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07-11-18 조회수752 추천수14 반대(0) 신고
 
2007년 11월 18일 연중 제33주일 다해
 

 

 You will be hated by all because of my name,
but not a hair on your head will be destroyed.

By your perseverance you will secure your lives.

 (Lk.21.17-19)
 
 
제1독서 말라키 3,19-20ㄴ
제2독서 테살로니카 2서 3,7-12
복음 루카 21,5-19
 
 
오늘의 독서와 복음 듣기
 





회사에서 퇴근한 남편이 말합니다.

남편: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있어.”

아내: “좋은 소식은 뭔데요?”

남편: “3천만 원이 생겼어.”

아내: “우와~~ 정말로 좋은 소식이네요. 그렇다면 나쁜 소식은요?”

남편: “그게 퇴직금이야.”

또 이러한 상황도 있습니다. 아들이 수학을 50점 맞고 돌아왔어요. 이를 남편에게 보고하는 것입니다.

아내: “여보, 나쁜 소식과 좋은 소식이 있어요.”

남편: “나쁜 소식이라니?”

아내: “철수가 수학 50점 맞았어요.”

남편: “누구를 닮아서 이렇게 공부를 못하는거야? 그렇다면 좋은 소식은 뭐야?”

아내: “대학 등록금 걱정이 없어졌다는 것이죠. 뭐.”

좋은 소식을 나쁜 소식으로 만드는 사람도 있고, 또 반대로 나쁜 소식을 좋은 소식으로 만드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더 행복한 사람일까요? 당연히 나쁜 소식을 좋은 소식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겠지요? 실제로 나쁜 소식이 다가오는 순간에 이렇게 한 번 외쳐보세요.

“오히려 잘된 일인지도 몰라.”

그런데 이렇게 마음먹은 사람은 실제로 나쁜 소식이 좋은 소식을 바뀌는 체험을 하게 될 때가 참으로 많다고 합니다. 바로 긍정적인 사고와 주님께서 언제나 나를 지켜주신다는 굳은 믿음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나쁜 소식을 우리들에게 전해 주십니다. 모든 사람들이 꺼리는 이야기, 듣기 싫어하는 이야기, 바로 종말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십니다. 그것도 아름다운 성전을 바라보면서 감탄하고 있을 때 이렇게 초치는 소리를 하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종말에 대한 준비를 제대로 할 수 있도록 하시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종말을 잘 준비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좋은 묘 자리를 알아보라는 것일까요? 아니면 자기 재산을 모두 교회에 봉헌하라는 것일까요? 아니면 직장 모두 때려치우고 성당에 나가서 기도만 열심히 하라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결코 나쁜 소식만을 전해주시지 않습니다. 즉, 나쁜 소식이 좋은 소식으로 바뀐다는 것을 분명히 말씀하시지요. 그래서 종말에 대한 그림을 보여 주시면서도 이렇게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인내로써 생명을 얻어라.”

바로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 주십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뜻은 분명합니다. 과거에만 연연하고 다가올 미래를 걱정만 하라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이 순간에 긍정적인 마음과 주님께 대한 굳은 믿음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 살라는 것입니다.

항상 좋은 것만을 주시는 주님을 떠올리면서 생활해 보세요. 정말로 좋은 것만 주십니다.



긍정적인 마음을 갖도록 하세요.




버선 한 켤레의 온정(‘좋은 생각’ 중에서)
 
조선 후기의 야담집인 ‘청구야담’에 있는 이야기다. 한 아낙이 젊어서 남편을 잃고 두 아들과 가난하게 살고 있었다. 하루는 양식이 떨어져 산에 나물을 캐러 갔다가 바위 밑에서 항아리를 발견했다. 뚜껑을 열어 보니 그 안에는 은이 가득 담긴 게 아닌가. 아낙은 누가 볼세라 얼른 뚜껑을 닫고 바위로 그것을 덮었다.

그러고는 산에서 내려와 다시는 그곳에 가지 않고 온갖 고생 속에 자식을 키웠다. 두 아들은 고생하는 어머니를 생각하며 학업에 힘썼고, 차례로 벼슬길에 올랐다. 아들들이 결혼해 손자손녀가 줄줄이 태어났다. 아낙의 말년은 평온하기만 했다.

하루는 그녀가 아들, 며느리에게 바위 밑에 묻어 두었던 은 항아리 이야기를 하고 그것을 가져오게 했다.

“내가 30년 전에 이 항아리를 얻었지만 그 자리에 도로 묻어 버렸다. 갑자기 생긴 재물 때문에 어린 너희들이 방자해질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러면 공부는커녕 끝내 사람 구실도 못할 게 아니냐. 이제는 너희에게 이 재물이 있더라도 사치하고 교만할 염려가 없겠기에 주는 것이다. 좋은 곳에 쓰도록 하여라.”

두 아들 내외는 어머니의 뜻을 받들어 굶주린 사람에게 먹을 것을 주고, 추운 사람에게 옷가지를 주었다. 또한 궁핍한 친척들의 혼인과 장례를 도왔다. 아낙 역시 겨울이 되면 손수 버선을 수십 켤레 지어 밖으로 나가서 나눠 주었다. 알고 보니 버선을 신지 못한 거지들에게 주는 것이었다. 은 항아리에 대한 유혹을 뿌리치고 온갖 고초를 겪으며 살았던 아낙은 발이 어는 것만큼 참기 힘든 고통이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우리도 옛 사람들이 했던 것처럼 재물에 연연하지 말고 나눔의 행복을 실천하면 좋겠다. 그 나눔은 버선 한 켤레의 온정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All that you see here the days will come

when there will not be left a stone upon another stone

that will not be thrown down."

(Lk.21.6)

 
 
  George Winston - Longing 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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