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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아름다운 삶" - 2007.11.18 연중 제33주일(평신도 주일)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07-11-18 조회수655 추천수2 반대(0) 신고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07.11.18 연중 제33주일(평신도 주일)                        
말라3,19-20 2테살3,7-12 루카21,5-19

                                                            
 
 
 
"아름다운 삶"
 


겸손으로 마음의 눈만 열리면 주변의 모두가 삶의 스승들입니다.

공동체내의 형제들은 물론이고
하늘, 산, 나무, 흙 등 아름다운 자연 모두가 우리 삶의 스승들이요,
이런 깨달음에서 저절로 솟아나는 감사와 행복감입니다.
 
울긋불긋 단풍잎 별들이 수도원 뜰을 가득 덮으니
흡사 땅이 별들 가득한 하늘이 된 듯 참 환상적인 아름다움입니다.
 
말 그대로 땅에서 하늘의 별들처럼 아름답게 살라는 가르침을 줍니다.

언제나 그 자리에 묵묵히 머물러 계절의 흐름에 순응해 가면서 깊어가는 나무들,
우리의 삶과 죽음을 돌아보게 하는 참 좋은 스승들입니다.
 
이젠 단풍잎들 다 떠나보내고 나목으로 서있는 만추의 가을 나무들을 보며
얼마 전 써놓은 ‘우리의 삶과 죽음도’ 라는 글을 나눕니다.


온 영혼(靈魂)
꽃들로
활짝 피어났다가
온 육신(肉身)
단풍들로
환히 타올랐다가
모두들
서서히 떠나보내고
나목(裸木) 되어
안식(安息)의 겨울을
기다리는
만추(晩秋)의 가을나무들
우리의
삶과 죽음도
저러했으면 좋겠다.

온 영혼 꽃 사랑으로 활짝 피어났다가,
온 육신 단풍 사랑으로 타올랐다가,
모두들 초연히 떠나보내고
안식의 겨울을 기다리는 나목들 같은 우리의 삶과 죽음이라면
얼마나 아름답고 행복하겠는지요.
 
바로 오늘 복음과 독서 말씀이 이런 삶의 비결을 가르쳐줍니다.

첫째, 하느님을 경외하는 삶이 아름답습니다.

오늘 날 위기의 근원은 하느님 망각에서 기인합니다.
인간 욕심을 제어할 하느님 상실에서 기인합니다.
 
하느님을 경외할 때 하느님의 빛이 어둔 욕망을 밝혀주어
비로소 절제 있고 질서 있는 삶이 실현됩니다.
 
하느님을 잊으면 저절로 부각되는 교만이요 악의 통제도 어려워집니다.
이런 자들에 대해 말라키 예언자를 통한 주님의 준엄한 심판 예고입니다.

“거만한 자들과 악을 저지르는 자들은 모두 검불이 되리라.
  다가오는 그날이 그들을 불살라 버리리라.
  그날 그들에게는 뿌리도 가지도 남겨두지 않으리라.”

하느님을 잊어 방종하다보면 검불같이 천박한 삶이 되는 건 시간문제입니다.
 
반면 주님을 경외하며 알곡의 삶을 살았던 이들에 대한 주님의 축복 선언입니다.
“그러나 나의 이름을 경외하는 이들에게는
  의로움의 태양이 날개에 치유를 싣고 떠오르리라.”

마음의 태양이신 그리스도께서 마음의 하늘을 밝혀주실 때
욕심은 정화되고 영육의 병도 치유됩니다.
 
하느님 앞에서 깨어있는 삶일 때,
성령으로 충만한 삶일 때 욕망은 절제되고 질서 잡혀
이웃에 대한 배려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다음 바오로의 고백이 이를 입증합니다.

“우리는 여러분과 함께 있을 때에 무질서하게 살지 않았고,
  아무에게도 양식을 거저 얻어먹지 않았으며,
  오히려 여러분 가운데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수고와 고생을 하며 밤낮으로 일하였습니다.”

진정 그가 하느님을 경외하는 삶을 사는 지는
이런 이웃에 대한 배려의 정도를 통해서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둘째, 묵묵히 일하여 자기 양식을 벌어먹는 삶이 아름답습니다.

경건히 기도하는 모습도 감동적이지만,
마음 모아 일에 열중하는 모습도 참 아름답습니다.
 
온갖 신학지식도 이런 삶 앞에서는 참 초라해 보입니다.
 
묵묵히 일하여 제 손으로 벌어먹는 삶,
아주 삶의 기본인데 이 기본이 안 되어 있어 문제입니다.
 
