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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0.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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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20-02-11 조회수580 추천수7 반대(0) 신고

 


2020년 2월 11일

연중 제5주간 화요일

제1독서 1열왕 8,22-23.27-30

그 무렵 22 솔로몬은 이스라엘

온 회중이 보는 가운데 주님의

제단 앞에 서서,

하늘을 향하여 두 손을 펼치고

 23 이렇게 기도하였다.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

위로 하늘이나 아래로 땅

그 어디에도 당신 같은

하느님은 없습니다.

마음을 다하여 당신 앞에서

걷는 종들에게 당신은

계약을 지키시고 자애를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27 어찌 하느님께서

땅 위에 계시겠습니까?

저 하늘, 하늘 위의

하늘도 당신을 모시지

못할 터인데, 제가 지은

이 집이야 오죽하겠습니까?

28 그러나 주 저의 하느님,

 당신 종의 기도와 간청을

돌아보시어, 오늘 당신 종이

 당신 앞에서 드리는

 이 부르짖음과 기도를

들어 주십시오.

29 그리하여 당신의 눈을

 뜨시고 밤낮으로 이 집을,

곧 당신께서 ‘내 이름이

거기에 머무를 것이다.’ 하고

말씀하신 이곳을 살피시어,

당신 종이 이곳을 향하여

드리는 기도를 들어 주십시오.
30 또한 당신 종과 당신 백성

이스라엘이 이곳을 향하여

드리는 간청을 들어 주십시오.

부디 당신께서는 계시는 곳

하늘에서 들어 주십시오.

들으시고 용서해 주십시오.”

복음 마르 7,1-13

그때에 1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

몇 사람이 예수님께 몰려왔다가,

2 그분의 제자 몇 사람이 더러운

손으로, 곧 씻지 않은 손으로

음식을 먹는 것을 보았다.

3 본디 바리사이뿐만 아니라

모든 유다인은 조상들의 전통을

지켜, 한 움큼의 물로 손을 씻지

않고서는 음식을 먹지 않으며,

4 장터에서 돌아온 뒤에 몸을

씻지 않고서는 음식을 먹지 않는다.

 이 밖에도 지켜야 할 관습이 많은데,

잔이나 단지나 놋그릇이나

 침상을 씻는 일들이다.
5 그래서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이 예수님께 물었다.

“어째서 선생님의 제자들은

조상들의 전통을 따르지 않고,

더러운 손으로 음식을 먹습니까?”
6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이사야가 너희 위선자들을

두고 옳게 예언하였다.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지만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나 있다.

7 그들은 사람의 규정을 교리로

가르치며 나를 헛되이 섬긴다.’

 8 너희는 하느님의 계명을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는 것이다.”
9 또 이어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너희의 전통을 고수하려고

하느님의 계명을 잘도 저버린다.

10 모세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여라.’ 그리고 ‘아버지나

어머니를 욕하는 자는 사형을

받아야 한다.’고 말하였다.
11 그런데 너희는 누가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제가 드릴 공양은

 코르반, 곧 하느님께 바치는

 예물입니다.’ 하고

말하면 된다고 한다.

12 그러면서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더 이상 아무것도

해 드리지 못하게 한다.

13 너희는 이렇게 너희가

 전하는 전통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폐기하는 것이다.

너희는 이런 짓들을 많이 한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엘리베이터가 이상하게도

층마다 서는 것입니다. 제 옆에 있던

사람들도 답답한지 한소리를 합니다.

그리고 드디어 엘리베이터가 섰는데,

이 안에 조그마한 아이

혼자 타고 있는 것입니다.

이 아이는 엘리베이터의 층수

 버튼을 모두 눌렀다가 해제하기를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한 형제님께서

 아이를 향해 화를 내십니다.
“뭐 하는 거야? 네 엄마 어딨어?”
아이는 울먹이다가 울음을 터뜨립니다.

바로 그때 이 형제님의 아내로 보이는

분이 형제님을 나무라며 말합니다.
“왜 애를 혼내요? 아이는 버튼

누르는 것을 좋아하는 것 몰라요?”
그리고 아이에게 “버튼 누르는 것은

괜찮은데 이렇게 모두 눌러 놓으면

바쁜 사람들이 화난단다. 다음에는

이렇게 하면 안 돼요. 알았지?”라며

아이를 다독이고 이렇게 해서는

안 되는 이유까지 말씀해주십니다.
아이는 보통의 아이들처럼

 좋아하는 것을 했을 뿐입니다.

 이것이 잘못되었다는 이유조차 모릅니다.

그래서 억울해서 울었을 것입니다.
우리도 그렇지 않을까요? 자신의

 잘못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하는

말과 행동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자기만 옳다고

생각하는 착각까지 겹쳐서 더욱더

인간관계를 힘들게 합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바리사이를

떠올려 보십시오. 그들은 자신들이

완전하다고 여기는 생활 방식을 따랐고,

자기네 방식이 다른 어떤 것보다

낫다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손을

닦지 않는 예수님 제자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를 따끔하게

혼내십니다. 남의 잘못만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잘못은 보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겉으로만 그럴듯한 모습이

아닌 우리의 내적 지향을 보시는 하느님을

 생각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그들은 하느님의 법에 어긋나는

가짜 규정을 덧붙이면서도 자신들이

생각이 옳다면서 그 생각이 율법에

근거한다는 논리를 세웁니다.

대표적인 예가 부모 공양에 대해

 ‘코르반’이라고 말하면 된다는

생각이었습니다. 부모가 굶주리는데도

자녀는 제물 봉헌만으로 할 일을

다했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보시는 우리의 내적

지향이 바로 ‘사랑’입니다.

사랑에 기초하지 않는 어떤 판단도

주님을 기쁘게 할 수 없습니다.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사랑이란 말에 맞고

틀리고는 없다.

내가 누군가를 정말 사랑한다면

그 사랑이 내게 정답이다.

(작가 미상)

죽음을 안고 살아가는 삶

살아가는 것이 곧 죽어가는 것이고,

죽어가는 것이 곧 살아가는 것입니다.

오늘 하루 살았다는 것은

오늘 하루 죽었다는 의미가 됩니다.

이렇게 삶과 죽음은 서로 공존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죽음을 기억하면서 지금을 살아야 합니다.

이제 더는 되돌릴 수 없는 오늘이라는 삶을

죽음 앞에 후회하지 않도록 보내야 합니다.
예전에 읽은 책에서, 말기 암 환자로

살아가는 저자는 이 세상 안에서 많이

너그러워질 수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누군가를 미워하게 되고 화를 내어야 하는

상황에서도 ‘이게 죽음

앞에서 해야 할 일일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면 저절로

용서와 사랑을 품게 된다는 것입니다.
죽음을 기억하며 사는 삶은 더 이상

후회를 만들지 않기 위해 노력합니다.

지금 삶의 의미를 계속 되뇌며

최선을 다하게 됩니다.

더 높은 가치의 중요성을

깨닫기 때문입니다.

그냥 사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안고 사는 삶이 필요합니다.

(루르드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서

발현하신 날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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