 같이 나온 유치원에 다니는 정도의남자 어린이를 보았다. 그 어린이는 장난감 가게에 진열된 로보트 같은 장난감을 보더니 엄마에게 사 달라는 것이었다. 그의 엄마는 "안 돼, 집에 로보트 있잖아" 하며 한마디로 거절했다. 그 아이는 금방 눈물을 글썽이며 백화점 구석으로 달려갔다. 나는 호기심으로 그 아이를 따라가 보았다. 그 아이는 벽 구석에 머리를 박고는 손으로 입을 막고 소리를 죽여 가며 울었다. 눈물이 뚝뚝 흘렀다. 그러나 남에게 표시를 내지 않으려는 듯 흐느끼기만 했지 소리를 내서 울지는 않았다.


   공공장소에서 소리를 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철저히 교육받은 것 같다. 큰 소리를 내서 남에게 피해를 주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는 듯했다. 나는 저절로 우리나라 얘들과 비교하게 되었다. 우리나라 얘들 같으면 소리를 지르고 엄마를 때리고 떼를 쓰며 큰 소리로 울어댔을 것이다.


   병원에서 만난 어린이나 백화점에서 만난 어린이 모두 우리나라 애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우리나라 애들은 공공장소이건 어디건 고삐 풀린 망아지 같다. 식당이나 공공장소에서 큰 소리로 떠들고 온갖 장난을 치고 소란을 피워도 그 엄마들은 가만히 내버려 둔다. 애들 기죽이지 않기 위해서란다. 잘못된 기를 살려서는 안 되는데, 잘못된 것은 없애야 하는데···.


   어떤 성당에 어린이 미사는 미사인지 도떼기시장인지 구분할 수 없을 만큼 시끄럽다. 엄마 따라 어른 미사에 나온 애들도 시끄럽고 소란하기는 마찬가지다. 교육만 시킨다면 충분히 조용히 할 수 있는 나이의 애들도 도무지 소란하긴 마찬가지다. 미국에서 어린이 미사 시간에 참석해 보았다. 어른들 못지않게 조용하고 엄숙했다. 엄마 따라 어른 미사에 나온 아이들도 조용하다. 조용히 해야 하는 곳에서는 조용히 할 수 있도록 교육된 것이다.


   나는 미국에서 5년 가까이 살았지만 미국을 싫어한다. 미국의 오만불손한 태도와 약소국에 대한 군사적· 경제적 횡포를 부리는 정책과 정치를 몹시 싫어한다. 그러나 국민들의 사고방식이나 어린이들의 교육 방법은 좋아한다. 우리나라 사람이 본받을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정신을 본받아야 한다. 우리도 아이들에게 어려서부터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아야 된다는 정신을 심어주어야 한다. 세네 살만 되어도 알 것은 안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알려주면 그 나이에 맞게 이해하고 실천할 수 있다.


   우리나라 애들이 미국 애들보다 열등한가? 그 애들보다 성장 발육이 느린가? 결코 아니다. 오히려 우수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공장소에서 제멋대로 행동하는 것은 교육 때문이다. 당치도 않은 기를 살려준답시고 이기주의를 심어주었기 때문이다. 남이야 피해를 입건 말건 자기만 좋으면 된다는 식의 극히 이기적인 정신을 어른들이 심어주었기 때문이다.


   자기만 좋으면 된다는 식의 이기주의는 바로 어른들이 악 표양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어른들이 그렇게 행동하는 것을 아이들이 보고 배운 것이다. 자동차 주차하는 것을 보면 이기주의가 얼마나 심각한지 잘 알 수 있다. 10미터 20미터만 가면 주차할 공간이 있는데도 그 몇 발자국을 걸어가기 싫어서 남의 집 대문 앞이 나 길목에 주차함으로써 많은 사람을 불편하게 하는 것을 하루에도 수백 번씩 볼 수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이기주의의 심각성으로 볼 때 얌체 주차는 아예 이기주의에 속하지도 않는다. 일상생활 구석구석에 꽉 차 있다. 아예 이기주의가 생활화되어 자신이 이기주의인지도 모르고 이기적인 행동을 하는 만성 이기주의 환자, 중증 이기주의 환자라고 말할 수 있다.


   예수님은 이웃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자신의 몸을 바치셨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이웃에게 도움을 주어야 하지만 그 이전에 먼저 이웃을 헤치지 않는 것부터 실천해야 한다. 이웃에게 선행을 베풀고 도움을 주는 사람들까지도 이웃을 해치지는 말아야 한다. 이웃에게 피해를 주면서 동시에 다른 이웃에게 도움을 주는 것보다는 차라리 이웃에게 도움도 안 주고 피해도 안 주는 것이 낫다. 일단 이웃에게 피해를 주는 일부터 없애면 그 다음에는 이웃에게 도움을 주는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 박용식 신부 수필집 / 예수님 흉내내기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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