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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홍성남 신부님 /제27회 용서하기 어려운이유
작성자이정임 쪽지 캡슐 작성일2020-02-10 조회수1,359 추천수3 반대(0) 신고

홍성남 신부의 행복한 신앙 


  


제27회  용서하기 어려운 이유


안녕하세요? 그동안에 강의한 내용이 함께 살기 위해서 어떻게 살아야 되는가? 어떻게 살아야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 수 있고 그리고 함께 사는 삶 안에서 어떻게 행복해질 수 있는가에 대해서 강의를 해 드렸습니다. 오늘 강의를 해 드릴 내용은 용서에 대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원수를 사랑하라, 용서하라는 얘기를 자주 하셨는데 어떠세요? 할 만하세요? 저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용서가 안 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 혹시 그런 분 계세요? 복음서에는 자주 용서에 대한 언급이 나오고 성당이나 예배당 또 절에 나가시는 분들도 사랑을 해 줘라, 용서해 줘라, 자비를 베풀어라. 이런 얘기를 많이 들으시는데 이게 나한테 미운 털이 박힌 사람을 용서한다는 게 이제 정말 쉽지 않습니다.

 

어떤 신자 한 분이 기도 모임을 갔다 오셨는데 거기 가서 당신 고민을 얘기했대요. 자기가 미워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을 용서하기가 너무 힘들다. 그랬더니 그 얘기를 들은 다른 자매가 예수님이 당신 죄를 다 용서해 줬는데 왜 남을 용서 못 하냐고 그랬다는 거죠. 그런데 그 말이 맞는다는 생각은 드는데 그래도 마음이 불편하더라. 그런 얘기를 하셨어요.

 

만약에 예수님이 여러분을 용서해 줬으니까 여러분도 다른 사람을 다 용서해 줘야 한다고 얘기를 하면 뭐라고 얘기하시겠어요? "난 예수님이 아니라고" 또 뭐라고 하시겠어요? "너는 그게 되니?" ^^ 예수님이 네 죄를 용서해 주셨는데 그러면 너는 다른 사람 용서가 다 되냐고 반문할 수 있단 말이죠. 정말 주님의 말씀을 따라서 다른 사람을 용서한다는 게 이게 정말 쉬운 일이 아니에요. 어쩌면 앙생활을 하는 분들한테 이 용서라는 것이 해야 될 행위이면서 또 걸림돌이기도 합니다.

 

어떤 수도원에서 수도자 두 사람이 서로 다퉜대요. 사이가 안 좋아졌다는 거죠. 밥 먹을 때도 얼굴도 안 쳐다보고 그렇게 지낼 정도가 됐다는 거죠. 그런데 이렇게 같은 공동체 안에 살면서 미운 사람이 있으면 굉장히 괴롭죠. 성당에서도 내가 어떤 신자분을 미워하면 이상하게 그 사람을 자꾸 만나게 되고, 그리고 그 사람이 있다는 존재감 자체가 굉장히 나한테 스트레스로 다가오고 그럽니다.

 

그래서 이 수사도 이제 너무나 고민 고민하다가 원장 수사한테 가서 하소연을 했대요. 내가 그 형제를 용서하고 싶은데 용서하고 싶은 마음이 안 일어난다. 원장 수사님이 그랬대요. 그럼 용서하지 말아라. 그래서 수사가 다시 용서를 안 하니까 마음이 힘들어 죽을 지경이다. 그러니까 원장 수사님이 그러면 용서를 해라. 그랬대요. 그 말을 듣고 이 수사가 "용서해 주고 싶은데 안 된다고 아까 얘기했잖아요" 하고 이제 짜증을 냈어요. 

 

그랬더니 원장 수사님이 얘기하시기를 "용서하지 않아서 힘든 게 내 마음이냐, 네 마음이냐?" 그래서 "제 마음입니다" 그랬더니 그럼 네 마음이 편해지려면 네가 용서를 해야 되냐, 내가 용서를 해야 되냐?" 그러셨대요. 그래서 결국은 "내가 용서해야 된다"라고 대답했더니 "알면서 왜 지랄이냐? 지랄이?" 그랬대요. 그 수도자가 결국 원장 수사님하고 대화하다가 화병이 났다는 그런 얘기가 있어요.

 

■ 용서하지 못하는 이유


1. 상처가 클 때  먼저 내 상처 크기 확인

우리가 다른 사람을 용서한다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데 내가 다른 사람을 용서하지 못하는 데는 반드시 이유가 있어요. 우선 그 이유에 대해서 같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내가 다른 사람을 용서하지 못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내가 받은 상처가 클 때입니다.

