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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람이 성전聖殿이다 -사람의 전통(인습)이 아닌 하느님의 계명을-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베네딕도회 요셉수도원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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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20-02-11 조회수571 추천수6 반대(0) 신고

 

2020.2.11. 연중 제5주간 화요일, 1열왕8,22-23.27-30 마르7,1-13 

 

사람이 성전聖殿이다

-사람의 전통(인습)이 아닌 하느님의 계명을-  

 

참 우선적으로 중요한 것이 사람입니다. 가장 중요하고 소중한 것이 사람이지만 현실에서는 참 소홀히 함부로 다뤄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사실 잘 들여다 보면 사람 하나하나가 인재人材입니다. 얼마전 몇 년 만에 수도원을 찾은 분이 한 말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수도원에 뭐 볼것이 있습니까? 앞에는 아파트들이 들어서 있고---, 주변도 옛만 못합니다. 아 그런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수사님들이 있었습니다. 수사님들이 늘 여기 이 자리에 있기에 꼭 고향집에, 아버지의 집에 온 것 같습니다. 기도하는 수사님들이 없다면 불암산도 수도원 건물도 참 공허하고 무의미해 보일 것입니다.”

 

결국은 사람입니다. 아무리 명산대찰(名山大刹)이라도 고승高僧이 없으면 참 허전할 것입니다. 아무리 전통이 좋고 자연환경이 좋고 건물이 좋은 수도원도 그 안에 수도자가 없다면 참 공허하기 짝이 없을 것입니다. 수도원에 전통이, 자연이, 건물이 살아 빛나는 것도 거기 사람이, 수도자가 있기 때문입니다. 정말 사람이야말로 살아있는 보물입니다. 

 

오늘 복음은 조상들의 전통에 대한 논쟁입니다. 사람들의 전통과 하느님의 계명간의 충돌입니다. 사람들의 전통에 가려 하느님의 계명을 망각한, 본말전도의 현실을 예리하게 집어 내는 예수님이십니다. 사람의 현실을, 본질을 직시하는 예수님이십니다. 사람들의 전통, 즉 인습의 노예들이 된 소위 ‘꼰대’가 된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인습을 어긴 예수님 제자들의 행태에 대해 예수님께 묻습니다.

 

“어째서 당신의 제자들은 조상들의 전통을 따르지 않고, 더러운 손으로 음식을 먹습니까?”

 

판별의 잣대는 사람들의 전통이 아니 하느님의 계명입니다. 하느님의 계명은 살아 있는 사람을 항상 우위에 둡니다. 예수님의 답변이 정곡을 찌릅니다. 오늘 복음의 핵심입니다. 역시 예수님께서는 좋아하시는 이사야 예언자의 말씀을 인용합니다.

 

“이사야가 너희 위선자들을 두고 옳게 예언하였다.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지만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나 있다. 그들은 사람의 규정을 가르치며 나를 헛되이 섬긴다. 너희는 하느님의 계명을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킨다. 너희는 너희의 전통을 고수하려고 하느님의 계명을 잘도 저버린다.”

 

사람들의 전통을 지키다 보면 남는 것은 전통이고 사라진 것은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사람이 있고 전통이 있지, 전통이 있고 사람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의 전통은 부단히 하느님의 계명에 의해 검증받아야 합니다. 지켜야 할 본질적인 것은 사람의 전통이 아니라 하느님의 계명입니다. 

 

식사전에 손을 씻는 일은 인습을 따르는 일이지 하느님을 섬기는 일과는 무관합니다. 인간의 전통은 코르반 서원문이지만 하느님의 계명은 부모를 섬기라는 계명입니다. 결국 하느님의 계명은 구체적 사람 사랑의 실천임을 깨닫습니다. 그런데 조상들의 전통인 인습에 치우치다 보니 꼰대가 되고 하느님의 계명이, 살아있는 사람의 현실은 완전히 증발된 것입니다. 사람이 빠진 성대한 성전 건물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바로 이점을 제1독서의 솔로몬은 잊었습니다. 사실 사람들의 전통이나 외적 건물들은 본질적인 것이 아닙니다. 본질적인 것은 하느님의 계명이요 살아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니 사람을 제대로 가르치는 교육이 얼마나 본질적으로 중요한지, 참으로 땅이나 건물에 투자하는 것보다 사람에 투자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본질적인지 깨닫습니다.

 

오늘 제1독서는 솔로몬의 긴 기도입니다. 참으로 성대한 성전을 완성해 놓고 자기도취하여 감격에 벅차 드리는 기도입니다. 마침 오늘 말씀에 대한 주석이 이를 날카롭게 지적하여 그대로 인용합니다.

 

-솔로몬의 “어찌 하느님께서 땅 위에 계시겠습니까?” 물음에 창세기는 “그렇다(YES)!” 대답한다. “하느님의 모습대로 창조된 사람들이기에 하느님은 ‘우리와 함께(with us), ’우리 안에(within us)’ 계신다. 솔론몬의 성전처럼 거룩한 장소도, 바리사이들이 손을 씻는 것과 같은 거룩한 수행들 모두도 인격의 거룩한 존엄성과 비교할 때는 빛을 잃어 창백해 진다. 바로 하느님의 계명이 선포하고 보호하는 것이 인격의 거룩한 존엄성이 아닌가!”

 

얼마나 고무적인 본질 직시의 주석인지요! 진짜 거룩한 성전은 건물이 아니라 ‘살아있는 사람’입니다. 하느님의 계명이 궁극으로 목표하는 바도 바로 이런 사람입니다. 하여 이레네오 성인은 ‘살아있는 사람은 하느님의 영광이다.’ 갈파했습니다. 참으로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된 존엄한 품위의 인간이기에 화답송 시편의 부르짖음은 너무 자연스럽습니다.

 

“만군의 주님, 당신 계신 곳 사랑하나이다! 주님의 뜨락을 그리워하며, 이 영혼 여위어 가나이다. 살아계신 하느님을 향하여, 이 몸과 마음 환성을 올리나이다.”

 

바로 이런 살아계신 하느님이 목말라, 배고파 이 거룩한 미사에 참석한 우리들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거룩한 살아있는 성전’임을 새롭게 깨닫게 하시고 당신을 닮은 ‘존엄한 품위의 인간’으로 살게 하십니다. 

 

“주 하느님, 당신 법에 제 마음 기울게 하소서. 자비로이 당신 가르침을 베푸소서.”(시편119,36).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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