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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전례] 신화적 접근과 실화적 접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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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9-07-08 조회수757 추천수0

[전례, 그 능동적 참여] 신화적 접근과 실화적 접속

 

 

어느 시인의 시에 “한 사람이 다가오는 것은 그 사람의 온 역사가 지금 내게 오는 것이다!”라는 말이 기억난다. 우리가 우리의 어머니시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이신 마리아의 사건과 그 사건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우리는 너무나 쉽게 신화적 접근을 통해 이기적인 기복주의가 만연하지 않았는지 반성해야 한다. 또한 한국교회는 이러한 성모 마리아에 대한 신화적 접근을 바로 잡아야 한다.

 

지난 5월호에서 성모성월은 북반부의 싱그러운 오월의 계절 축제로서 마리아의 공경예식이 아니라 성령강림 사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신 교회의 어머니에 대한 실화적 존재감, 그리고 십자가상에서 당신 모친에 대한 유언을 기억하는 실화적이며 역사적인 의미를 전례주년에 그 사건에 맞추어 배치한 교회의 오랜 전통임을 밝혔다. 이로써 우리는 신화적 접근에서 실화적 접촉으로의 전환을 통해 올바른 마리아에 대한 구원사적이며 교회론적인 이해의 지평을 넓혀 보았다.

 

성모 마리아에 대한 정체성 즉 성모 마리아가 누구인가에 대한 복음의 결정적이며 역사적인 증언은 바로 마리아와 엘리사벳의 만남과 서로를 칭송하는 노래를 통해서이다. 그 노래들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성부의 구원방식을 인류는 알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만남이었다. 사랑의 방법은 만남이며 더 적극적 의미에서 다가감이요 하나됨이었다. 하느님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우리와 같은 인간이 되셨다. 그것은 이성을 뛰어넘는 사건이다. 아무도 반려견이 사랑스럽다고 하여 강아지가 되고 싶어 하지 않는다.

 

더 큰 존재가 아주 작은 존재를 사랑하여 그 작은 존재가 됨으로써 하나 되고 그러한 방식으로 작은 존재는 더 큰 존재가 누리는 능력과 사랑을 공유하게 되는 방식이 하느님 구원방식이다. 그러나 더 나아가 하느님은 이러한 방식을 대화와 동의를 통한 협력을 통해 이루시고자 하였다. 일방적인 추진력을 발휘하지 않으셨다. 그러기에 인간의 측면에서는 이성적인 부분이 아닌 믿음의 부분이 된다.

 

 

성모님은 우리와 다른 수퍼 히어로가 아니야

 

인간은 자신이 작은 존재이지만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되었고, 원죄에 물들었지만 하느님의 사랑으로 당신을 알아 뵙고 기도할 수 있는 신앙이라는 힘을 주셨다. 그 신앙의 힘이 어떻게 하느님을 깨닫고 하느님은 어떻게 인간을 구원하셨는가를 기록한 책이 바로 성경인 것이다.

 

마리아는 구세주가 올 것임을 구약의 예언서를 통해 익히 알고 있었고 기도하고 있었다. 마리아가 성모가 된 것은 바로 소설 “큰 바위 얼굴”의 주인공처럼 자기가 살고 있는 고을을 가난과 정체에서부터 구원할 저 뒷산의 큰 바위 얼굴과 같은 위대한 영웅을 기다리다가 결국 그 큰 바위 얼굴이 자신임을 결국 깨닫게 되는 과정과 같다.

 

성모 마리아가 엘리사벳을 방문하였을 때 엘리사벳은 이미 마리아의 잉태 소식을 알고 있었다. 인간의 관점에서 남자를 알지 못한 상태에서의 잉태라는 사건을 받아들이며 마리아를 안아준다. 배척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객관적인 정황을 보면 엘리사벳은 누구나 바라는 명문 대사제 집안의 부인으로 아이를 잉태함으로써 두 여인은 극명한 대조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믿음의 두 여인은 이해와 상식을 초월한 삶의 방식을 따른다. 그것은 사랑과 믿음이며 바로 사랑과 믿음의 힘은 만남과 칭송으로 나타난다. 우리는 성공한 이들의 땀과 신념을 모를 때가 많다. 유독 금메달만을 추앙(?)하는 한국의 문화를 보면 더 그렇다.

 

엘리사벳이 홀로 찾아온 마리아를 받아주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많은 이들은 마리아와 엘리사벳이 우리와 다른, 이미 선택되어 구원사건에 걸맞게 창조된 수퍼 히어로로 생각한다. 남이 무엇을 잘하는 것을 너무나 자연스럽게만 받아드린다면 우리는 그를 결국 신화적으로만 받아들이는 것이다.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하셨다는 마리아의 노래는 우리 각자에게 해당

 

마리아의 기도에서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라고 첫 문장을 장식하는 말씀 ‘내 영혼’! 즉 사도신경의 첫 마디는 바로 “나”이다. 내가 믿는 것이다. 그러기에 마리아는 내 영혼이라고 말한다. 엘리사벳 역시 마리아에게 “내 주님의 어머니”라고 하며 ‘내 주님’이라는 단어를 썼다.

 

자신을 제대로 인지하며 자신에 충실하면서도 당당히 하느님의 것을 인정하고 동의하는 마음이 바로 마리아와 엘리사벳의 대화 안에 담겨있다.

 

이 세상살이에 주눅 들고 우울해하지 않을 인간은 없다고 생각한다. 자신을 잃어버려 가는 세상이다. 스마트 폰과 인터넷의 볼거리에 빠져 우리는 하루에 정말 나와 상관없이 제공된 어지러움과 혼란스러움에 중독되어 간다.

 

무분별한 세상이 주는 접촉으로 우리는 자아의식이 빼앗기며 내 영혼이 무엇을 통해 진정한 기쁨을 누리는지 알지 못한다. 이 세상이 하느님의 말씀으로 이루어졌고 하느님의 사랑과 활동으로 구원되어 가며 세상의 모든 악이 그분 십자가의 빛으로 사라짐을 관심조차 갖지 않는다.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하셨다는 마리아의 노래는 우리 각자에게 해당한다.

 

사람은 태어나지만 되는 존재라고 한다. 성령은 새롭게 하며 성장시킨다. 마리아는 성령의 짝이라고 한다. 세례와 견진을 통해 우리 역시 성령을 받았다. 마리아를 좋아하나 닮지 않으려 하고 마리아께 기도하지만 마리아가 어떤 분인지 알고 싶어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마리아를 한 명의 희랍의 여신으로 숭배할 따름이다.

 

믿는 만큼 알고 아는 만큼 믿게 되며 그렇게 사랑하게 된다. 우리가 마리아에 대해 성경에서 또한 묵주기도의 각 신비를 바칠 때 성경을 천천히 그분의 입장에서 관상하는 태도가 절실히 필요하다. 즉 신화적 접근에서 실화적 접속이 필요하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9년 7월호, 허윤석 세례자 요한 신부(의정부교구 광릉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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