 

다른 사람들하고 싸우다가 다른 사람이 날 그냥 툭 친 거 하고, 바늘 같은 거로 찌른 거 하고, 칼로 푹 쑤신 거 하고 상처가 다르겠죠. 그냥 왜 그래 그러면서 툭 건드린 거는 그거는 아프지도 않아요. 그거는 지나갈 수 있어요. 그 정도로 상대방이 나한테 대미지를 주면 내가 금방 풀리고 용서가 됩니다. 그런데 뭔가 가시 박힌 소리를 들었을 때 그때는 이게 참 용서하자니 그렇고, 안 하자니 그렇고. 이게 가시를 뽑아야지 된단 말이죠. 그렇게 뽑고 나면, 그래 뭐 나도 남들한테 상처를 줬는데 넘어가자. 그럴 수 있어요. 

 

그런데  상대방이 내 가슴에다 아주 죽창 이런 걸 콱 쑤셔 박았어요. 그럴 때는 그 상처가 너무나 크기 때문에 용서가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다른 사람을 갖다가 용서하지 못할 때에는 내가 왜 용서를 못 할까? 내가 왜 이렇게 신자 답지 못할까? 이런 생각을 하지 전에 내가 받은 상처가 얼마나 큰가를 먼저 보셔야 돼요. 내 상처 크기를 확인하셔야 돼요. 

 

* 자신의 상처 크기 확인하고 용서 못하는 자신을 이해하는 것 중요하다


내 상처 크기가 만약에 크다 그러면 아, 이거는 용서를 할 수가 없는 상처로구나 하고 자기 자신을 이해해 줘야 됩니다. 그게 굉장히 중요해요. 그런데 저희 크리스천들은 상처가 크건 작건 상관없이 무조건 용서해 줘라. 그러니까 이게 나중에는 문제를 일으킨단 말이죠.   

 

◆ 상처가 작은데 용서가 안 될 때

그리고 상처는 작은데 용서가 안 되는 경우가 있어요. 그럴 때는 우리 몸에 종기 아시죠? 종기 한 번 다 나 보셨죠? 종기가 심리적인 종기가 있어요. 겉보기에는 요만해요. 크기가 요만해요. 그런데 이게 빨갛게 익어 있단 말이에요. 농까지 노랗게 끼잖아요. 그거 누가 이렇게 건드리면 난리가 나죠.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옷깃을 스칠까 봐 갈 때 조심하고 다닌단 말이죠.

 

그런데 이런 심리적인 종기가 심리학에서는 열등 콤플렉스라고 그래요. 누가 건드리면 자지러질 만한 것들이 있죠. 그런 것들이 이제 콤플렉스 덩어리같이 곪아 있는 경우가 있어요. 콤플렉스가 좋은 것도 있는데 병적인 콤플렉스 같은 경우에는 딱 종기 같아요. 그래서 남이 안 건드렸으면 하는 것들이 내 마음 안에 있단 말이죠. 특히 그 열등 콤플렉스 같은 경우에는 더 심한데 예를 들면 제가 키가 작거든요. 키에 대해서 제가 열등감을 갖고 있어요. 그래서 구두도 굽이 이만한 거를 신고 다니고, 어떻게 해서든지 다리가 길게 보이려고 애를 쓰고 있는데 누가 지나가면서 "어유, 어렸을 때 뭘 먹었길래 자라다 말았어?" 그러면 뭐가 올라오죠? 무지 화가 나죠? 왜 그럴까요? 그 사람이 내 안에 있는 종기를 건드린 거예요.

 

또 이런 열등 콤플렉스는 외모에 대한 것뿐만이 아니라 학벌에 대한 것, 자기 집안에 대한 것, 식구들에 대한 것 이런 것들이 있습니다. 내가 정말 이것만은 남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것들이 있어요. 이제 그런 것들을 누가 건드리면 그때는 완전히 뒤집혀 버리는 거죠. 용서가 안 된단 말이죠. 그래서 다른 사람은 나한테 "뭐 그렇게 화낼 말을 한 것도 아닌데 왜 그래?" 하고 얘기를 하는데도 나는 화가 막 올라올 때는 저 사람이 내 안에 있는 뭐를 건드렸는지 보셔야 해요.

