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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묵주기도중 생생한 현시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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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시철 쪽지 캡슐 작성일2012-06-13 조회수8,350 추천수4 반대(0) 신고

묵주기도 중 생생한 현시 체험

 

 8~9년 전에 경험한 일이다.

토요일 오후 한가한 시간 지하 공장에서는 아직 분주하게 일을 하고 있지만 각자의
주어진 작업량에 따라 잘 진행되어가고 내일은 주일이라 나에게는 토요일 오후 지금부터 한가한 시간이 되었다.

   
2층 살림집에 올라오니 조용하고 아무도 없다. 모처럼 우리 집안이 이렇게 조용하기란 처음 있는듯하다. 그래서인지 안방에 들어오니 한 낮인데도 나도 모르게 기도가 절실하게 하고파진다. 시간은 오후 3시쯤 되었고 초가을쯤으로 생각이 된다. 거실에는 언제든지 기도를 할 수 있도록 작은 탁자위에 고
 
상과 성모상, 그리고 양옆에 촛대와 화병에 꽃이 잘 갖추어져 있는데도 오늘 따라 어찌된 일인지 조용한 안방에서 기도가 하고파진다. 감각적으로 방안 벽에 걸려있는묵주를 집어 들고 생각 없이 방 한가운데 철석 주저앉아서 묵주기도를 하기시작 하였다. 얼마쯤이나 기도를 하였을까?  

예수님께서 수난 당하시는 모습 모습이 현장에서 보는 것처럼 생생하게 떠오른다. 온몸에 전율을 느끼며 예수님의 처참한 모습들을 빠짐없이 지켜보게 되었다. 묵주기도 5단을 받치는데 무려 2시간 이상을 넘도록 그러하였던 것이다. 수난 당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며 얼마나 울고 또 울었는지 모른다.

방바닥에 콧물이 흥건할 정도가 되었으니, 마치 수레를 끄는 지친 소에서 콧물이 흐르듯 나 자신도 그러하였다. 기도를 다 마치고 눈을 뜨고서야 눈물과 콧물과 침이 엉켜서 늘어져 흘러내리는 것을 보고, 나 자신도 정말 징그럽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러나 징그럽긴 하여도 기분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휴지를 말아 방바닥을 닦는데 방바닥이 젖어서인지 부풀어 올라있다. 나는 그때 무의식적으로 회개다운 회개를 처음으로 하였던 것이 아닌가싶다. 그날 이후로 나에게 분명한 변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일이 있고나서 얼마의 시간과 날자가 지난 어느 날 아내에게 그런 일이 있어다는 이야기는 전혀 말하지 아니하고 “돈과 물질로 

 

부터 떠나 살고 싶다는 말을 하였다.” 다시 말하자면 물질 포기 선언을 하였던 것이다. 그 이야기를 한 후로 아내에게 2개월에 걸쳐 모든 것을 정리하면서 살림을 맡기게 되었고 공장의 일도 종로매장까지도 그러하였다. 그러한 이후로 아내와 상의를 하고 나는 불우시설 공동체에 봉사를 떠나고자 짊을 꾸려서 잠시 집을 떠나 있기도

 

하였는데. 처음에는 내가 적응할만한 곳인지 탐색적이기도 하였지만 그다음엔 모든 것을 결정하고 짐들을 꾸려서 떠나가게 되었다. 그때 비록 한동안 머물러 이었지
만 사실 나는 그곳에서 돌아온 것을 두고두고 후회를 하고 있다.

 

그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적절하고 감당할만한 일도 있었을 뿐더러 기도생활을 충분히 할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나로 하여금 거기에서 기존에 일을 담당하고 있던 분께서 굉장히 고민을 많이 하는 듯하였다. 나로 하여금많이 불편해 하는 듯 보였으며 결국에는 그분께서 고향에 다녀온다고 떠나 기도 하였다.                         