이래서 ‘기도하고 일하라’입니다.
 
일하기 싫어하는 사람은 먹지도 말라고 바오로 사도의 강력한 지시입니다.
영적일수록 현실적이라 했습니다.
영성의 진위 역시 그 삶의 노동을 통해 드러납니다.
 
노동을 통해 영성의 육화도 이루어집니다.
자기 일에 충실한 이들, 거의 불평불만을 하지 않습니다.
 
사실 그럴 시간도 없습니다.
 
거창한 이웃사랑이 아니라
우선적으로 제 일에 충실하여 이웃에 짐이 되지 않는 것이 이웃사랑의 기본입니다.
 
몸으로 살아야 하는 데,
일은 하지 않고 머리로, 생각으로, 감정으로 살게 되니
자기도 모르는 사이 철부지의 비현실적 삶이 되어 버립니다.
 
언행이, 말과 삶이 일치가 되지 않습니다.
 
육체노동으로 힘들게 돈을 벌어 본 사람이라면
결코 언행을 가볍게 하지도 않고 돈을 헤프게 쓰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느님을 보십시오.
 
봄, 여름, 가을, 겨울 내내 쉬지 않고 침묵 중에 일하시지 않습니까?
하느님께서 일손을 놔버리면 세상은 더 이상 존속할 수 없을 것입니다.
 
진정 하느님을 닮은 이들은 꾸준히, 묵묵히, 겸손히 일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무질서하게 살면서 일은 하지 않고
남의 일에 참견만 하면서 공동체의 분열을 조장하는 이들에게 따끔한 충고를 주십니다.

“묵묵히 일하여 자기 양식을 벌어먹도록 하십시오.
 

셋째, 인내로써 생명을 얻는 삶이 아름답습니다.

대부분의 성취는 재능으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인내로써 이루어집니다.

인내하는 자가 마지막 승리자 되어 생명을 얻습니다.
 
오늘 복음의 말씀,
한결같이 부화뇌동, 경거망동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닙니까?

“내가 그리스도다.” 또 “때가 가까웠다.” 말하더라도
  그들 뒤를 따라가지 마십시오.
  또 무슨 소문을 듣더라도 무서워하거나 혼란해 하지 마십시오."
 
요지부동, 영적 사기꾼들의 유혹에 빠지지 말고
누가 뭐래든 묵묵히 인내하며 제 삶의 자리에 충실한 것이 제일입니다. 
  
모든 것은 때가 있는 법입니다. 
하느님의 때를 기다리는 인내가 지혜입니다.
 
모든 것은 인내의 뿌리내림 과정을 요합니다.
봄, 여름, 가을 기다려 때가 되어야 탐스런 열매들입니다.
 
이런 자명한 삶의 이치를 너무 잊고 지냅니다.
속전속결 단판승부를 내려합니다.
 
‘빨리, 빨리’의 조급증 또한 우리들의 병입니다.

인내 없이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습니다.
막연한 인내가 아닙니다.
인내력이라 하지 않습니까?
인내의 힘도 사람마다 다 다르다는 이야기입니다.
 
하느님께 대한 믿음, 희망, 사랑이 인내력의 원천임을 깨닫습니다.
우리 영혼이 끊임없는 기도와 말씀 공부를 통해
하느님으로부터 믿음, 희망, 사랑을 섭취할 때 인내력의 신장입니다.


오늘은 평신도 주일입니다.

하느님은 수도원에만 계시는 게 아니라 세상 어디에나 계시듯,
성인들 또한 수도원에만 있는 게 아니라 세상 곳곳에 숨겨져 있습니다.
 
사제건 수도자건 평신도건 우리 모두 성인이 되라는 소명을 받고 있습니다.
 
각자 불림 받은 자리에서
소금이 되어, 빛이 되어, 누룩이 되어 살아갈 때 성인입니다.
 
부패와 변질을 막는 소금이 되어,
어둠을 밝히는 빛이 되어,
사랑과 평화의 누룩이 되어 살므로 주변을 성화할 때 성인입니다.
 
아주 구체적으로 하느님을 경외하는 삶입니다.
 
묵묵히 일하여 자기 양식을 벌어먹는 삶입니다.
인내로써 생명을 얻는 삶입니다.
 
이런 삶이 아름다운 성인의 삶에 이르는 첩경입니다.
 
이 거룩한 미사 은총이 우리를 아름다움 성인의 삶으로 변화시켜 주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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