 

그러니까 큰 상처가 아닐 때는 그게 내 안에 있는 열등감을 건드린 게 아닌가 그걸 보셔야 돼요. 그래서 그걸 들여다보고 그걸 치유를 해야 되는 거예요. 그런데 저 사람은 별거 아닌 얘기를 했다는데 왜 내가 이렇게 못 참고 화를 내지? 나는 왜 이렇게 못 됐지? 그러면 이제 이게 더 심해지는 거예요. 문제가 발생한다는 거죠. 더 크게 만든다는 거죠.

 

2. 상대방을 어른으로 볼 때 용서가 안 된다

두 번째는 상대방을 어른으로 볼 때 용서가 잘 안됩니다. 집안에 그릇을 애가 깬 거 하고 남편이 깬 거 하고 똑같아요? 애가 깼을 때는 뭐라고 그러죠? 남편이 깼을 때는? 그래요. 상대방이 나이 먹은 사람이 잘못을 했어요 그러면 내 머릿속에서 나잇살 먹은 사람이 왜 저래? 그러면 용서가 안 돼요. 아, 저 사람이 철이 없어서 그래. 그래야지 그때부터 용서가 되는데, 당신이 어른인데 왜 그래? 당신이 신부인데 왜 그래? 당신이 누구인데 왜 그래? 당신이 레지오 단장이었잖아, 구역장이었잖아, 반장이었잖아. 이러면 용서가 안 돼요.

 

* 두 개의 자아 : 어른스러운 자아와 아이 같은 자아

 

그런데 실지로 사람 마음 안에는 작년 강의 때 말씀드렸는데 사람의 자아는 두 개가 있다고 그랬어요. 아주 어른스러운 자아가 있고 아주 아이 같은 자아가 있습니다. 이 아이 같은 자아를 내재 아라 그럽니다. 내재 아 [inner child, 內在兒]라고 해서 이 어른스러운 자아는 굉장히 이성적이에요. 예의를 지키자, 나누자, 희생하자, 사랑하자 이거는 전부 어른스러운 자아가 생각하는 겁니다.

 

그런데 아이 같은 자아는 굉장히 충동적이에요. 절제를 잘 못한단 말이죠. 맛있는 거만 보면, 이거는 누구를 먼저 줘야 되겠다. 이게 아니라, 내가 먼저 먹고 싶은 거예요. 그러니까 철딱서니 없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은 자기 안에 있는 이 두 자아 중에서 아이 같은 자아가 더 센 사람들이에요. 그러니까 우리가 학교에서건 신앙생활에서건 영신 수련을 하는 것은 아이 같은 자아를 훈련시키는 겁니다.

 

* 영신 수련은 아이 같은 자아를 훈련시키는 작업이다

 

공동생활을 통해서 네가 그렇게 혼자서 살면 나중에 더 문제가 생겨, 그러니까 절제해. 그걸 가르쳐 주는 거죠. 그러니까 사람 마음은 이 어른스러운 자아하고 아이 같은 자아가 늘 갈등을 벌이고 있는 거예요. 예를 들어서 여기 앉아 계시는데 만약에 나보다 옷을 더 이쁘게 입고 온 자매가 있어요. 그러면 어른스러운 자아는 "아, 참 이쁘다. 어디서 옷을 샀기에 저렇게 이쁠까?" 이러는데 아이 같은 자아는 그게 아니에요. "저 옷을 그냥 다 찢어버릴까, 말까?" ^^* 예, 그런 갈등을 느끼는 거예요.

 

그 갈등 안에서 내가 선택을 하는 거죠 그러니까 '철이 있다' 하는 것은 어른스러운 자아 말을 듣는 거고, '아, 쟤 철딱서니 없어' 하는 것은 아이 같은 자아 쪽을 따라가는 거예요. 그런데 남에게 상처를 잘 주는 사람들의 특징이 뭐냐 하면 이 아이 같은 자아가 더 큰 사람들이에요. 그러니까 말도 절제를 못 하고 내뱉는 거예요. 그러니까 상대방이 상처를 입는지, 안 입는지 그냥 감각이 없어요. 그냥 다 얘기해 놓고 나니까 자기 속만 시원한 거지요.

  

그러니까 우리가 다른 사람들이 내뱉는 말을 들으면서 '아, 저 사람 왜 저래? 나이가 몇 살인데 저래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한 절대 용서가 안 되는데, '아 저 사람이 미성숙하구나' 그러면 그럴 수도 있겠다고 해서 용서하고 싶은 마음이 조금은 올라온단 말이죠.