 

몇 일만에 다시 돌아오시긴 하셨지만 그분이 없는 사이에 원장 신부님께서 신축하는 성당건물과 그 밖의 여러 가지 일들을 같이 다니시며 조목조목 설명도 해주시면서 지시도 함께 내리셨다. 또한 틈틈이 3km 내외의 읍내 보건소로 아프신 원내 할머니들을 모시고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차량봉사도 하였다.                                  

 

저녁이면 식사 후 시간이 한적하여진다. 비록 얼마동안 이었으나 그동안 못 다한 기도를 마음 것 할 수가 있었다. 아침 6시에 성무일도 기도에 이어서 미사를 드리고 아침식사를 하게 된다. 집에서는 열심히 신앙생활을 나름대로 한다고는 하였지만 활동 끝에 술을 마셔야하고 세속에 걸 맞는 어우러짐에 따라서 살다보면, 내가 원하는  

 

거룩한 삶은 도저히 불가능 하다는 회의감에 빠지기도 하였었다. 제도권 및 구조적 공동체 생활권에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을 하던 중에 기회가 되어 그곳 성모의 집에 들어가게 되었지만 저를 피하는 그 형제님에게 큰 짊이 되는 듯만 하여서 마음이 불
편하기만 하였다.                                                                                   

 

또한 그곳에 머무시는 원생 할머니 한분은 나에게 다가와 아직 젊은데 돈을 벌어야지 여기엔 왜 왔느냐 하신다. 사실 그때만 하여도 장사도 잘 될 때라 아내혼자서도 두 아들 충분이 교육하고 경제적으로 걱정이 없을 때였다. 하지만 그 할머니는 내가 갈대가 없어서 온줄 알았던지, 아니면 그 형제의 고민을 들어서인지는 잘 모르겠으

 

나 할머니의 말씀이 의미있는 고민이 되어 종일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마침 신부님께서 LA에 성금을 모금하고자 출국 하신다기에 집에 잠시 다녀오겠다고 말씀드리고 가져간 짐을 승용차에 잔득 싸들고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이점 신부님께 대단히 죄송하고 사죄를 크게 할일이다.                                   

 

나는 그때당시 녹번성당 총구역장 일을 할 때인데 아내의 동의를 얻어서 하게 된 일이지만 얼떨결에 떠나보낸 아내는 일면 걱정도 되었던지 나와 가까이 지내셨던 녹번성당 2대 총회장직을 지내신 이민웅(스테파노)형제님께 매우 걱정스럽게 이야기를 하였나보다.

 

핸드폰으로 그곳이 어디냐며 추궁하듯 연이어 연락이 온다. 대충 설명을 드리니 본당 신부님께서도 아시는 일이냐며 물어 보시기에 신부님께는 따로 편지에 상세히 말씀드릴 것이라고 설명을 해드렸으나 사실 본당 신부님께는 대단히 죄송 한일이었다. 신부님께서는 모든 회장님들과 분과장님들이 함께한 자리에서 본당전체를 신부 혼자

 

서 사목하기가 벅차다 하시며 총구역장의 말은 곧 나 신부의 말이니 김안드레아의 말을 따르라는 말씀까지 내려주시며, 총구역장인 나에게 힘을 많이 실어 주신 분이셨는데, 나의 靈的인慾心(영적욕심) 때문에 훌쩍 떠나온 것이 신부님께 큰 죄책감이 들기도 하였다.


또한 성희재(델피노)형제님께서도 어떻게 아셨는지 지금 거기 있는 곳이 어
디냐며 꼬치꼬치 따져 물어보신다. 아마도 바람나서 딴살림을 차려서 도망간 사람처럼 말이다. 아무튼 가까이 지내는 분들이라서 걱정해주심이 고맙긴 하였다. 아무래도 아내의 걱정을 들어서 그리하였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것을 정리하고 떠나왔는데 은행일등 더러 남은 일들이 있어서 집에 다니러 와서는 아내를 안심 시키며 주일에는 애들과 함께 그곳에 와서 봉사도 함께하며, 나이가 들면 노후에 함께 이곳에서 지내도 된다는 설명까지 하며 안심을 시켜주기도 하였다. 아내는 나의 신심을 보아서 충분이 이해하고도 남을 것이라 생각이 된다.    

