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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중 제5주간 화요일 제1독서 (1열왕 8,22-23.27-30)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20-02-11 조회수1,139 추천수0 반대(0) 신고

 

 

 연중 제5주간 화요일 제1독서 (1열왕 8,22-23.27-30)

 

성전 건축은 하느님의 주권적 섭리의 결과이며,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베푸신 은혜의 결과였음을 강조하는 솔로몬의 성전 봉헌사가 기록된 열왕기 상권 8장 12-21절에 이어, 22절에서 53절까지는 성전 봉헌에 즈음한 솔로몬의 기도 기록된다.

 

솔로몬의 기도 내용이 기록된 23-53절은 내용상 두 부분으로 구분되는데, 23-30절은 서론적 기도이며, 31-53절은 성전과 관련해 하느님께 기도하는 자들이 처한 일곱가지의 특별한 상황을 전제로 한 본격적인 기도이다.

 

"솔로몬은 이스라엘 온 회중이 보는 가운데 주님의 제단 앞에 서서, 하늘을 향하여 두 손을 펼치고~ " (22)

 

솔로몬이 기도한 위치가 백성들과 제단 사이였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러나 솔로몬이 회중들의 얼굴을 마주 대하고 성전에 등을 돌린 채 서서 기도한 것인지, 단순히 회중들 앞에 대표로 서서 성전을 향해 기도를 한 것인지 분명하지 않다.

그리고 솔로몬이 시종일관 계속 서서 기도했다고 보기도 어렵다. 왜냐하면, 54절에서 솔로몬은 무릎을 꿇고 기도하다가 일어나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병행 구절인 역대기 하권 6장 12-13절에도, 처음에는 서 있었으나 곧 회중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솔로몬이 서서 기도한 것처럼 표현한 것은, 언제나 옥좌(보좌)에  앉아 계신 것으로 묘사되는 주 하느님 대전에, 솔로몬이 이스라엘의 왕임에도 불구하고, 임금 앞에 앉지 않고 늘 서 있는  신하와 같은 겸손한 자세로 기도했음을 부각시키기 위함이다.

 

한편, 본문에서는 솔로몬의 기도의 위치를 단순히 '주님의 제단 앞에' 로 표현하고 있지만, 역대기 병행 구절을 보면, 솔로몬이 주님의 제단 앞에 특별한 대(단)을 만들고, 그 위에서 기도했다는 사실이 나오고, 그 대(단)의 크기도 나온다.

이에 따르면, 솔로몬이 기도한 자리는 특별히 (번)제단 앞에 설치한, 길이 다섯 암마(2.28m),넓이 다섯 암마, 높이 세 암마(1.368m)가 되는 청동으로 만든 일종의 연단 위였다.(2역대6,12-13)

 

"하늘을 향하여 두 손을 펼치고 " (22)

 

성경에서 하늘을 향해 손을 펴는 행동 하늘에 계신 하느님께 기도하는 것을 나타낸다.(54 : 이사1,15) '손'에 해당하는 '캅파이우' (kaphaiu)의 원형 '카프' (kaph)는 '손바닥' 을 뜻하며, '펴다'로 번역된 '와이프로스' (waiphros)의 원형 '파라스' (pharas)는 '겸손한 간청' 을 표현한다.

 

이런 표현을 볼 때, 솔로몬이 하느님께 드린 기도는 간절한 마음으로 드린 탄원의 기도였다.

과거에 모세가 "제가 성읍을 나서는 대로 주님께 제 손을 펼치겠습니다" 하면서 하늘의 우레와 우박을 멈추게 하는 기적을 일으켜, 세상이 주님께 속한다는 것을 파라오에게 알리려고 했는데, 그가 취했던 기도의 모습이 바로 본문과 같은 것이다.(탈출9,29)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 위로 하늘이나 아래로 땅 그 어디에도  당신 같은 하느님은 없습니다. 마음을 다하여 당신 앞에서 걷는 종들에게  당신은 계약을 지키시고 자애를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23)

 

이제, 솔로몬의 기도가 시작된다.

"There is no God like thee, in heaven above or on earth beneath." (위로 하늘이나 아래로 땅 그 어디에도 당신같은 하느님은 없습니다.)