  

3. 문제가 네 탓이라고 생각할 때 용서하기 어렵다

세 번째는 이 문제가 네 탓이라고 생각할 때입니다. 내가 지금 화가 난 거는 너 때문이야. 그러면 절대로 용서가 안 됩니다. 잘못의 책임이 상대방에게만 있다고 생각할 때에 '네 탓이오' 하는 하는 내 마음 안에서 일어나는 분노의 감정을 절제할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화가 나 가지고 다른 사람들한테 푸념하는 사람들의 얘기를 잘 들어보세요. '나도 잘못했지만 저 사람도 잘못했어' 이런 얘기 하는 사람 잘 없어요. 거의 다 저 사람이 다 잘못했다고 합니다.

 

부부 상담을 하러 온 분들도 똑같아요. 남편 때문에 억울하다고 얘기하는 분들 보면, 자기는 하나도 잘못이 없고 전부 남편 잘못이야. 나중에 남편 만나서 얘기를 들어 보면 또 다른 얘기를 듣는 거예요. 그러니까 서로 부부간에 용서가 안 되는 것은, 이 가정에서 생긴 모든 문제가 다 너 때문이라고 생각할 때 절대로 용서가 안 되고 해결의 실마리가 없다는 것이죠.

 

그런데 너무 심하게 다른 사람들을 몰아붙이는 '네 탓이오' 하는 사람들은 뭐라고 그랬죠? 성격장애자라고 그랬어요. 신경증 장애자는 이거는 죽으라고 '내 탓이오'입니다. 성격장애자는 죽으라고 '네 탓이오'를한다는 거죠. 그래서 이 성격장애자들은 남을 용서할 수가 없는 성격이라고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그러니까 내가 다른 사람을 용서하지 못한다. 그러면 내 성격이 문제가 있는 게 아닌가 하는 것을 살펴보셔야 된다는 거죠.

 

4. 용서도 학습이다

네 번째 용서도 학습입니다. 용서도 남을 용서하는 것이 그냥 생기는 게 절대 아닙니다. 그걸 누구한테 배워야죠? 용서하는 걸 누구한테 배우죠? 어떤 분은 누구한테 배워야 되냐고 그랬더니 신부님들한테 배워야 된다고 그러던데 그러면 최초의 부모가 신부라는 얘기가 되거든요. 그건 아니죠. 용서는, 인간이 살아가는 그 모든 생활하는 태도니 이런 것들은, 인간이 살아가는 그 모든 생활하는 태도니 이런 것들은, 생활의 어떤 라이프 스타일 이런 것들은 전부 부모한테 배우는 거예요. 어렸을 때 부모님 하는 걸 보고 고대로 따라서 합니다. 그래서 학습이라고 합니다.

  

특히 아동기 때, 아직 학교에 가지 않은 그런 나이의 아이들은 누가 선생님이죠? 엄마 아빠예요. 엄마가 아빠한테 하는 말, 아빠가 엄마한테 하는 말 그거 보고 고대로 따라서 하는 거예요. 그런데 이게 0세, 1살, 2살, 3살 요 때에는 그냥 백지장에요. 그러니까 4살 이전의 아이들 같은 경우에는 부모가 싸우면 아, 부부는 저렇게 싸우며 사는가 보다라고 생각하는 게 다인데 고대로 다 입력이 되는 거예요. 

  

런 애들은 나중에 결혼하고 난 다음에 부부 싸움을 밥 먹듯이 해요. 자기 마누라 죽도로 패는 그런 남편들이 있죠. 엄마가 죽도록 맞고 살던 엄마예요. 아빠는 그렇게 때리는 걸 보고 아, 인간은 저렇게 사는 게 당연한가 보다라고 학습됐다는 거죠. 용서도 마찬가지로 부모님이 다른 사람들한테 용서해 주는 것을 아이들이 봐야 돼요. 그런데 그런 걸 보지 못한 애들은 용서할 줄을 모르는 거예요. 그래서 예의를 잘 지키는 부모 밑에서 예의 바른 아이가 나오듯이 용서를 잘 하는 부모 밑에서 용서를 잘하는 아이들이 생긴다는 거죠. 이거를 심리적 유전이라고 그렇게 얘기하기도 합니다.