 

집에서도 기도바구니에 초토막이 가득 차도록 밤을 세워가며 기도하는 모습을 날마다 보아왔기 때문이다. 오늘 이 이야기는 수년전 동삼리회 순례자모임 여행길 차안에서 이야기 한일도 있다. 또한 몇 개 월전 신앙체험 “묵주기도 중 실감나게 죽음을 체험하다,” (김은정님 글) 댓글에도 비친바있다.                                            

 

또한 이번 체험은 청계공소 피정 중 체험한 신앙체험 관(늘) 속에서 순간 성모님을 뵙다” 에 올린 사례와 같이 번복된 체험이기도하다. 나는 청년 시절부터 묵주에 대한 남다른 체험을 경험하여서인지 지금도 변함없이 여행을 할 때에도 단 하루도 묵주기도를 소홀한 적이 없다.

 

최소 4개의 신비기도, 20단은 아무리 바쁜 일이 있어도 수 십 년 동안 매일 받치는 기본적인 기도이다. 먼 여행길에는 손수 제작한 묵주를 목에 꼭 걸고 다닌다. 묵주를 들고 있으면 두려움도 부러움도 모두 사라질 뿐만 아니라, 기쁨 중에 습관적으로 기도를 하게 될뿐더러 감사와 행복한 시간 속으로 빠져들곤 한다.                        

 

또한 날마다 충만한 묵주기도를 할 수 있도록 영육간의 건강을 허락해주시는 주님께 깊은 사랑을 고백하며 오늘도 묵주기도를 통하여 주님께 영광을 드릴 수 있도록 허락 주시는 하느님께 진정으로 마음과 정성 다하여 깊은 감사기도를 올리오며 다음 기회를 통하여 모두 앞에 다시 찾아뵙도록 하겠읍니다. 아멘

 

1. 다음 기회에는 “갑자기 받게 된 안수기도”와

2. “꿈속에서 찾아온 그 사람을 그 장소에서 그 모습 그 차림 그 대로 만나게
     되다.”를
 올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신앙과는 무관함)

 

                      山따라  

                                                                               지은이 김시철(안드레아) 

아직은 일은아침 동녘 여명을 바라보며

배낭을 등에 메고 사랑하는 아내와 먼-산행 길에 나선다.

 

약속시간 늦을까 서둘러 길을 재촉하는 나에게 아내는

그저 줄겁기만 한가보다.

 

너와나 를 잇던 등 구제 고개 길

비탈진 오름세 언덕 올라설 때 서늘한 그늘과 정겨운 바람

 

뒤처진 일행 기다릴 때 산새들도 함께 한다

이름 모를 꽃잎 마져 미소로 한들한들 반길 때

 

잠시 하늘저편 구름위에 나를 닮아 띄워봄은

내안의 나, 내 영혼에 안식의 일념일까

 

뒤쳐진 일행 손잡아 일으켜 다시 발맞춰 걸으며

마음에 닫는 얘기 나누며 눈높이 오름세 땀을 적신다.

 

정상에 올라설 때 고진 감내라 그때의 환희와 희열

그리고 감사와 찬미 온 누리를 감싸 안고 산 아래를 바라봄은

 

관대와 용서 그리고 사랑

이것이 정상 그 맛이다.  

찬미와 영광이 주-하느님께!

 


내림새 하산 길에 청산의 계곡 약수 작은 옹달샘 터

"물"한 목음 적시며 세상의 찌든 갈증 모두해갈하구

 

둘러앉아 담소를 함께하던 우정들 마냥 앤돌핀이 솟는다.

산에는 진정 우정이 있고 큰마음이 있다

 

아~아 청록이 우거진 산야 - -

맑은 공기  맑은 마음  맑은 영혼

이름 모를  이름 모를  꽃들 새들

 

자연과 나와 내 영혼, 그리고 하늘과 나와의-통교

조용히 잊지 않고 기억하며 기도 올린다.

 

그리고 또다시 산이 좋아 산을 찾아 오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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