이는 비교급 표현이 아니라 최상급 표현으로 이해해야 한다. 이는 주 하느님께서 온 세상의 많은 신들보다 더 힘이 세고 상대적으로 뛰어난 신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주 하느님만이 유일한 참 신이시며, 다른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2사무 7,22 : 22,32)

 

또한 하느님의 무소부재(無所否在)함을 고백하는 것이기도 하다. 하느님은 유일무이하며 무소부재하신 분으로 찬양한 이유가 바로 주님께서 계약을 지키시고 자애를 베푸시기 때문이다.

하느님께서 이방의 신들과 구별되는 가장 큰 특징 중의 하나가 바로 그분이 계약의 하느님이시라는 사실에 있다.

 

이 '계약'은 나탄 예언자를 통해 다윗에게 허락하신 다윗 계약으로서(2사무 7,8-16), 다윗의 몸에서 난 후손이 성전을 건축할 것과 다윗의 왕좌(위)를 영원히 보존할 거라는 두 가지 내용으로 집약된다.

이 가운데 첫번째 내용이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하여 봉헌하게 됨으로 일차적으로 성취되었고, 두번째 내용은 앞으로 성취되어질 것이었다.

 

그런데 바로 이 두번째 내용에는 '헤쎄드' (hesed),  '자애'의 개념이 강하게 들어 있다.

하느님께서는 과거 다윗에게 그의 몸에서 태어날 자식, 즉 솔로몬이 범죄를 저지르면 징계를 내릴지언정, 사울에게서처럼 '자애'(은총)를 거두어 가시지 않겠다고 약속하셨다. (2사무7,15)

바로 여기에서 다윗과 다윗의 몸에서 태어날 자식을 향한 하느님의 '헤쎄드'가 결정적으로 드러난다.

 

그리고 원문에는 '계약과 자애' 가 한 묶음으로 나온다.

이것은 하느님의 계약과 자애는 결코 별개의 것이 아니며, 서로 일치한다는 사실과 더불어 그것을 이루시는 주체가 하느님이시라는 사실을 나타낸다.

 

"마음을 다하여 당신 앞에서 걷는 종들에게" (23)

 

'마음'을 뜻하는 명사 '레브' (lev)는 지,정,의를 포함한 인간의 전인격 지칭한다.

또한 '걷는'에 해당하는 '하홀레킴' (hholekim)의 원형 '할라크' (halak)는 일차적으로 '걷다'(에페10,23), '가다'(1사무6,8)의 뜻을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준행하다'(에페44,10), '행하다'(신명19,9)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본문은 하느님의 법과 율법을 사랑하며, 이를 마음에 담아 둘 뿐만 아니라, 삶의 실천적 영역에서도 삶의 기준으로 삼아, 의지적으로 행하는 자들을 의미한다. 주님께서 이러한 자에게 계약과 자애를 베푸신다는 것은 체험에서 우러나는 솔로몬의 진솔한 신앙고백이다.

 

그러나 한편, 이것은 솔로몬의 불행한 운명을 암시하기도 한다.

솔로몬은 다윗의 유언에 따라(1열왕2,4)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여 주님을 섬김으로, 지혜를 얻어 성전 건축의 대과업을 이루었지만, 결국 인생 말년에는 그 마음을 하느님에게서 돌이켜 우상들에게 향함으로, 왕국 분열의 단초를 제공하게된다.(1열왕11,4)

 

왕국 분열과 이스라엘의 멸망 이후에 이 글을 기록하고 있는 저자는 솔로몬의 성전 봉헌 기도속에서, 온 마음으로 주님 대전에 성실히 걷지 못하고 한결같지 못함으로 인해서 야기된, 솔로몬의 암울한 미래를 일종의 복선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어찌 하느님께서 땅 위에 계시겠습니까?  저 하늘, 하늘 위의 하늘도 당신을 모시지 못할 터인데,  제가 지은 이 집이야 오죽하겠습니까?  그러나 주 저의 하느님, 당신 종의 기도와 간청을 돌아보시어  오늘 당신 종이 당신 앞에서 드리는 이 부르짖음과 기도를 들어 주십시오. " (27-28)

 

27절은 주님의 광대 무변하심에 대한 찬양이고, 28-30절은 이러한 광대 무변하신 속성에 근거하여 기도에 응답해 주실 것을 간구하는 내용이다.