 

5. 열등감이 많을 때에 남을 용서하기 어렵다

용서하기 어려운 다섯 번째 이유는 이 열등감이 많을 때에 남을 용서하기가 참 어려워요. 이 열등감이라는 거는 내가 키가 작고, 코가 못생기고, 돈이 없고, 공부가 짧고 이런 거는 열등감이 만들어 낸 어떤 부산물들입니다. 정말 중요한 건 뭐냐 하면, 열등감이라는 것은 내가 나를 미워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가 다른 사람들이 행동하는 거를 보고 괜히 미워할 때 있죠. '아, 쟤는 왜 하는 짓이 저 모양이야. 말은 왜 저렇게 해. 좀 이쁘게 못 하냐?' 이렇게 미워할 때 있잖아요.

 

내가 누군가를 미워하면 그 사람이 내 앞에서 예쁜 짓을 할까요? 미운 짓을 더 할까요? 점점 더 미운 짓을 해요. 자신 없어하고. 그런데 내가 남을 미워할 때도 그런 현상이 생기는데, 내가 나를 미워할 때도 똑같은 그런 현상이 생겨요. 거울을 보면서 '아, 이렇게 못생겼어!' 그러면 그다음부터 피부가 우중충해지고 화장이 안 먹기 시작해요. 그러면 그다음부터 성격이 정말 더 못돼지기 시작합니다.

 

그러니까 사랑받으면 피어나는데 미움받으면 찌그러지고 위축되게 돼 있어요. 이 열등감이 심한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아주 미워하고 몰아붙이는 사람들이에요. 그래서 평소에 자기 마음을 몰아붙이니까, 내가 이렇게 미워하면  내가 남들한테도 똑같은 방식으로 합니다. 남을 미워하기 시작해요. 그러니까 사랑하는 법을 모른다는 거죠. 이걸 내적 관계가 외적 관계로 연장된다고 그렇게 얘기를 합니다.

 

*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고는 남을 사랑할 수 없다

 

내가 나를 미워하면 내가 남을 미워한다는 거죠. 내가 나를 사랑하면 내가 남을 사랑한다는 거죠. 이게 기본 법칙이에요. 그런데 가끔 신앙생활 열심히 하는 분들이 자기 자신을 미워하고 남을 사랑해야 하는 그런 분들이 있어요. 그거 불가능한 얘기라는 거죠. 내가 날 미워하면 남을 사랑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내가 나를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남을 용서하지 못한다. 그런 얘기가 나온다는 것이죠.

  

* 내가 나를 용서하지 못하면 남을 용서하지 못한다

 

길거리를 가다 보면 차에다 예수 천당, 불신지옥이라고 예수님 믿으면 천당, 안 믿으면 지옥. 이걸 써 붙인 분들이 있어요. 그분들 보면 굉장히 열등감이 많구나 하는 게 느껴지는 거예요. 뭔가 이렇게 야단 맞고 산 사람들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고, 아, 이분들의 부모님을 좀 봤으면 좋겠다. 이분들의 성장 과정을 좀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올라올 때가 많습니다. 편치 않은 삶을 사는 거죠. 예수님을 믿으면 용서를 받지만 안 믿으면 용서 못 받는다. 이제 그 얘기를 하고 있는 거예요. 주님은 누구나 다 용서해 주시는 분인데 자기들이 갖고 있는 어떤 내적인 세계가 예수님을 갖다 다른 예수님으로 만들어 버리는 거죠. 

 

오늘 강의는 용서가 안 되는 이유에 대해서 다섯 가지 얘기를 했죠. 첫 번째는 상처가 크면 용서가 안 된다. 두 번째는 상대방을 어른으로 보면 용서가 안 된다. 세 번째 이거는 전부 너 때문이야 그러면 용서가 안 된다. 네 번째는 부모님한테 용서받는 것을 배웠어야 되는데 안 배웠으면 용서가 안 된다. 다섯 번째는 내 마음에 열등감이 너무 강하면 남을 용서하지 못한다.

  

*자기 자신을 이해하는 작업이 용서를 하는데 굉장히 중요하다

  

더 많은 이유가 있겠지마는 크게 이 다섯 가지 이유가 내가 남을 용서 못 하는 이유라는 거죠. 따라서 내가 남을 용서 못 할 때는 내 안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보셔야 되는 거예요. 그냥 무조건 고해소 가가 지고 내가 남을 용서 못 했습니다라고 얘기를 하면 더 용서를 못 하게 돼요. 자기 자신을 이해를 하는 작업을 하는 것이 용서를 하는데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 그거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다음 주에도 용서에 대해서 두 번째 얘기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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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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