 

'하늘 위의 하늘'은 하늘의 최상급적 표현으로(2코린12,2), 본문에서는 그 어느 곳과도 비교할 수 없는 드넓은 우주 공간을 의미한다. 이는 우주 전체로도 담아낼 수 없을 하느님의 무한성과 편재성(遍在性), 그리고 지존성(至尊性)등과 같은 하느님만이 가지신 절대적 속성을 수사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하느님께 대한 솔로몬의 이러한 견해는 당시 지역神 개념에 사로잡혀 있었던, 고대 근동의 보편적 산관(神觀)과는 확연하게 구분되는 것이다. 이제, 광활한 땅뿐 아니라 무한한 우주 조차도 하느님의 처소로서는 부족한데, 하물여 인간이 지은 조그마한 성전이 감히 하느님의 처소가 될 수 있겠느냐는 겸손한 표현이 나온다.

따라서 주님께서 성전에 임하심은 성전 자체에 어떠한 가치나 능력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오직 하느님께서 성전을 당신과 당신 백성이 통교하는 공식적 장소로 삼으셨기 때문이다.

 

"당신께서 '내 이름이 거기에 머무를 것이다' 하고 말씀하신 이 곳을 살피시어" (29)

 

이 본문과 유사한 표현이 만남의 천막 관련해서 등장한다.(신명15,5.11 : 14,23 : 15,20)

과거 하느님께서 만남의 천막이 불완전한 장소임에도 불구하고, 그곳에 당신의 이름을 두시기로 스스로 작정하셨었다. 하느님의 관점에서 볼 때, 솔로몬의 성전 역시 이러한 모세의 천막과 별로 다르지 않다.

즉, 솔로몬의 성전이 아무리 화려하다고 할지라도, 광대하신 하느님의 처소가 되기에는 여전히 한계를 가지고 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께서는 이 성전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하느님의 이름을 두실 처소로 선택하셨다는 점에서,만남의 천막과 다르지 않은 것이다.

 

따라서, 이 본문은 솔로몬의 성전이 하느님이 거하실 유일하고도 영원한 장소임을 선언하는 내용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이 성전을 당신의 영광을 나타낼 거룩한 처소로 선택해 주실 것을 바라는 일종의 기원문에 해당한다.

하느님께서는 솔로몬의 이러한 간절한 기도를 들으셔서, 그의 성전에 당신의 이름을 영원히두시며, 당신의 눈과 마음을 항상 머물게 할 처소로 삼으실 것을 약속하셨다.(1열왕9,3)

 

"당신의 눈을 뜨시고 밤낮으로 이 집을,  곧 당신께서 '내 이름이 거기에 머무를 것이다.'  하고 말씀하신 이곳을 살피시어,  당신 종이 이곳을 향하여 드리는 기도를 들어 주십시오." (29)

 

'눈'을 뜻하는 '아인'(ain)은 신체의 일부로서 '눈'을 가리키기도 하지만, 지식, 성격, 태도, 성향, 견해, 열정 및 반응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기도 한다.

특별히 '하느님의 눈' 하느님의 속성과 성품을 인간에 빗대어 설명한 것으로, 선악을 살피시며(잠언15,13), 의인을 지키시고(2역대16,9), 은총을 주시며(창세6,8), 인간을 살피시고 구원해 주시는 신적 속성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시편33,12 : 34,15)

 

따라서 하느님의 눈이 성전을 향해 밤낮으로 열려 있기를 간구하는 내용은 하느님께서 이 성전을 항상 주목하사, 누구든지 성전에서 그리고 성전을 향하여 기도할 때, 관심을 가지고 응답해 달라는 의미를 전달한다.

하느님께서는 이러한 솔로몬의 간절한 기도에 응답하셔서, 당신의 눈 뿐 아니라 마음까지 성전에 두시겠다고 약속하셨다. (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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